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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
六祖檀經
육조단경은 육조혜능대사의 법어를 상좌인 법해스님이 모은 것인 바,
법해 스님이 돌아가면서 도반인 도제스님에게 부촉하였고,
도제스님이 돌아가면서 제자 오진스님에게 부촉한 원본으로 여러 형태의 모본 사본 증보본이 증거없이 즐경되던 중
부촉 후 1000년이 지난 시기에 돈황본단경이 발견되어 원본으로 인정받은 것을 퇴옹성철 대종사께서 완역하신 것입니다
서문
조계육조(曹溪六祖) 이후 선(禪)은 천하를 풍미하여 당.송.원.명 시대에 불교가 꽃을 피우게 한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육조 본연의 종지가 많이 변하여 육조의 정통사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대저 육조의 종지는 육조가 항상 주창한 “오직 돈법만을 전한다(唯傳頓法)”고 하는 것으로서, 점문(漸門)은 일체 용납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교가(敎家)의 점수사상(漸修思想)이 혼입되어 선문(禪門)이 교가화됨으로써, 순수선은 없는 실정이다.
<단경>은 육조의 법문을 전한 유일한 자료이나, 그 유통과정에서 첨삭이 많아 학자들을 곤혹케 하였다.
다행히도 최고본(最古本)인 <돈황본단경>은 천여 년 동안 석굴에 비장되어 뒷사람들의 첨삭을 면할 수 있었으므로,
육조의 성의(聖意)를 잘 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가운데서 오락(誤落)된 부분은 각 유통분을 참조하여 엄정교정하고 사의(私意)는 개입시키지 않았으며, 토를 달고 번역을 하였다.
그리고 약해를 붙여서 성의 파악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니, 권두의 지침과 함께 읽기 바란다.
<단경>은 육조의 법손인 동토(東土) 선종의 근본이 되는 성전(聖典)이다.
<단경>은 전래되는 과정에서 다른 본이 많이 나와 학자들을 곤혹케 하였으나, 돈황고본이 발견되어 천고의 의심이 해결되었다고들 말한다.
그리하여 근래 일본의 구마자와 대학 선종사연구회에서는 그중 기본이 되는 다섯 본을 서로 대조하여
<혜능연구(慧能硏究)>라는 책을 발간함으로써 단경 연구에 공헌하였다.
다섯 본은 돈황본, 대승사본(大乘寺本), 흥성사본(興聖寺本), 덕이본(德異本), 종보본(宗寶本)이다.
또한 열두 종류의 다른 판(版)들을 영인 수록한 <육조단경제본집성(六祖檀經諸本集成)>도 좋은 자료이다.
이에 가장 오래된 돈황본을 중심으로네 본을 서로 대조하고 다른 여러 본을 참고하여 <단경지침>을 작성하여 보았다.
돈황본은 베껴쓸 때 부주의하여 글자를 잘못 쓰거나 빠뜨린 것이 많으나, 다른 본들을 참조하면 성의를 파악하는 데 별로 지장이 없다.
각 본의 자구(字句) 차이는 대강의 뜻만 취하고 하나하나 지적하지 않았으니 향해하기 바란다.
<단경>의 근본사상은 식심견성(識心見性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이요, 식심견성은 법신불(法身佛)인 내외명철(內外明徹 안팎이 사무쳐 밝음)이어서
견성이 곧 성불이므로, 깨달은 뒤에는 부처님의 행을 수행한다(懊後修行佛行)고 분명히 하였다.
뒷날 교가의 점수사상이 섞여 들어와 오후점수론(悟後漸修論 깨친 뒤 점차로 닦는다는 이론)이 성행하나,
이는 <단경>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나, 육조대사의 법손인 선가(禪家)는 <단경>으로 되돌아와 육조대사 본연의 종풍을 떨치기 바란다.
불기 이천오백삼십일년 (1987년)가
가야산 해인사 퇴설당에서
퇴옹 성철 씀
성철스님
1911년 2월 19일 탄신
1968년 해인총림 초대방장
1981년 6월 제6대 조계종 종정
1991년 ~ 1993년11월 제7대 조계종 종정 재임
1993년 11월 4일 입적
무상송
無相頌
大師言 善知識 惠能 與道俗作無相頌 盡誦取 依此修行 常與惠能 一處無別
대사 이르시길, “선지식아, 혜능이 너희 도인과 속인들을 위해 <무상송>을 설하리니 모두 외워 지니도록 하라.
이에 의지해 수행하면 혜능과 더불어 한 곳에 있음이 항상 다르지 않을 것이로다.”
頌曰
說通及心通 如日至虛空 惟傳頓敎法 出世破邪宗.
설법도 통하고 마음도 통함이여 해가 허공 한가운데 떠오름과 같도다 오로지 돈교법만 전하여 세간에 나와 삿된 종취를 깨뜨리네
敎卽無頓漸 迷悟有遲疾 若學頓敎法 愚人 不可迷.
가르침에는 돈과 점이 없으나 미혹과 깨침에 더디고 빠름이 있나니 돈교법을 배우면 미혹한 이도 더 이상 미혹치 않게 되느니라
說卽雖萬般 合離還歸一 煩惱暗宅中 常須生慧日
설한 즉 만 갈래요 만 갈래를 합한 즉 하나로 돌아오거늘 번뇌의 어두운 집에서 지혜의 해가 항상 떠오르도록 하도다
邪來因煩惱 正來煩惱除 邪正俱不用 淸淨至無餘
삿됨은 번뇌로 인하여 오고 바름이 오면 번뇌가 사라진다 하나 삿됨과 바름을 모두 쓰지 않으면 청정하여 남음 없음에 이르는도다
菩提本淸淨 起心卽是妄 淨性在妄中 但正除三障.
보리의 바탕은 청정하나 마음을 일으킴이 곧 망념이라 깨끗한 성품이 망념 가운데 오직 바름으로써 세 가지 장애를 없애느니라
世間若修道 一切盡不妨 常現在己過 與道卽相當
세간에서 도를 닦는다 하여도 일체가 모두 방해롭지 않으니 항상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어 있게 하라 도와 더불어 곧 함께 하느니라
色類自有道 離道別覓道 覓道不見道 到頭還自懊
형상이 있는 것에는 스스로 도가 있으니 도를 떠나서 달리 무슨 도를 찾겠는가
도를 찾으면 도를 보지 못하고 도리어 스스로 고뇌함에 이르나니
若欲貪覓道 行正卽是道 自若無正心 暗行不見道
도를 찾고자 바란다면 바름을 행함이 곧 도이니라 스스로 바른 마음이 없다면 어둠속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도다
若眞修道人 不見世間愚 若見世間非 自非却是左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나니 세간의 그릇됨을 보면 자신의 그릇됨이요 도리어 허물이라 여기니라
他非我有罪 我非自有罪 但自去非心 打破煩惱碎
다른 사람의 그릇됨은 나에게 죄가 있음이요 나의 그릇됨은 나 스스로에게 죄가 있음이니
스스로 그릇된 마음을 버리고 번뇌를 쳐부수어 저버리네
若欲化愚人 是須有方便 勿令破彼疑 卽是菩提見
어리석은 이를 가르치려 하거든 반드시 방편이 있어야 한다네 그의 의심을 깨뜨리지 않게 한다면 곧 보리를 보게 되리라
法元在世間 於世出世間 勿離世間上 外求出世間
법은 원래 세간에 있어 세간에서 세간을 떠나나니 세간을 떠나 밖으로 세간을 구하지 말지니
邪見是世間 正見出世間 邪正悉打却 菩提性宛然
삿된 견해가 세간이요 바른 견해가 출세간이로다 삿됨과 바름을 모두 깨드려 보리의 성품이 완연해지니라
此但是頓敎 亦名爲大乘 迷來經累劫 悟則刹那間
이는 돈교일 따름이며 이름하여 대승이라 하나니 미혹하면 오랜 세월을 거치고 깨치면 찰라이니라
돈오돈수頓悟頓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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壇經第七 南頓北漸章, 師曰
自性 無非 無痴 無亂 念念般若觀照 常離法相 自由自在 縱橫盡得 有何可立
自性自悟 頓悟頓修 亦無漸次 所以不立 一切法 諸法寂滅 有何次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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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경 제7 남돈북점장에 6조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성(自性) 무비(無非 : 戒) 무치(無痴 : 慧) 무란(無亂 : 定)...자성에는 그릇됨도 어리석음도 어지러움도 없도다
염념반야관조(念念般若觀照) 상리법상(常離法相)...생각생각마다 반야의 지혜로 관조하여 법상을 늘 버리고 떠나
자유자재 종횡진득(自由自在 縱橫盡得)...아무런 막힘이 없이 자유자재하고 종횡으로 모두를 다 얻었는데
유하가립(有何可立)...세울 무엇이 있겠는가
자성자오(自性自悟) 돈오돈수(頓悟頓修) 역무점차(亦無漸次)...자성은 스스로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는 것으로서 법을 세워 점차 수행하지 않음은
소이불립 일절법(所以不立 一切法)...어느 한 가지 법이라도 세우면 더딘 까닭에 세우지 않는 것이니라
제법적멸(諸法寂滅) 유하차제(有何次第)...제법이 본래 적멸해서 하나의 번뇌도 없거니 무엇으로 다음 법을 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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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들이 남종선은 혜능이요 북종선은 신수라 전하는데, 이는 근본 사유를 모르는 것이니라.
신수대사는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 주지로 수행하고, 혜능대사는 소주성에서 동쪽으로 35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르니,
법은 곧 한 가지로되 사람에게 남북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남북이 섰을 따름이로다.
무엇을 점(漸)과 돈(頓)이라 하는가.
법은 곧 한 가지로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어, 견해가 더디면 점이요, 견해가 빠르면 돈인 것이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며 사람에게 날카로움과 둔함이 있어 점과 돈이라 하느니라.
일찌기 신수대사는 혜능의 설법이 빠르고 곧바로 길을 가리킨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신수대사가 문인(門人) 지성을 불러 말했다.
“너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니 나를 위해 조계산 혜능대사의 처소로 가라. 예배하고 말씀을 듣되, 내가 보내서 온 것임은 굳이 밝히지는 말라.
듣고 그 뜻을 받아지녀서 곧 내게로 와라. 혜능대사와 나의 견해 가운데 어느 것이 더디고 빠른지 알고자 함이니라.
속히 돌아오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괴이하게 여길 터이다.”
지성은 크게 기뻐하며 뜻을 받들고 보름이 지난 후에 조계산에 이르렀다.
혜능대사를 뵙고 예배하고 설법을 들었으나 온 곳은 밝히지 않았다. 법을 듣고 말끝에 문득 깨쳐 자기의 본마음과 계합하자,
지성이 일어서서 예배하고 말하였다.
“화상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대사 문중에서 미쳐 깨닫지 못하였으나 화상의 설법을 듣고 문득 본마음과 계합하였습니다. 화상께서는 자비로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혜능대사가 이르길,
“그렇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로다.”
지성이 대답하길,
“말씀드리기 전에는 그러하였으나 말씀드리고 난 후에는 그렇지 아니합니다.”
육조께서 말씀하시길,
“번뇌가 곧 보리인 것도 그러하니라.”
대사께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듣자 하니 너의 선사께서는 계·정·혜(戒·定·慧)를 전함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친다 하였다.
신수화상께서 가르치시는 계정혜가 어떤 것인지 말해 보도록 하라.”
지성이 대답하길,
신수화상께서 계정혜를 말씀하기를, 모든 악을 짓지 않음을 계라 하고,
스스로 그 뜻을 깨끗하게 함을 정이라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함을 혜라 하고,
이를 계·정·혜라 말씀하였습니다.
신수대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만, 화상의 견해는 어떤지 알지못하겠나이다. ”
혜능화상이 답하길
“대사의 설법은 불가사의하나, 혜능의 견해는 또한 다르니라.”
지성이 묻기를,
“어떻게 다른지요?”
혜능이 답하기를,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지성이 화상께 계정혜에 대한 견해를 청하였다.
대사 말씀하시길,
“너를 위해 말하리니 나의 견처를 보도록 하여라.
마음땅에 그릇됨이 없음을 자성의 계요, 마음땅에 어지러움이 없음을 자성의 정이요,
마음땅에 어리석음이 없음을 자성의 혜라 하느니라.”
혜능대사께서 이어 말씀하시길,,
“너의 선사의 계정혜는 작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요,
나의 계정혜는 높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로다.
자성을 깨치면 계정혜 또한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이 말하길,,
“청컨대 왜 세우지 않는지 대사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 말씀하시길,
“자성에는 그릇됨도 어지러움도 어리석음도 없도다.
생각생각마다 반야로써 반조하고 법상을 늘 떠났거늘 세울 무엇이 있겠느냐. 자성은 단박에 닦는 것이니라.
세우면 더뎌지나니 그런 까닭에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이 예배하였으나 결국 옥천사로 돌아기지 않고 혜능의 문인이 되어 대사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 自性頓修(자성돈수 : 자성을 단박에 닦음) - 성철스님 해제
육조는 <제 8 무념편>에서 “미혹한 사람은 점차 계합하고, 깨친 사람은 단박에 닦는다”고 말함과 같이,
깨침은 모두 돈수임을 말하였다.
돈황본에서는 “자성을 단박에 닦는다”고 간명하게 말하였으나, 각 본(本)에서는
“자성이 스스로 깨쳐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아서 또한 점차가 없다(自性自悟 頓悟頓修 亦無漸次)”고 소상히 말씀하심으로써,
<단경>에는 오직 돈오돈수뿐이요 점수는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법화경(法華經)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이 법달이었다.
<법화경>을 칠 년동안 항상 외웠으나 마음이 미혹하여 정법의 당처를 알지 못했다.
“경에 의심이 있사옵니다. 대사께서는 지혜가 크시니, 원컨대 제 의심을 씻어주십시오.”
대사께서 말씀하시길,
“법달아, 법은 통달하였으나 너의 마음은 통달치 못하였구나. 경에는 의심이 없으나 너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는도다.
너의 마음이 스스로 삿되면서 정법을 구하는구나. 나의 마음 바름이 곧 경을 지니는 것이니라.
나는 평생동안 문자를 모르니, 네가 <법화경>을 갖고 와서 내게 읽어주도록 하라. 내가 들으면 곧 알 것이니라.”
법달이 경을 갖고 와서 대사께 한 차례 읽어드렸다. 육조께서 듣고 곧 부처님의 뜻을 헤아리고, 법달을 위해 법화경을 설하셨다.
육조께서 말씀하시길,
“법달아 법화경에는 많은 말이 없느니라. 일곱 권 모두가 인연법의 비유이다. 여래께서 삼승을 널리 말씀하심은 오로지 세인의 근기가 둔함 때문이니라.
경에 분명히 나와 있지만, 다른 승이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일불승뿐이로다.”
대사께서 또 이르길,
“법달아, 일불승을 듣고서 이불승을 구하여 너의 성품을 미혹케 하지 말라. 경중에 어느 부분이 일불승인지 말해주리라.
경에 ‘모든 부처와 세존은 오로지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이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닦아야 하겠느냐.
너는 나의 설법을 들으라.
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본래의 근원이 텅 비고 고요하여 문득 삿된 견해를 여읜다. 이것이 곧 일대사인연이니라.
안팎으로 미혹하지 않으면 곧 양변을 떠난다. 밖으로 미혹하면 모양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면 공에 집착한다.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에서 공을 떠나는 것이 곧 미혹하지 않는 것이니라. 이 법을 깨달아 한 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이다.
무엇에 마음이 열리는가. 부처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이로다.
네 문으로 나뉘나니, 깨달음의 지견을 열고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고 깨달음의 지견을 깨치고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열고 보이고 깨치고 들어감은 한 곳을 따라 들어간다. 곧 깨달음의 지견으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로다.”
대사께서 말씀하시길,
“법달아, 나는 항상 모든 세상사람들이 마음자리에 항상 스스로 부처님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기를 바라느니라.
세상사람들의 마음이 삿되면, 어리석고 미혹하여 악을 지어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연다.
세상사람들의 마음이 바르면, 지혜를 일으켜 관조하여 스스로 부처님의 지견을 연다.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고 부처님의 지견을 여는 것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대사께서 이르길,
“법달아, 이것이 <법화경>의 일승법이니라. 아래로 삼승을 나누는 것은 미혹한 사람을 위한 것이니, 너는 다만 일불승에 의지하여라.”
대사께서 말씀하길,
“법달아, 마음으로 행하면 <법화경>을 굴릴 것이요,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굴리고, 마음이 삿되면 <법화경>에 굴리게 된다.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을 굴리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는 것이다.”
대사께서 말씀하길,
“힘써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법화경>을 굴리는 것이로다.”
법달이 한 번 듣고 말끝에 크게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스스로 말하였다.
“화상이시여, 실로 이제까지 <법화경>을 굴리지 못하였나이다. 칠 년이나 <법화경>에 굴림을 받았습니다.
이후로는 <법화경>을 굴려 생각생각마다 부처님 행을 수행하겠나이다.”
대사께서 이르시길,
“부처님 행이 곧 부처이니라.”
그때 듣는 사람들이 모두 깨달았다.
四乘法
지상이라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화상께 예배하고 사승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묻되,
“부처님께서 삼승을 말씀하시고, 덧붙여 최상승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는 이해하지 못하니 가르쳐 주시옵소서.”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의 법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법에는 원래 사승법이 없나니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이 있을 따름이니라.
보고 듣고 읽고 외움이 소승이요, 법을 깨치고 뜻을 이해함이 중승이요, 법에 의지해 수행함이 대승이니라.
만법에 통달하고 만행을 갖추어 모든 것을 떠나지 않되 단지 법의 모양만 떠나며, 짓는 바가 없음을 최상승이라 한다.
승은 곧 행의 뜻이니, 입으로 다툼에 있지 않느니라.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되 내게 묻지 말라.”
견역불견見亦不見
신회라는 스님은 남양 출신인데 조계산에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화상께서는 좌선하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대사께서 일어나 신회를 세 차례 때리고 묻기를,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신회가 답하길,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시길,
나 역시 보기도 하고 안 보기도 하느니라 (見亦不見) .”
신회가 다시 묻기를,
대사께서는 어찌하여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보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본다고 하니라. 또한 보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
너는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하였거늘 그 까닭이 뭣인고?”
신회가 답하길,
아프지 않다 하면 나무와 돌 같은 무정과 같고, 아프다 하면 범부와 같아 곧 한을 일으키는 까닭입니다.”
대사 이르시길,
“신회야, 보고 보지 못함은 양변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이니라.
자신의 자성은 보지 못하면서 어찌 와서 사람을 희롱하는고?”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는 묻지 않았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 길을 찾으라. 마음을 깨쳐 스스로 본다면 법에 의지하여 수행토록 하라.
너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찾아와 혜능의 보고 보지 못함을 묻느냐.
나의 봄은 나 스스로 아는 것이요 너의 미혹을 대신하지 못하느니라.
너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않고 나의 보고 못 봄을 묻는가.”
신회가 예배하고 곧 문인이 되어 조계산에서 떠나지 않고 항상 곁에 머물렀다.
상대법(相對法)
즉리양변(卽離兩邊) : 中道
대사께서 문인 법해, 지성, 법달, 지상, 지통, 지철, 지도, 법진, 법여, 신회 등을 불렀다.
대사께서 이르시길,
“너희 열 명 제자들은 가까이 오너라. 너희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니, 내가 멸도한 후에 각자 한 방향의 어른이 될 것이니라.
나의 가르침을 너희는 설법하되, 본래 종취를 잃지 않게 하여라.
삼과의 법문을 들고 삼십육대법을 써 활용하되 나오고 들어감에 양변을 곧 여의어야 한다 (즉리양변(卽離兩邊)).
일체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을 여의치 말라.
누가 법을 묻거든 모두 쌍으로 말을 하여 대법을 취하고, 오고 감에 서로 인연하여 결국 두 가지 법을 모두 없애고 가는 곳마저 없어야 할 것이로다.
삼과법문이란 음과 계와 입이니라. 음은 5음이며, 계는 18계, 입은 12입을 말함이라.
무엇을 5음이라 하는가. 색음, 수음, 상음, 행음, 식음이니라.
무엇을 18계라 하는가. 6진과 6문, 6식을 가리킴이라.
무엇을 12입이라 하는가. 바깥의 6진과 안의 6문이로다.
6진은 색성향미촉법을 가리키며, 6문은 안이비설신의를 말함이니라.
법의 성품이 6식인 안식, 이식,비식, 설식, 신식, 의식과 육문 육진을 일으키고, 자성은 만법을 품나니 함장식이라 이름하느니라.
생각하면 곧 식으로 전환하여 육식이 일어나 육문을 나와 육진을 본다. 이것이 삼육은 십팔계이니라.
자성이 삿되면 18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성이 바름을 품으면 18가지 바름이 일어나는 것이다.
악한 작용을 품으면 곧 중생이요, 선한 작용이 곧 부처로다. 작용은 무엇으로 일어나는가. 자성의 대법으로 일어나느니라.
바깥 경계인 무정에 대법이 다섯 가지 있으니, 하늘과 땅, 해와 달, 어둠과 밝음, 음과 양, 물과 불이 그것이로다.
언어와 법과 상에 12가지 대법이 있느니라.
유위와 무위, 유색과 무색, 유상과 무상, 유루와 무루, 색과 공, 움직임과 고요함, 맑음과 흐림, 평범함과 성스러움,
승과 속, 늙음과 젊음, 큼과 작음, 길고 짧음, 높고 낮음이로다.
자성이 일으키는 작용에는 19가지 대법이 있다.
삿됨과 바름, 어리석음과 지혜, 미련함과 슬기로움, 어지러움과 고요함, 계율과 그릇됨, 곧음과 굽음, 채워져 있음과 비어 있음,
험함과 평탄함, 번뇌와 보리, 자비와 해침, 기쁨과 분노, 버림과 아낌, 나아감과 물러남, 남과 사라짐,
항상과 무상, 법신과 색신, 화신과 보신, 체와 용, 성품과 모양.
유정과 무정의 대법인 언어와 법, 모양에 12가지가 있고, 바깥경계인 무정에 5가지,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데 19가지,
이렇게 모두 36가지 대법을 이룬다.
이 36대법을 이해하고 활용하면 일체의 경전에 통하고 나고 듦에 곧 양변을 떠나느니라.
어떻게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가? 36대법은 사람의 언어와 함께 밖으로 나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안으로 들어와 공에서 공을 떠나느니라.
공에 집착하면 무명만 기르고, 모양에 집착하면 삿된 견해만 기르게 된다.
법을 비방하면서 곧 말하기를 문자를 쓰지 않는다 하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할지언대 사람이 문자와 합하지도 말하야 할 것이다.
언어가 곧 문자이니 때문이니라. 자성 위에서 공을 말하나, 바르게 말하자면 본디 성품은 공하지 않느니라.
미혹하여 스스로 현혹됨은 언어가 삿된 까닭이로다.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않고 밝음으로 어두운 것이니라.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고 밟음으로써 어두워지며, 어둠으로 밝음이 드러나느니, 오고감이 서로 인연한 까닭이로다. 36대법 또한 이와 같도다.”
대사께서 열 명의 제자에게 이르시길,
이후에 법을 전하되 이 한 권의 <단경>을 서로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지를 잃지 않도록 하라. <단경>을 이어지니지 않으면 나의 종지가 아니로다.
이제 얻었으니 대대로 유행케 하여라. <단경>을 얻은 사람은 내가 친히 준 것과 같은 것이니라.”
*
성철스님 해제
즉리양변(卽離兩邊: 양변을 떠남)
양변을 떠남은 中道를 말한 것이니, 불교의 근본 원리이다.
釋尊(석존)은 초전법륜(첫 설법)에서 녹야원 다섯 비구들에게 “여래는 양변을 떠난 中道를 정등각(正等覺) 하였다"고 유명한 ‘중도선언’ 을 하였다.
'용수'도 그의 <대지도론(大智度論) 四十三>에서 양변을 떠난 중도는 ‘반야바라밀'이라고 상세히 설하였으니,
육조가 항상 고창(高唱)한 '반야(般若)'는 곧 中道를 말한다.
게송을 전함(傳偈)
문인들이 듣기를 마치고 대사의 뜻을 알아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않고 법에 의지하여 수행할 터였다.
모두 한꺼번에 예배를 드리니, 대사께서 오래 머물지 않을 것임을 곧 알았다.
상좌인 법해가 대사께 여쭈길,
“대사님, 대사님께서는 가신 후에 가사와 법을 누구에게 마땅히 부촉할 것인지요?”
대사께서 이르시길,
“법은 곧 부촉하여 마쳤으니 다시는 묻지 말라. 내가 멸도한 후 20년 동안 삿된 법이 요란하여 나의 종지를 미혹케 할 것이니라.
한 사람이 나와 신명을 아끼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종지를 세우리니, 이것이 곧 나의 바른 법이로다.
가사는 전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가 믿지 않을진대, 선대 다섯 조사께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는 게송을 내가 외워줄 것이니라.
초조인 달마대사의 게송의 뜻에 따르면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두 듣도록 하라.”
선대 다섯 조사께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는 게송
1조 달마대사 게송
吾本來唐國 傳敎救迷情
一花開五葉 結果自然成
내 본디 당나라에 와서 가르침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나니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리고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도다
2조 혜가대사 게송
本來緣有地 從地種花生
當本元無地 花從何處生
본디 인연은 땅에 있어 땅을 따라 씨앗과 꽃이 피고
본디 땅이 없다면 꽃이 어느 곳을 따라 피어나리오
3조 승찬대사 게송
花種雖因地 地上種花生
花種無生性 於地亦無生
꽃과 씨는 땅을 인연하여 땅위에서 씨와 꽃이 피나니
꽃과 씨는 나는 성품이 없어 땅에서 남 또한 없도다
4조 도신대사 게송
花種有生性 因地種花生
先緣不和合 一切盡無生
꽃과 씨는 나는 성품이 있나니 땅을 인연하여 씨와 꽃이 피고
앞의 인연이 화합치 아니하면 일체가 모두 남이 없느니라
5조 홍인대사 게송
有情來下種 無情花卽生
無情又無種 心地亦無生
유정이 와서 씨를 뿌리니 무정의 꽃이 곧 피는구나
정도 없고 씨도 없으니 마음땅에 역시 남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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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초조 달마대사께서 이후 200년에 끝나리라 설하신대로
정법의 증거로 전한 가사와 바루는
혜능대사 대에서 끝나고 법을 부촉하는 게송을 남긴다
6조 혜능대사 게송
心地含情種 法雨卽花生
自悟花情種 菩提果自成
마음땅이 정과 씨를 머금으니 법의 비가 곧 꽃을 피우고
꽃과 정과 씨를 스스로 깨달으니 보리의 열매가 절로 이루어지는도다
법을 전한 계통(전통)
8월 3일이 되자 육조께서 식사를 마치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리에 앉으라. 이제 너희들과 이별해야겠다.”
법해가 묻기를,
“이 단박에 깨닫는 가르침의 법을 전수하는 것은 이제껏 몇 대에 걸쳐온 것인지요?”
육조 이르시길,
“처음에 일곱 부처님이 전수하였으니,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7대 이니라.
대가섭은 제8대, 아난은 제9대, 말전지는 제10대, 상나화수는 제11대, 우바국다는 제12대, 제다가는 제13대, 불타난제는 제14대,
불타밀다는 제15대, 협비구는 제16대, 부나사는 제17대, 마명은 제18대, 비라장자는 제19대, 용수는 제20대, 가나제바는 제21대,
라후라는 제22대, 승가나제는 제23대, 승가야사는 24대, 구마라타는 제25대, 사야타는 제26대, 바수반다는 제27대, 마나라는 제28대,
학륵나는 제29대, 사자비구는 제30대, 사나바사는 제31대, 우바굴은 제32대, 승가라는 제33대, 수바밀다는 제34대,
남천축국 왕자 셋째 아들 보리달마는 제35대, 당나라 스님 혜가는 제36대, 승찬은 제37대, 도신은 제38대, 홍인은 제39대, 혜능은 제40대이니라.”
대사께서 다시금 말씀하시길,
“오늘 이후로는 서로 전수하여 모름지기 의지하고 약조하여 종지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
성철스님 해제 :
옛역사는 증빙의 불충분으로 고증이 어렵다. 종문법통에 대하여 이설이 있긴 하나,
가섭으로부터 달마까지 이십팔대설은 육조스님과 같은 해에 입적한 영가의 <증도가>에서도 “이십팔대는 서천의 기록이로다.”라고 하였다.
세상을 떠나심(滅度)
대사께서 게송을 마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였다.
“너희들은 잘 머물라. 이제 너희들과 이별하리라.
내가 간 후에는 세상의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사람들의 조문과 돈, 비단을 받거나, 상복을 입지 말도록 하라.
그것은 성인의 법이 아니며, 나의 제자 또한 아니로다.
내가 살아 있던 날과 마찬가지로, 모두 단정히 앉아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고,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으며, 오로지 적정하면 이것이 곧 큰 도니라.
내가 떠난 후에 오로지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던 날과 마찬가지일 것이나,
내가 세상에 있더라도 너희가 법의 가르침을 어긴다면 내가 있어도 이익이 없으리라.”
대사께서 말씀을 마치고 삼경에 문득 천화하시니, 대사의 춘추는 일흔여섯이었다.
대사께서 돌아가신 날, 절안에 기이한 향내음이 가득하여 여러날을 지나도록 흩어지지 않았다.
산이 무너지고 땅이 움직이며, 숲의 나무가 희게 변하고,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바람과 구름이 빛을 잃었다.
8월 3일에 돌아가시고 11월에 이르러 화상의 신좌를 모시어 조계산에 장례하니, 용감(龍龕 - 신주를 모셔두는 곳) 속에서 흰 빛이 나타나
곧장 하늘을 뚫고 올라가더니 이틀이 지나서 사라졌다.
소주 자사 위거는 비를 세우고 지금까지 공양하도다.
후기(後記)
이 <단경>은 상좌인 법해스님이 모은 것인 바, 법해 스님이 돌아가면서 도반인 도제스님에게 부촉하였고,
도제스님이 돌아가면서 제자 오진스님에게 부촉하였다.
오진스님은 영남 조계산 법흥사에서 지금 이 법을 전수하고 있다.
이 법을 부촉함에는 모름지기 상근기의 지혜여야만 하며, 마음으로 불법을 믿어 큰 자비를 세우고 이 경을 지니고 의지하여 전승하기를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았다.
법해 스님은 본래 소주 공강현 사람이다.
여래께서 열반하시고 법의 가르침이 동토로 흘러와 머무름이 없음을 공히 전하나니, 이는 곧 나의 마음이 머무름이 없는 것이다.
이 진정한 보살이 참된 종지를 설하고 참된 비유를 행하여 오로지 큰 지혜의 사람만을 가르치나니, 이것이 뜻에 의지하는 바이다.
무릇 제도하기를 서원하고 수행하고 수행하되, 어려움을 만나도 물러서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면 능히 참아, 복과 덕이 깊고 두터워져야만
바야흐로 이 법을 전수할 수 있다. 근성이 감내하지 못하고 재량이 없으면,
이 법을 구하더라도 법을 어긴 부덕한 사람이니 망령되이 <단경>을 부촉하지 말 것이다. 도를 같이하는 모든 이에게 알려 이제 비밀한 뜻을 알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