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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침탈과 반환
▲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고대 그리스 건축의 상징으로 불리지만 천년 넘게 타 종교 건축물로 사용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어요. /위키피디아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 3점을 그리스에 반환하겠다고 밝혔어요. 최근 몇몇 나라가 과거에 약탈했던 문화재를 돌려주고 있는데요. 주로 19~20세기 무렵 다른 나라를 정벌해 식민지로 만들고 제국을 건설하려던 강대국들이에요. 작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프랑스 케 브랑리 박물관이 각각 19세기에 아프리카에서 약탈했던 문화재를 반환했죠. 교황청도 이러한 국제적 동향에 동참한 것으로 보여요. 교황청이 돌려주기로 한 조각품은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했던 말머리 조각, 소년 및 수염을 기른 남자의 두상인데요. 그래서 이번 반환 선언이 영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영국은 지금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가져온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 반환 문제로 그리스와 논의 중이거든요.
엘긴 백작의 수집품들, 영국으로 옮겨지다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지어졌어요.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숭배하는 곳으로 고대 그리스 건축의 상징으로 평가받지요. 하지만 파르테논 신전은 세월에 따라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어요. 비잔티움 제국의 영역이었을 때는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로, 오스만제국 치하에서는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됐죠.
'엘긴 마블스'는 19세기 초 당시 오스만제국에 주재하던 영국 대사 엘긴 백작이 아테네에서 가져온 파르테논 신전 벽면의 대리석 조각들을 말합니다. 현재 런던의 영국 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소장돼 있어요.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제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파르테논 신전도 오스만제국이 관리하고 있었는데요. 파르테논 신전은 17세기 말에 탄약고로 사용되다가 전쟁 중 폭격으로 파괴된 상태로 방치됐어요.
엘긴 백작은 원래 고전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그는 오스만제국 정부의 무관심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중요한 예술품들이 파괴될까 걱정했어요. 그래서 오스만 정부로부터 그리스 유물들을 철거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지요. 이후 그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남아 있던 조각품 중 거의 절반을 떼어냈어요. 게다가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에렉테이온 신전, 아테나 니케 신전의 조각품과 건축 장식을 철거할 수 있는 권리도 얻었다고 해요. 그가 수년간 모은 고대 그리스의 수집품들은 선박을 통해 영국으로 운반됐습니다.
1816년 영국 의회는 엘긴이 갖고 온 유물들을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영국 박물관으로 옮겼어요. 당시 엘긴의 행동을 "문화재 파손"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시인 바이런은 훼손된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거닐다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어요. "이것을 보고 울지 않는 자, 어리석어라. 너의 벽은 마멸되고, 허물어진 신전은 앗아져 버렸다. 이 유적을 보호해야 할 영국인들 손에."
오늘날 '엘긴 마블스'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영국 박물관을 방문하고 있어요. 그리스는 영국 박물관의 조각품 소유권에 이의를 제기하며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어요. 엘긴 백작이 불법적으로 문화재를 탈취했다고 주장하고 있죠. 그리스 정부는 그리스에 남아 있는 고대 유물들과 훗날 반환받을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2009년 아테네에 아크로폴리스 박물관도 개관했어요.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엘긴 마블스'를 돌려주면 그리스의 다른 문화재를 영국 박물관에 대여해주겠다는 제안까지 했어요. 영국 정부는 그동안 엘긴 백작이 오스만제국으로부터 합법적인 승인을 받았으니 문화재를 반환할 의무는 없다는 의견을 고수해왔죠. 하지만 최근에는 태도가 많이 달라져 문화재 반환 협상을 진행 중이래요.
영국 박물관, '세계 최대 장물 보관소'
영국 박물관은 세계 최초의 국립 박물관으로 세계 각 문명의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을 800만점이나 소장하고 있어요. 그리스의 엘긴 마블스뿐만 아니라 정복지나 식민지로부터 강탈한 문화재를 많이 갖고 있죠. 영국 박물관이 이렇게 명성을 얻고 거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세계 각지에 있었던 영국의 식민지들 때문입니다. 식민지에서 영국은 각종 문화재를 수집했죠. 대표적으로 이집트의 로제타석(이집트 상형문자 해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비석), 나이지리아의 베닌 브론즈(Benin Bronzes·나이지리아 지역에 있던 베닌 왕국의 궁궐을 장식한 황동 조각품)가 있어요. 일각에서는 영국 박물관을 '세계 최대의 장물(贓物) 보관소'라고 부르기도 해요.
최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제국주의 시기 식민 지배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약탈한 문화재를 돌려주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어요. 런던의 호니먼 박물관은 베닌 브론즈인 황동 장식판 12개, 황동 수평아리, 왕궁 열쇠 등 문화재 72점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돌려주기로 했어요. 지난 11월 말 문화재 6점을 먼저 돌려주는 반환식이 열렸지요. 작년 10월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영국군이 1897년에 약탈한 황동 수탉 조각상을 나이지리아에 반환했어요. 같은 해 프랑스도 1892년 다호메이 왕국(현 아프리카 베냉 남부)에서 갖고 온 조각품 등 26점의 유물을 돌려줬답니다. 독일도 지난 20일 황동 문화재 20점을 나이지리아에 돌려주었어요. 영국 박물관 역시 나이지리아로부터 문화재 반환 요청을 받고 있는데 아직까지 명확한 의사를 밝히고 있지 않아요. 영국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엘기니즘(Elginism)]
강대국이 약소국의 문화재를 불법 도굴하거나 약탈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엘긴 백작이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문화재를 영국으로 들여온 후부터 생긴 단어예요. 유네스코에서는 전쟁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고 '엘기니즘'을 방지하기 위해 1954년 헤이그 협약 체결을 주도했는데요. 이 협약은 건축물·예술품·도서 등의 문화재를 의도적으로 파괴할 시 범죄로 규정하고 책임을 묻는 내용이랍니다.
▲ 영국 박물관 내‘엘긴 마블스’가 전시된 모습. 엘긴 경이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 온 조각들이에요. /위키피디아
▲ '엘긴 마블스’ 전시물 일부를 확대해보았어요. /위키피디아
▲ 영국 박물관에 전시된 이집트 로제타석.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