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버리고 세례 받은 후 북한으로 돌아가 [2024. 8]
“철승아, 너 세례 받아라.”
초대형 주체탑이 감시하듯 내려다보는 평양 시가를 걷고 있던 철승에게 어머니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세례가 뭡니까? 어머니?”
난생 처음 듣는 세례라는 단어에 철승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철승은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덩달아 목소리를 낮췄다. 다행히 만수대 분수 쪽으로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유아 세례 받았다. 너도 세례를 받아라”
철승의 어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앞을 보며 말했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기회가 될 때마다 철승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강권하셨다. 세례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받는 것인지 언질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세례를 받으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철승은 답답했지만 주변의 보는 눈을 의식해서 더 이상은 묻지 않고 입을 닫았다. 그런데도 세례를 받으라는 어머니의 요구는 그칠 줄 몰랐다.
“도대체 세례를 어디서 어떻게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의 당부는 철승의 뇌리에서 맴돌았다. 진저리가 쳐질 만큼 세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나올 리 없었다.
야속하게 세월만 흘러가 어머니에서 세례라는 말을 처음 들은 지 어느덧 십 년이 되었다. 그 즈음 중국에 나온 철승은 우연한 기회에 일꾼의 아내를 만나 도움을 받는 일이 있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간부복 입은 이 사람 여기 삽니까?”
철승이 다짜고짜 일꾼에게 사진을 들이밀며 물었다. 몇 사람이 십자가 앞에 모여 찍은 사진이었다. 일꾼은 목회자 가운을 입고 사진 속의 무리 가운데 서 있었다.
“가운 입은 사람이 접니다만 무슨…”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철승이 낚아채듯 찾아온 용건을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세례가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어머니는 제가 세례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도통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왠지 교회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 이번에 친척 방문으로 중국에 나온 김에 교회당 문 앞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신고당할까 봐 들어 가려다 말고 문고리만 몇 번 잡아보고는 뒤돌아섰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제 친척집에 갔다가 선생님 사진을 봤다 말입니다. 간부복 입은 선생님을 보는 순간 내가 그토록 소원하던 세례가 무엇인지 알려 줄 분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바로 달려왔습니다.”
철승은 쉬지 않고 말했다. 눈빛은 간절하다 못해 애절했다. 철승의 이야기는 분명 놀라웠지만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는 조심스러워 일꾼은 주저했다. 북한에서 보낸 특무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꾼은 일단 기도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사정이 급하시겠지만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다시 이야기하십시다. 아침에 전화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철승과 헤어진 일꾼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후서 4장 2절 말씀이 떠올랐다. 이 모든 일이 북한이 꾸민 덫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은 기도가 깊어질수록 잡아가도 그만이지 하는 담대함으로 바뀌었다.
의문이었던 수수께끼가 다 풀렸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태양과 지구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금 철승 형제님이 앉아 있는 공간을 태양이라고 가정하십시다. 7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아마 메주 콩알만 할 겁니다. 거기서 산과 바다 등 자연이 있는 면적을 빼고 사람이 순수하게 차지하는 공간만 계산해서 70억 분의 1로 쪼갠다면 콩이 얼마만 해질까요?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로 줄어들 겁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크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미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세례를 받고 싶어하는 철승을 앉혀 놓고 일꾼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부터 소개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간중간 철승이 이해하기 어려워하지 않는지 표정을 살폈다. 일꾼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철승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그동안 갖고 있던 수수께끼가 다 풀리는 기분입니다. 이 우주가 저절로 혼자 움직일 리가 없는데, 누군가가 만들어서 돌아가는 것일 텐데, 그것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겠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만물의 창조자를 발견한 철승은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했다. 하나님을 향한 철승의 마음 문이 철컥 열렸다. 일꾼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정리한 책을 꺼내서 철승의 앞에 놓고 하나하나 내용을 짚어갔다.
“자, 여기를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십일 동안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이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십니다.”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의 승천 이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삶을 도우시고 지키십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부적은 가짜, 하나님이 더 셉니다
일꾼의 설명을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철승은 빠른 속도로 흡수했다. 두 사람이 공부를 시작할 때 오전 9시를 가리키던 시계 바늘은 어느새 숫자 1을 향해 가고 있었다. 4시간 동안 철승은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형제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전능자이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질문에 답변을 하는 철승의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진리를 깨달은 자가 흘리는 자유와 희열과 감사의 눈물이었다.
“선생님, 저도 이 하나님을, 이 예수님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저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강력한 역사였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던 형제가 복음을 듣고 4시간 만에 스스로 믿음을 고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는 철승의 손을 일꾼이 잡아 일으켰다.
“철승 형제님을 지금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형제님이 그토록 열망하시던 세례를 받을 준비가 된 것 같군요. 이번에 들어가면 북한에서 언제 나올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니 세례와 함께 성찬을 같이 진행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의문 나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허리에 부적을 차고 있어도 괜찮습니까?”
“부적은 가짜입니다. 가짜를 백 개 천 개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만 보십니다. 저라면 가짜를 안 차고 다니겠습니다.”
철승은 허리춤에 손을 넣어 부적을 꺼냈다. 그런데 부적을 든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더 세십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형제님과 함께하시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일꾼이 힘을 북돋아 주었다. 철승이 결심한 듯 우상으로 섬기던 부적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한 집안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
“형제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한 생명과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세례를 받기 원하십니까?”
일꾼이 세례의 의미를 설명하자 철승은 눈물을 쏟았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전능하신 분과 하나가 된다 말입니까.”
가슴을 치는 철승에게 일꾼은 미리 사발에 떠 놓은 물을 머리에 뿌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머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눈물과 섞여 옷깃을 적셨다. 고요함이 내려앉은 방안에서 일꾼은 조용히 가게에서 사온 빵과 포도 주스로 조촐한 성찬을 준비했다.
“형제님, 성찬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고 믿음으로써 예수님과 하나 됨을 고백하고 확정하는 것입니다. 살과 살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까? 먹어야 내 살이 되고 마셔야 내 피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성찬이 끝나기 전에 통곡이 터져 나왔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주님의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느냐며 철승은 어깨를 들썩였다. 자신의 죄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주님의 사랑이 주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철승을 휘감았다.
그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연신 소매로 훔치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오늘의 세례와 성찬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안에 내가” 살아가는 연합의 삶이 지금 이후 북한에 들어가서도 이어질 것임을 상기하며 철승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일꾼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의 눈물로 세례와 성찬을 받은 철승은 북한으로 돌아갔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땅 북한에서 “세례를 받으라”는 어머니의 간곡하고도 끈질긴 요청을 사용하셔서 한 집안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도 신실하게 구원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