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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영구(營口)사람으로 벽돌을 굽고 기와를 쌓는 장인(匠人)출신이다. 생활환경이 좋지 않고 일할 때도 고생이 싫었기 때문에, 우리의 이 세상에는 고통만 있고 즐거움이 없음을 느꼈으며 여러 번 고통을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염불이 좋다는 말을 듣고 곧 발심하여 염불을 하였다. 출가 후 정식(正式)으로 불법을 듣고 나니, 염불하는 마음이 더욱더 간절해졌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염불할 것을 권하였다. 민국18년 내가 동북 하얼빈 극락사에서 제한(諦閑)노스님을 초청하여 계를 전(傳)하였다. 어느 날 어떤 스님이 나를 찾아와서 영구에서 수무(修無)스님이 오셨는데 전계(傳戒)하는 동안 발심하여 고행을 하겠다고 하였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극락사 감원직을 맡고 있던 정서스님이 요사채에서 방하나 내 주었다. 십여 일이 지난 후 다시 나를 찾아와서 가겠다는 것이었다. 정서스님이 옆에서 말씀하셨다. “스님이 발심하여 아픈 사람을 돌보겠다해 놓고서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가시겠다하는가? 너무 항심(恒心)이 없는 게 아닌가?” “제가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게 아니라 극락왕생을 하려 합니다. 부탁이니 감원스님께서 자비심을 내어 장작 몇 백 근만 준비하여 죽은 뒤 태워 주십시오.” 정서스님이 물었다. “언제 갈 것인가?” “열흘 내에 갈 겁니다.” 이 말을 마친 수무스님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수무스님은 다시 나와 정서스님을 찾아오셨다. “스님들께 휴가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오늘 갈 것인데 방하나와 거사님(중국에는 남여신도를 모두 거사라 함) 몇 분을 불러 염불하여 저를 바래다주십시오.” 정서스님은 빈 방을 찾아 널판자 몆 개를 펴서 침대를 만들고 또 외료(外寮)에서 스님 몇 분을 찾아서 염불 해주기로 했다. 수무스님이 왕생하기 전 염불을 해 주려고 모인 사람들이 “수무스님 오늘 곧 불국토로 가실 건데 시를 몇 구절 적어 주시던지 아니면 게송이라도 기념으로 남겨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우둔해서 시를 지을 줄도 모르고 게송도 지을 줄 모르오. 다만 경험의 말을 여러분께 들려주고 싶은데, 바로 말만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지혜가 아니오.” 수무스님의 이 말을 듣고 모두가 마음이 든든해지고 편안해짐을 느꼈다. 이어 대중이 다 같이 염불하고 수무스님도 서쪽을 향해 앉아 염불을 시작했다. 염불을 한지 15분도 채 못 되어 스님은 왕생을 하셨다. 상주(常住)에서 임시로 감실을 하나 만들고 밤이 되자 그를 감실로 옮겼다. 비록 더운 날씨였지만 그 얼굴이 맑고 수려함이 평소와 달랐다. 몸에서는 조금도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았으며 파리 한 마리도 붙지 않았다. 제한노스님과 일반 신도들이 서로 다투어 보러 갔고 희유함을 찬탄 하셨다. 이튿날, 나무에 불을 붙여 다비식을 지내는데 빨간 불과 흰 연기에 조금도 이상한 냄새가 없었다. |
첫댓글 dkfrh dlTsmsrjtqhek godehdgksmsrjtdl qorqjs djfuqtmqslek skan rhkstpdmaqhtkf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좋은말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