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가 한층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나름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오늘은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과
선조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
경기 고양의 행주산성을 찾아본다.
산성 대첩문(출입문)을 들어서면
권율 장군의 동상과 마주한다.
늠름하기가 광화문 이순신 장군동상 같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전투이다.
이 역사적 사건은 한산도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발발 후
전세를 역전시킨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왜군의 9차례에 걸친 치열한
공격에도 일본군의 공격을 막았으며,
부녀자들도 긴 치마를 짧게 잘라
돌을 운반하고 투석전 끝에
마침내 왜장이 부상을 입고 퇴각한다.
이후 후방으로 후퇴를 거듭하면서
일본군은 한반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토성길을 걷는 내내 바위나 돌덩어리
심지어 돌멩이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아마도
돌멩이는 왜군을 향해 다 던져버렸나 보다.
그날의 승리를 기념해
덕양산 정상에 행주대첩비가 세워졌다.
기념비에도 돌을 나르는
여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행주치마 이야기
행주산성에 진을 친 권율 장군 부대는
3만 명이나 되는 왜군과 싸워야만 했다.
조선군은 2,300명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불리한 실정이었다.
조선군은 필사적으로 대항하였지만.
무기가 떨어지고 목책도 무너지고 있었다.
군사들의 밥을 하고
전쟁에 필요한 물을 끓이던 아녀자들은
싸움이 치열해지자 성안에 모아두었던
돌을 치마에 싸서 나르는 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든 아녀자들이 합심한 결사항전으로
왜군은 대패하고 물러났다.
행주대첩에서 아낙네들의
돌나르기 항전은 유명해졌다.
이후로 아녀자들이 부엌에서 입는
앞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불렀다.
대첩비각과 덕양정,
그 너머로 보이는 방화대교.
행주 대첩은 권율 장군의 철저한 준비와 전략,
조선군의 용맹함이 빛난 전투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조선군과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승리를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행주산성 입장료는 무료,
주차(일, 2,000원)시설은 양호하며
인근 산성 아래쪽에는 맛집이 많아요 ㅎㅎ
서울근교 여행을 희망하시는 분들은
한번 다녀와 보시길 권장합니다.
행복한 9월 되세요 !
카페 게시글
여행(나들이)
서울근교 나들이 - 행주산성 다녀오다
o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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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89
21.08.31 17:2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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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차타고 지나가면서 보기만 한 곳인데 이런 곳이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