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찾아 가시네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참 뿌듯한 기쁨이고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오래 동안 살았고, 반갑고 정든 사람들이 많고, 자신의 아련한 삶이 묻어있는 산, 들, 집, 길, 나무도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도 있고,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던 추억도 있고, 말 못할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던 많은 시간들이 모든 것에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고향은 내가 태어나 살던 곳이고, 언제나 그리운 엄마의 품속과 같은 곳으로 고향에는 변함없이 어머니가 언제나 계시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곳 - 그 곳은 항상 달려가고 싶은 곳입니다. 타향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삶의 하루하루를 힘들고 어렵게 살았다면, 가슴에 미움이나 서러움, 온갖 괴로움으로 찢어지는 듯 한 아픈 삶을 살았다면 날이 갈수록 고향은 그립기만 하고 언제든지 고향 길에 빨리 오르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 당신의 본향으로 가신다고 하십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이며, 세상 사람들을 데리고 가시고자 하시는 곳으로 가시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도 받으셨지만 고통과 괴로움과 안타까운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빨리 가시고 싶은 것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 사람들의 보호자를 보내시기 위해서 고향으로 가십니다. 당신의 추억이나 엄마의 품이 그리워서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지금 근심으로 가득 차있어서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가시면 아무도 돌봐 줄 분이 계시지 않는 고아와 같은 신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면 틀림없이 이제는 끝장이라고 생각되어서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할 지도 모릅니다. 주님과의 이별은 누구든지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역설적으로 당신께서 가시는 것이 잘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보호자를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제자들의 보호자가 되는 것은 한계에 이름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에게 충분히 만족할 만한 보호자가 되어 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로서 보호자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생활의 문제도 많이 있지만 더욱 어려운 일은 정신적인 지도와 동반의 어려움입니다.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서 같이 성장하게 되는 정신적인 성장과 성숙에 대한 내면의 어려움에 대하여는 보호자로서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많았습니다.
보호자도 되지 못하고 방관자도 되지 못하면서 부모들은 실망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같이 변화하고 따라갈 수 없는 부모들의 아픔은 정말 인간으로서 한계점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성령을 보내주시어 진정한 보호자의 역할을 다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모든 사정을 샅샅이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맞춤형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당신께서 맞춤형 목수를 하신 것과 같이 각 사람에게 적합한 맞춤형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한 세 가지를 맞춤형으로 성령께서 밝혀 주실 것은
1) 죄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밝혀 주실 것과,
2) 정의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3) 올바른 심판에 대하여 생각을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죄(sin)는 잘못(error)과 완연히 구별되어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잘못하면 하느님께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정해져 있는 것을 지키지 않으면 죄이고, 어떤 사랑도 율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잣대에 무서워서 사랑을 죄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항상 당신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지금의 잘못된 삶에 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적극적인 큰 사랑의 삶을 성령께서 새롭게 밝혀주신다는 것입니다.
의로움은 주님의 구원을 위한 헌신을 세상의 가치관과 잘못된 사람들의 편견으로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복음 선포에 대한 사명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사랑에 대한 진실을 멀리하고 두려움에 숨어버리고 마는 겁쟁이 제자들과 우리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일깨워 주셔서 용기와 지혜로 복음 선포에 생명을 다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심판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을 통하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심판할 자격은 없습니다. 주님을 심판한 사람들은 이미 하느님에 의해서 심판 받았고 우리는 지금도 심판하고 있습니다. 잘못 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성급히 심판하고 살아갑니다. 이제 성령께서 심판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그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잘 못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 주시는 진리의 성령이심을 잊고 살아갑니다. 어렵고 힘들 때, 외롭고 괴로울 때 곁에 계시는 보호자 성령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외면하고 살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은총을 주시는 보호자 성령이심을 잊고 살아갑니다. 이제 새로운 눈으로 성령을 맞아들입니다.
사랑의 주님! 당신의 성령을 보내 주시어 저희 마음 가득히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사오니 마음이 조급한 저희에게 어서 오소서. 주님!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