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담 제 7화]
간밤 한밤중에 나트랑 기차역에서 내려 배낭을 짊어지고 역 주변을 걷다가 Sen Vang 이라고 하는 숙박 시설을 찾아 들어가 투숙했다. 아파트 시설로 숙박업을 하는 업종인데 방은 호텔 급으로 꾸며 놨다. 다만 종업원이 영어를 잘 못해 관광정보를 입수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나트랑의 주요 관광 명소를 찾아가는 방법을 묻거나 데일리 투어 일일 관광 프로에 참가 할 수 있게 주선을 부탁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무작정 거리로 나서 물어 물어 찾아 다녀야 한다.
스마트한 젊은이들은 영어를 하기에 사람을 봐 가며 길을 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우선 찾아간 곳이 "추 아롱 선" 용선사라는 절이다. 여기 저기 화려한 용 모양의 장식을 한 거대 사찰이다. 대웅전 격인 본당에서는 승려와 신도들이 불공을 드리고 본당 뒤쪽 높은 언덕을 계단으로 오르니 10여 m 쯤 될듯한 와 불상이 있고 정상에는 7미터 높이의 연화대 위에 24 m의 초 거대 좌불상이 안치 되어 있다 .
역시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와 있어 혹시 그들을 좀 따라 다녀 볼까 하는 생각으로 말을 걸어보니 경계하는 눈치로 냉담하다.
이럴 땐 동포보다 외국 관광객이 더 친화적이다.
한 청소년에게 말을 걸어보니 할머니를 모시고 부모와 함께 관광을 온 가족들이다. 그들은 다인승 관광용 차를 대절해 타고 다니는데 해변으로 간다기에 편승을 부탁하니 쾌히 승낙한다.
그 청소년은 학생인데 11 학년이라고 하니 아마 우리의 고 2쯤 되는 듯하다.
그와 에듀케이셔널 시스템을 화재로 대화하니 영어를 곧 잘한다.
그들과 헤어져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혔고 얼굴에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다음 행선지를 찾아 나섰다.
관광안내서 에서 우선 가보라는 곳이 "뽀나가르 첨답" 이기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오토바이 꾼이 접근 한다.
여기는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그런 영업이 성업 중이다.
관광 안내서의 사진을 보여 주니 오만동, 약 3,000원 이라기에 오케이 했다.
그가 씌워 주는 화이바를 쓰고 그의 뒷자리에 올라타 오토바이 홍수 속으로 끼어 들어 약 2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뽀나가르 참탑은 10세기경 이 지역 왕국의 유적지인데 인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사원이라고 한다. 언뜻 인상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연상 케 하나 그리 정교한 축조 물은 아니다.
어쨌거나 나트랑의 대표 관광지 라니 찾아보는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베트남여행담 제8화]
윤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2030 엑스포 유치전을 마치고 베트남을 방문했다.
경제 사절단 200명 인가도 함께 왔다고 한다.
한국과 베트남간에 경제협력 할게 많은 모양이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여섯 군데의 생산 기지를 운영하면서 16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엘리트들이 선망하는 좋은 직장 이라고 한다
베트남은 중국 다음으로 희토류 다량 보유국이라고 하니 우리의 희토류 안정 수급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슈퍼마켓에 들어가 보면 한국 제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고 특히 건강식품류에 대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하긴 나도 현지인과 대화 중 내가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고 하기에 홍삼을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한국 홍삼 홍보를 하기도 했다.
호화스럽게 지어진 대형 롯데마트도 성업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트남여행담 제9화]
아침 7시 30분 호치민 시에 도착해 하차했다. 야간열차로 간밤 10시 15분에 나트랑(현지에서는 나짱이라고 한다)을 출발했으니 이번에도 10시간쯤 기차를 탔다.
우선 여행자 거리로 가기 위해 오토바이를 탔다. 달라는 값 7만 동을 깍지않고 다 주었다. 목숨을 그에게 맡기는 거니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안으려고 해서다.
복잡한 거리를 헤짚고 달려 약 1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오토바이가 교통 수단의 대세인 듯 거리마다 오토바이 물결이 넘쳐 난다.
2007년에 이곳에 왔을 때 오토바이가 400만대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보다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서하는 고생이지만 무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다.
일단 해양 휴양도시라는 붕따우 가는 풍짱 버스 터미널을 찾아 왔지만 거리의 풍물을 구경하고 호텔을 정해 보려고 거리로 나서서 무작정 걸었다.
이 지역이 지도에는 여행자 거리와 인접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호텔이 귀하다. 한참만에 한군데 눈에 띄어 찾아 들어가 보니 1박에 80만 동이라고 하고 오늘 하루만 빈 방이 있을뿐 내일은 이미 Full 이어서 방이 없다고 한다.
그만두고 나와 또 거리를 걷고, 국수는 많이 먹었으니 밥이 있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 아침 겸 점심을 했다.
풍짱터미널로 다시와 붕따우 행 버스표를 예매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에어컨이 되는 터미널 대합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11시 30분 발 버스로 붕따우로 향해 3시간만에 도착했다.
이 고장에서 묵을 건지 다시 호치민으로 갈 것인지를 못 정하고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호치민 가는버스는 매 시간마다 있다는걸 확인해 두었다.
호치민에 호텔을 예약할 수 있으면 다시 호치민으로 갈 마음도 있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지만 호텔은 많고 값도 30만동 대의 저가 룸도 많이 있으나 내 스마트폰으로는 예약을 하지 못하겠다.
인천공항에서 로밍도 한 휴대폰을 분실해 하노이에서 새로 사 어렵게 임시개통한 폰의 결함인지 내가 못 하는건지 답답하다.
젊은 세대는 쉽게 할 수 있겠기에 거리 카페에서 냉커피 한잔 사 마시고 그걸 부탁해 보니 처음엔 해 줄 듯 하다가 결국 못 하겠다고 한다.
롯데리아가 있기에 들어가 내가 코리안이다. 나를 좀 도와 달라 하며 젊은 종업원에게 부탁해 봤지만 역시 못 해 준다.
호텔을 찾아 들어가 방값을 알아보니 여기도 역시 80만동이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30 ~40만동 짜리도 많은데 이건 좀 억울하다.
다시 좀 더 돌아다니다가 40만 동짜리 저가 숙소를 찾았다. 무더위에 배낭을지고 너무 많이 걸어 피로하기에 그냥 체크인 했다.
복작대는 혼잡한 도시 호치민에서 보다는 프랑스식민지 시절 총독의 별장도 있었다는 휴양지에서 지내다 가는것도 괜찮을것 같다.
우선 샤워 하고 땀에 젖은 옷가지를 모두 빨아 널었다. 슈퍼에 가서 한글 '렛떼루'가 붙은 술 1병과 과일류 바게트 빵 등 간식거리를 사다가 호텔 방에 펼쳐 놓고 먹고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그 동안은 동창 백암형이 추천한 호치민 보트카를 주로 마셨지만 짝퉁 한국술이 어떤지 맛좀 보려고 바꿔 보았다. 소주도 아니고 마주앙도 아닌 어정쩡한 맛인데 여기 술은 대체로 마일드하다.
날씨가 무덥기 때문일 듯 하다.
[베트남여행담 제10화]
호텔에서 나와 멀리 바라보이는 추모공원 인 듯한 높다란 언덕에 올라가 봤다.
녹지공원을 잘 조성했고 하늘을 찌를듯한 충혼탑도 세워져 있다. 문자는 오직 베트남어 뿐이어서 누구의 넋을 기리 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남북 베트남전 중 특히 북 월맹군의 전몰자를 추모 한다는 것일 듯 하다.
그 주변에는 호치민의 기념관인지 사당인지 그런 건축물도 있다. 호치민 흉상 하나를 그것도 양 팔이 잘린 등신대의 흉상 하나를 안치 하기 위해 그토록 거창한 건축물을 세워 놓은 것이 유난스럽다.
넓은 광장에는 호치민의 어록을 널다란 대리석 판에 새겨 여기 저기 세워놨는데 모두 베트남어여서 뭔 말인지는 알 수가 없다.
오토바이를 불러 타고 붕따오 남단 해변에 있는 예수 상을 방문했다. 높은 언덕 위 800여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신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인물과 그들의 행적을 석고 상으로 만들어 세워 놔 성서를 읽은 사람들의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이 예수 상은 1974년부터 94년 기간 중 축조 되었다는데 해발 186m 산 정상에 높이 32m, 양팔 벌린 간격 18.4m 의 아시아 최대 예수상이라고 한다. 마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의 예수상과 많이 닮았다.
예수상 내부에는 나선형 대리석 계단을 설치해 벌린 양팔 어깨 높이까지 올라가 해변을 조망할 수 있다.
예수상에서 내려와 북쪽으로 한참 걸으면 사우비치에 이른다. 모래사장도 넓직한 해수욕장이다. 해변에 설치한 파라솔과 등의자 탁자를 5만동 주고 렌트해 옷을 벗어놓고 바닷물로 뛰어들어 해수욕을 했다.
[베트남여행담 제11화 /마침]
베트남 북쪽 하노이에서 시작해 기차, 국내선비행기, 장거리버스를 적당히 섞어 타면서 계속 남쪽으로 이동해 최 남단 붕따우 까지 2천 여 Km를 종주했다.
그러나 2주 간의 일정 제한으로 주마간산 식 행보이고 때로는 방랑이나 방황이기도 할 뿐 내실있는 관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자유배낭여행의 한계일 듯 하다.
나는 이번 여행을 떠나올때 해 본 생각이 있다.
여행에 대한 열정과 건강이 아직도 유지 되는지를 확인해 보려는 생각이었다.
여행에 대한 열정이야 언제나 변함 없이, 무모할 정도로 강하고 적극적이라 할 수 있으니 문제가 될게 없다.
비교적 고령에 건강이 따라 줄지를 염려했지만
여행 중 볕이 따가운 한낮에도 발걸음을 성큼성큼 내딛으며 하루 1만 보쯤도 걸을 수 있었고 때로는 배낭을 짊어지고 저렴한 숙소를 찾아 다니기도 했다.
피로가 쌓이지 않을 만큼 잠을 잘 자고, 현지 음식도 구미에 맞아 잘 먹고 잘 소화 시키니 아직은 내가 자유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건강이 유지 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여행 방식이 무모하고 졸렬한 것은 사실이다.
신세대는 스마트 폰으로 모든 여행 정보를 손쉽게 입수하고 유용하게 활용하지만 그것을 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 애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들여다 보면서 길을 걷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겼으나 그것이 낯선 곳에서 길을 찾아 다니는 방식이라니 나무랄 수도 없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비행기 표도 싼것을 구매하고 호텔도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것을 찾아 손쉽게 부킹 하거나 예약을 한다.
이후 여행 기회를 다시 갖게 된다면 필히 스마트폰 활용 능력을 키워 지니고 길을 나서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