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푸뉴마 호 데오스 카이 투스 프로스쿠눈타스 아우톤~)
“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 :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푸뉴마티 앞에 관사가 없다) 영이 된 나다. 말씀이 육체(사르크스)가 됨이다. (알리데이 앞에 관사가 없다) : 진리가 된 나(그리스도가 된 나)다.
영(하나님) 앞에 그리고 알레데이아(진리인 그리스도) 앞에 엔 전치사가 있다. 영과 진리가 하나다. 엔 전치사는 속에서 하나로 있어서 분리될 수 없다. 결국,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재해석하면 ”그 하나님은 영(관사 없음)이시다. 그를 ‘프로스퀴눈타스(경외, 공경)’하는 자들은 영(관사 없음)과 진리(관사 없음)가 되어서 ‘프로스퀴네인(경외 공경)’하라.
‘프로스퀴눈타스’를 경외, 공경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는 것도 언어의 한계다. 하나님은 모든 언어를 초월하신 분이다. 내가 하나님과 하나 되면 하나님이 되는 것이지, 대상에게 예배드리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번역된 성경은 생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누가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겠는가? 깨달아 회복된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 지상명령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