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세상이기에 신자들이 사제를 대하는 모습또한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 우리 어르신들의 세대에는 ‘독신은 곧 외로움’으로 받아들였고, 혼인을 당연스레 받아들였기 때문에 혼자 사는 신부를 보면 불쌍해 보이시는지 만나면 ‘아유, 평생 외로워서 어떻게 사세요?’라며 걱정하셨습니다. 그리곤 사제의 독신 그 자체를 엄청난 희생으로, 그래서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셨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능력있고, 가치있는 독신이 선호되는 시대인지라 젊은 부부들은 독신을 약속한 신부에게 “요즘 세상에 결혼 안 하고 혼자 사시길 정말 잘하셨어요.”라며 부러워합니다.
이처럼 사제를, 특별히 독신생활을 바라보는 눈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사제의 독신이 혼인과 가정에 대한 부정적 회피가 아니고, 그렇기에 고독과의 투쟁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을 위한 고독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 안동교구장이셨던 두봉 주교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그래. 내가 예수님처럼 사랑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다면 가장 큰 행복을 누릴 거야. 평생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면 행복의 길을 가르치는 이가 될 테고...’ 그래서 저는 예수님처럼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대신학교에 들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신부가 되었습니다. 신부가 된지 70년쯤 되었는데도 그 마음이 변하거나 달라진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더더욱 사랑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더더욱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또한 이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신부생활 이제 갓 10년을 넘겼지만, 정말 행복한 삶이라는 것, 그렇기에 다시 태어나도 신부가 되겠다는 마음은 살면 살수록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길게 ‘사제의 모습’에 대해서 말하게 되는 것은, 오늘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성소라는 말은 모든 신앙인들에게 해당되는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뜻합니다. 사제나 수도자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도 있지만,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 사는 삶도 성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로 사는 것만이 하느님을 따르는 유일한 길이고 정답이라면, 그렇게 모든 신앙인이 사제와 수도자가 되어야만 한다면, 그 사제와 수도자를 낳고 기르는 부모는 누가 될 것이며, 가정의 신앙공동체는 누가 만들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성소주일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특별히 사제와 수도자들의 부르심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님께 수확할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청해야 한다”는 마태오 복음의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갈수록 사제와 수도자를 지망하는 성소자가 줄고 있습니다. 유럽교회는 이미 사제단의 초고령화가 지속되어 은퇴조차 쉽지 않은 현실에 놓인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예외적으로 성소자가 많은 편에 속했던 한국교회도 이제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여러 개의 교구가 함께 모이는 각 신학교의 신입생 수가 올해는 모두 한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단순히 성소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지닌 참다운 사제와 참다운 수도자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삶을 충실하게 따르기 위해서 일생을 오로지 하느님 나라를 위해 바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 ‘착한 목자’처럼 자기 양들을 위해 어떠한 위협 앞에서도 목숨을 바칠 각오로 앞장서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사제는 바로 ‘착한 목자’입니다. 그러나 사제도 수도자도 나약한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안고 있기에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신자들의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오늘 성소주일은 그런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고백을 기억합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목자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 목자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제인 저도, 평신도로서의 여러분도 각자에게 맡겨진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성소주일’을 또한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부르곤 합니다. 이는 양떼들인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결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진정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닮아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그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부르심을 기억하며 ‘저마다 제 길에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수행하고, 또한 그런 예수님을 닮은 착한 목자로서의 사제들이 나올 수 있도록, 사제들이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시대마다 요구되는 사제상이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그 핵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꾼으로서 열정과 사랑의 마음으로 단순하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갈수록 세상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 또한 자신의 이익과 편리에 따라 신념을 버리고 마음을 바꾸는 일이 예사로 일어납니다. 여기에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사제는 이런 세태를 거슬러서, 한결같이 단순한 마음으로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단순하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제들, 혼란과 변덕스러움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확신있고 꿋꿋하게 가는 사제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저또한 언제나의 다짐처럼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닮은 사제로 살다가 사제로 죽을 수 있는 은총이 허락되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더불어 우리 모두가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따를 수 있기를 마음모아 기도합시다. 우리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사랑을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