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얻었다. 서재를 열고 글을 쓰고자 했으나 현실이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하고 있던 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 12월 말로 정리하게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은 직장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말한다. 물론 돈을 번다는 면에서는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돈만이 행복을 가져다 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집 생각, 자식 생각에 돈 버는 기계는 아닌지, 60 중반의 나이까지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었으면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자격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말이다.
아이들이 많고 돈을 버는데 우선순위를 두지 않아 모아논 돈은 없지만 서재에서 책이나 읽고 글을 쓰면 큰 돈이 들어갈 일도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돈은 밖에서 활동하는데(체면치레 하고, 인간의 도리를 하는데) 거의 썼지 그동안에도 나 자신에게는 별로 돈을 쓴 적이 없다.
나의 인생에서 밀포드 트레킹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밀포드를 걸으면서 과연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아닐까 하는 생각, 욕심도 버렸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 나 역시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자리에 연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런 인생을 살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활동을 하면서도 책은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쓸 수 없었다. 딱히 글을 쓴다고 해서 전문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무언가에 대해 쓴다는 것은 행복하다. 최근 목성균의 수필을 우연하게 읽으면서 나도 저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어서 더 인정받게 된 수필가, 그처럼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자연의 신비로움을 덜 체험했으며, 정서적으로도 메말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다양한 경험과 산을 다니면서 체화된 나름의 생각이 있다. 그처럼 아름다운 글을 못 쓸지 모르겠으나 내가 느낀 느낌을 쓰고자 노력할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고자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니까.
10월 3일 오래 전부터 큰집 제사를 개천절에 지냈는데 최근에 가지 못해 마음으로 늘 죄송한 생각이었는데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큰집 희갑 형과의 잦은 만남도 영향이 있었다. 집사람과 다녀왔다. 8일 방원제에 적십자동문회원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11일에는 고교동창들 모임에 들렸다가 대학의 전임 처장들과의 저녁모임에 참석했고, 12일 새벽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정순관 지방분권위원장 모친상 조문을, 13일은 산하모임에서 무등산 종주를 하고 저녁에는 서삼석의원과, 15일에는 광주공고동창산악회 창립총회가 있었는데 내가 초대 회장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나이가 맡은 일도 내려놓아야할 때여서 한사코 사양했으나 후배들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어려웠다. 정에 약한 성격 탓이리라. 17일에는 광주은행 송종욱 행장이 푸른용봉회원들을 초대하여 만찬이 있었고, 18일은 늦둥이 진영이의 중학교 입학을 위한 면접이 부안에서 있어 오전에 갔다가 면접을 마치고 다시 광주로 왔다 곧바로 해남으로 내려가 해남동창회가 주최하는 가을음악회에 참석했다. 19일 점심 때 고 김남주 시인의 기념홀 추진위원장 모임이 있어 참석하고, 20일은 총동창회 골프대회에 참석했다. 21일 광주공고 한마음잔치에 참석하여 '자랑스러운 공고인상'을 수상했다. 큰 아이 부부가 천안에서 내려와 시상식에 참석하고 바로 천안으로 올라갔다. 22일은 남평아파트자치위원회가 있어 회의를 주재하고, 24일은 동맥회 운동이 있었다. 25일 점심 때는 공고인상 수상을 축하하는 전대동창산악회 후배들과 모임을 했고, 저녁에는 전남대총동창회 집행위원회가 있었다. 27일은 용봉인합동등반이 대둔산에서 있었고, 29일은 공고동창산악회 임원회의를 했다. 30일 광주은행에서 전남대총동창회와의 제휴카드 서약식을 하고, 오후 기차로 상경하여 저녁에는 정양석, 서삼석, 송갑석 의원과 이경춘 법원장 등 후배들과 만찬을 가졌다. 31일 후배들이 방원재로 찾아와 10월의 마지막 밤을 흥겹게 보냈다.
11월1일 개관 준비중인 무등산생태탐방원을 방문하여 직원들과 점심을 하고(이재동 원장이 고교 후배), 3일에는 광주 4개대학 축구대회가 있어 참석하고, 4일에는 아크로에서 운동을 하고, 6일에는 서울 국회를 방문하여 후배들과 저녁을 했다. 8일 목포에서 새로 부임한 전대 동문 후배들과 저녁이 있었고, 9일에는 모교 보직교수들과 총동창회 회장단과의 부부동반 모임이 정석우 상임부회장 초청으로 진행되었다. 10일 광주공고동창산악회 첫 산행이 내변산에서 있었고, 11일은 서울에서 골산회 산행이 있어 새벽 기차로 올라가 마지막 기차로 내려왔다. 14일 서울에서 공직에 있는 동문들과의 만찬이 있었고, 15일 아침에는 서울동창회 리더스포럼 창립조찬 강의가 있었는데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 관해 문정인 대통령 안보특보의 강연을 들었다. 17일은 축령산을 다녀왔고, 18일은 금당산에 올랐다. 19일 서울에서 김완기 전 수석 등 몇 분과 점심을 하고, 저녁에는 부윤경 삼성 부사장이 광주로 내려와 조영택 사무총장과 저녁을 했다. 21에는 전남개발공사 사장과 저녁을 하고 22일은 조만형 동신대교수가 모교에 발전기금을 전달하는데 배석하고나서 조 교수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23일은 공고송년모임이 있어 참석하고, 24일은 푸른용봉회 후배들과 청산도 트레킹을 1박2일로 갔다. 26일에는 목포에서 저녁을, 27일은 용현회 송년모임을 라마다호텔에서 가졌다. 28일은 동맥회 송년 골프모임이 있었는데 니어리스트상을 받았다. 30일 영암 솔라시도 현장에서 양덕준 회장과 만나 50만 평의 사업부지 활용에 대해 논의하고, 오후에는 방원재를 방문한 후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일신문 안찬수 편집국장이 광주에 내려와 방원재를 방문하여 함께 자리를 했다.
12월 1일 전대동창산악회 송년산행과 송년회가 있었고, 2일에는 장수에서 운동을 했다.
비가 오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음악을 들으며 보이차를 마시고 이 글을 쓴다. 이제 이러한 아름다운 일상이 계속될 것이다. 아침식사 후 드들강을 걸으며 글의 주제에 대해 생각할 것이고, 오후에는 독서를 통해 나를 깨우칠 것이다. 독서와 사색은 나를 살찌게 하고 사유의 폭을 넓혀 주겠지. 여유가 있으면 아직 걷지 못한 길을 걸으며 또 생각하고 글을 쓰겠지. 한 장 달랑 남은 달력을 보면서 금년에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 보고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야겠지, 12월은 이미 약속된 일정들이 많아 글쓰기가 쉽지 않겠지만 16일부터 계획하고 있는 일본 시코쿠의 우동투어를 다녀와서 그에 대한 글을 쓰겠지.
(기록을 위해 또 하나, 방원재의 게스트 룸을 편백황토온돌로 만들었다. 진즉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보류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사업을 하는 양철훈 사장이 A채널의 '서민 갑부'에 출연하게 되어 시공현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에게 파격적인 가격에 시공을 제안했고 나도 흔쾌하게 답을 하여 시공이 이루어졌다. 2일 만에 공사가 완공되어 촬영을 잘 마쳤고, 나도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 자고 나니 상당히 효과가 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의 피로가 모두 없어질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