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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 환희 사도 환희...
살아있는 순간 순간의 24시간이 환희 중의 대환희의 생명의 상태, 경애가 될 때 사후의 24시간도 계속 환희 중의 대환희의 생명상태가 되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자 도리일 것입니다.
지금 환희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생명을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올바르게 제대로 충분히 불러서 생명청소를 제대로하면 바로 그 즉시로 환희 중의 대환희의 즉신성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즉신성불이 모여서 일생성불이 되고 이 일생 이후의 미래 영원히 대환희하게 되는 것이 생명의 원리이고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는 우리들 각자의 삶이 끝없이 대환희의 불계의 생명으로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들 자신인 것입니다.
그 비법을 알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그 비법을 통해 우리들 각자의 생명 가장 깊숙한 곳 즉 구식심왕진여의 도에 원래 구족되어 있는 금강불괴의 환희 중의 대환희의 불계의 생명을 마음껏 열어서 대복운에 감싸여 행복해지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제대로 하지않으면 미래도 마찬가지로 계속 헤매고 있게 될 것입니다.
하여 우리들이 일련정종 총본산 대석사의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께 직결해서 사제불이의 불의불칙인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올바르게 제대로 부르면서 세계광선유포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일체를 판단하고 계획하고 도전해가게 되면 삼세 영원히 대복운에 감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일면 사후의 성불을 위해 수행하는 부분. 측면도 있겠지만, 사의 일념삼천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즉"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즉신성불, 번뇌 즉 보리, 난 즉 안온, 벌 즉 이익...처럼 즉시 일념을 정한 그 순간. 환희 중의 대환희로 열리는 위대한 대변혁이 색심과 의정에 걸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생명의 발로라고 확신합니다.
생명의 법칙대로 실천하면 그 즉시로 결과가 바로나오는 시기가 이 말법의 때이고 그런 결과를 스스로의 창제행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기근의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 말법의 법화경행자들이라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들 눈앞에 펼쳐지고 펼쳐낼 수 많은 대환희의 드라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설레여서 저로서는 자연히 감사함의 깊이를 더하게 됩니다.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는 남녀(男女)의 모습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느니라. 만약 그렇다면 귀천상하(貴賤上下)를 가리지 않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자신(自身)이 보탑(寶塔)이고 자신(自身)이 또한 다보여래(多寶如來)이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으며,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이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또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지금 환희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생명을
☆남묘호렌게쿄 제목☆
ㅡ올바르게 제대로 충분히 불러서
☆ 생명청소☆
ㅡ제대로하면,바로 그 즉시로
☆환희 중의 대환희☆
☆즉신성불☆이 되는 것
☆행주좌와☆
언제 어디서든 틈틈이 최선을 다해서
☆제목을 부르면☆
ㅡ반드시 원하는대로 일체가
ㅡ불가사의하게 이뤄지고
ㅡ가장 바르고 좋은 방향으로
ㅡ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信☆
南 無 妙 法 蓮 華 經
南 無 妙 法 蓮 華 經
南 無 妙 法 蓮 華 經결단코 명심하여 유녀(遊女)가 나의 집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듯이 방법자(謗法者)를 방지(防止)하시라, 악지식(惡知識)을 버리고 선우(善友)에게 친근(親近)하라 함은 이것이니라."
"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성불이라는 것도 불도수행을 해서 득도한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 생명 자체가 부처라고 각오하며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부처인 것입니다.
성불에서 [성]이란 생명을 연다는 뜻입니다. 즉 성불이란 내 생명 속에 있는 부처의 생명을 연다는 뜻입니다. 절에 있는 불상 속에 부처의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문 속에 부처의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묘호렌게쿄 라고 부르는 그 사람의 생명 속에서 부처의 생명이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월월(月月)·일일(日日)·강성(强盛)해지시라, 조금이라도 해이(解弛)한 마음이 있다면 마(魔)가 틈탈 것이니라.우리들이 신봉하고 있는 이 묘법은 직달정관 즉신성불 일생성불 석존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는 비법 중의 최고의 비법의 위대한 신심입니다.법화경의 행자를 수호하는 제천선신 중 대일천과 대월천과 대명성천 등의 삼광천자 중에 대월천왕이 광물 즉 빛나는 물체로 나타나서 그 위력으로 니치렌대성인님을 구했고, 니치렌대성인님을 죽이지 못하자 할 수 없이 사가미 지방 에치(依智)로 이송하게 되었는데, '명성천자(明星天子)는 사오일(四五日) 이전(已前)에 내려와서 니치렌(日蓮)을 찾아 만나시고,'라고 언급하신대로 대명성천왕은 9월 16~17일에 니치렌대성인님께서 감금되신 곳의 매화나무가지 끝에 발광체로 내려와 니치렌대성인님을 찾아 만나신 것입니다.■우리들이 신봉하고 있는 이 묘법■
◇직달정관◇
◇즉신성불◇
◇일생성불◇
ㅡ 석존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는
비법 중의 최고의 비법의
◇위대한 신심◇입니다.
ㅡ■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불법■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
◇직달정관(直達正觀)◇
■■ 모두가 일련정종 총본산 대석사의
대어본존님을 믿고
올바르게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부름으로써
곧바로 불계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ㅡ의(義)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부르면
오직 부처와 부처가 기뻐하시니
ㅡ아즉환희제불역연운운
(我卽歡喜諸佛亦然云云)
자비(慈悲)란 발고여락(拔苦與樂) 즉 괴로움을 뽑아내고 즐거움을 넣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타인을 향한 자비행에 국한하지 않고 자기자신에게 부터 자비를 베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주 "자비"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 "자비"에 대해서 이제껏 잘 알지 못했습니다. "慈-자비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 이것은 알겠는데, "悲-슬퍼하다, 비탄에 빠지다" 이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같이 슬퍼해 준다거나, 위로한다거나 하는 말을 듣지만, 알 것 같기도 하면서 모르겠습니다.
즉 가장 비탄에 빠져있는 자신,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자신, 가장 불안해하고 있는 자신을 커다란 마음으로 포용해주는 것.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자비를 베푸는 마음" 즉 "자비"이다라고.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부르면 일생성불(一生成佛)은 결코 의심할 바 없느니라."우리들은 자주 "자비"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 "자비"에 대해서 이제껏 잘 알지 못했습니다. "慈-자비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 이것은 알겠는데, "悲-슬퍼하다, 비탄에 빠지다" 이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같이 슬퍼해 준다거나, 위로한다거나 하는 말을 듣지만, 알 것 같기도 하면서 모르겠습니다.
즉 가장 비탄에 빠져있는 자신,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자신, 가장 불안해하고 있는 자신을 커다란 마음으로 포용해주는 것.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자비를 베푸는 마음" 즉 "자비"이다라고.
최악의 때에 자신을 그 자비의 마음으로 보듬어 가는 것. 거기에 마음의 승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생명으로 자신을 감싸 가는 사람은, 그러한 자비의 마음으로 감싸갈 때 슬픔은 이미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그대로 용기로 전환해 가는 것입니다.
또한 절망은 그대로 희망으로 바뀌어갑니다.
그런 삶의 방식 속에 참된 의미의 강한 인간의 삶이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자신을 감싸 가는 사람은 정말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자기자신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자신을 ,이런 자신은 한심하다고 비하하는 사람은, 만약 절망하는 사람을 봐도 "아, 불쌍하구나"라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마음 오저에서는 "나약한 사람이구나, 자신에게 패배한 칠칠치 못한 사람이다"라고 보게 됩니다. 자신을 보는 눈이 타인을 보는 눈입니다.
따라서 최악의 자신을 자비의 마음으로 "너무 좋다!"라고 커다랗게 감싸가면서 "위대하다"라고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존경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上)은 비상(非想)의 구름 위로부터 하(下)는 나락(那落)의 불길 바닥까지 모든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갖추고 있는 바의 불성(佛性)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하느니라. 그러므로 한 번 이 수제(首題)를 봉창(奉唱)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 모두 불리어서 여기에 모일 때 자신(自身)의 법성(法性)의 법보응(法報應)의 삼신(三身)이 함께 이끌려서 현출(顯出)하는 것을 성불(成佛)이라고 하느니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께서 말씀해주신대로의 일념으로 남묘호렌게쿄 제목을 올바르게 제대로 불러갈 때 자연히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은 의심(疑心)이 있을 수 없느니라 운운(云云)."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즉 육범(六凡)을 벗어나서 사성(四聖)에 주해야 성불되는 신심이 아니라 지옥계 부터 불계에 이르기까지 10계 일체의 중생들이 모두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으로 되는 위대한 비법의 신심인 것입니다.
양파, 파, 마늘 등 백합과 채소는 위암 발생 위험을 낮춘다. 각종 요리에 곁들이면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法華經)이며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묘락(妙樂)이 가로되 「현본원수(顯本遠壽)로써 그 명(命)으로 하다」라고 해석(解釋)하셨느니라.귀하는 니치렌(日蓮)의 공덕(功德)을 도운 사람이니 악인(惡人)에게 파괴(破壞)되지 않느니라. 만약(萬若)에 일이 있다면 전생(前生)에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적시(敵視)한 것이 금생(今生)에 보(報)로 되느니라.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1337쪽잠 잘 때 "위대한 부처님이 눈을 감으신다"라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세수할 때도, 또 음식을 만들 때도, "위대한 부처님이 만드신 음식이다"라고,
이것은 "위대한 음식이다"라고. 모든 일을 즐기면서, 음미하면서 자기자신의 생명을 찬탄해가면서 살아간다.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497쪽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올바른 혈맥이 흐르는 일련정종 총본산 대석사의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께 직결해서다만 세간(世間)의 유난(留難)이 닥치더라도 문제(問題)삼지 말지어다. 현인(賢人)·성인(聖人)도 이 일은 피(避)할 수가 없다, 다만 아내와 더불어 술을 마시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유락(遊樂)이란 우리들의 색심(色心) 의정(依正) 함께 일념삼천(一念三千)·자수용신(自受用身)의 부처가 아니겠느뇨,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해 받드는 이외(以外)에 유락(遊樂)은 없으며 현세안온(現世安穩)·후생선처(後生善處)란 이것이니라.세간(世間)의 유난(留難)이 닥치더라도 문제(問題)삼지 말지어다. 현인(賢人)·성인(聖人)도 이 일은 피(避)할 수가 없다, 다만 아내와 더불어 술을 마시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 고(苦)는 고(苦)라고 깨닫고 낙(樂)은 낙(樂)이라고 열어서 고락(苦樂) 함께 아울러 생각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계시라, 이 어찌 중생(衆生)이라 함도 부처라 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 미혹(迷惑)할 때는 중생(衆生)이라 이름하고 깨달을 때는 부처라 이름했느니라.
비유컨대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只今)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우리들 생명을 불법에서는 미시무종 무량무변이라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되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공가중의 삼제와 법신 반야 해탈 즉 법보응의 삼신으로 영원히 생사를 거듭하면서도 생사를 초월하여 존재하고 존재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일천(日天)이 동(東)에 뜨면 만성(萬星)의 빛은 흔적도 없다, 법화경(法華經)이 없는 곳에서야 미타(彌陀) 염불(念佛)은 훌륭하였지만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소리가 출래(出來)하고 나서는 사자(師子)와 개, 일륜(日輪)과 별빛을 비교하는 것과 같도다. 가장 비탄에 빠져있는 자신,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자신, 가장 불안해하고 있는 자신을 커다란 마음으로 포용해주는 것.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자비를 베푸는 마음" 즉 "자비"이다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창제시 자세도 집중이 가장 잘 될 수 있게 정좌나 가부좌, 의자나 쇼파에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아주 편한 자세로 앉아 일념을 집중 할 수 있는 자세면 어떤 자세든 상관없이 오직 순수하고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가짐과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아주 천천히 제목을 부르고 있습니다.어째서 법화경이 뛰어나고, 이전경이 열등한가.
교학적으로는 이승성불, 악인성불, 여인성불이 설해져있기 때문입니다.
즉 악인이나 여인들이, 이승(성문, 연각) 이러한 사람들은 대승경전이 설해졌던 시대,
세간에서도 상대하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대승경전은 그러한 사람들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법화경은 세간이 상대도 하지 않는 차별 받은 사람들을, 실은 위대하다라고 설하고 있습니다.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최악의 자신을 자비의 마음으로 "너무 좋다!"라고 커다랗게 감싸가면서 "위대하다"라고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존경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법화경(法華經)을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은 입만으로 말만으로는 읽지만 마음으로는 읽지 아니하고, 마음으로는 읽지만 몸으로 읽지 아니하니, 색심이법(色心二法) 다같이 행(行)하시는 것이야말로 존귀(尊貴)하도다.교오(經王)님에게는 화(禍)도 전환(轉換)되어 행(幸)으로 되리라, 기필코 신심을 일으켜 이 어본존(御本尊)께 기념(祈念)하시라. 무슨 일이든지 성취(成就)되지 않을손가. 「충만기원(充滿其願)·여청량지(如淸凉池)·현세안온(現世安穩)·후생선처(後生善處)」라고 함은 의심할 바가 없느니라."
교오전답서(經王殿答書) 1124쪽 사도에서 52세에 술작어떻게든 후생(後生)을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신심(信心)의 후박(厚薄)에 달려 있으며,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은 신(信)으로써 근원(根源)으로 하느니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1244쪽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자신의 생명의 이름을 묘호렌게쿄라고 이름 붙인다고 깊이 신심을 일으켜야 한다는 일절 입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이 묘호렌게쿄인 것입니다.
사실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사람이 자신이 남묘호렌게쿄 여래, 즉 말법의 부처인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전부 부처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항상 만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신심입니다.받기 어려운 인신(人身)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나 어찌 헛되게 보낼소냐. 기왕 신(信)을 취하려면 또 대소(大小)·권실(權實)이 있는 중(中)에 제불출세(諸佛出世)의 본의(本意)·중생성불(衆生成佛)의 직도(直道)의 일승(一乘)만을 믿을지어다. 백년 전,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듯이, 하느님이나 신이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성의 문제에 그 초점을 맞추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성에 근본을 둔 올바른 종교에 대해서 상대성원리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 박사는 "우주 종교"라고 했으며,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토인비 박사는 "우주의 배후에 있는 정신적인 실재를 믿는 고등종교이며 그것은 동양의 대승불법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대승불교란 자신을 위해서만 수행하는 소승불교와는 달리 민중구제를 위한 불교입니다.
석존의 불교의 진수는 약 천오백년 후, 상법시대의 중국의 천태대사로 이어지고, 천팔백년 후 전교대사로 이어졌으며, 2천2백 여년 후 니치렌대성인의 시대에 와서 불법의 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짜 행복은 외면을 장식하는 행복입니다. 진짜 행복은 자신의 속에서, 내면에서 솟아 오르는 행복인 것입니다. 그 구극은 불계를 용현하는 것입니다.
가짜 행복은 보다 많은 것을 갖고 싶다고 추구하는 행복입니다.
진짜 행복은 보다 풍부한 자신으로 변해 가자는 행복입니다. 즉 근본적인 생명내면에 잠자고 있는 환희 중의 대환희의 불계의 생명을 용출시켜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 것입니다.
"교오(經王)의 일을 이육시(二六時) 동안 일월천(日月天)에게 기원(祈願)드리고 있소, 전날의 그 수호본존(守護本尊)을 잠시(暫時)도 몸에서 떼어 놓지 말고 지니시라. 그 본존(本尊)은 정법(正法) 상법(像法) 이시(二時)에는 전습(傳習)한 사람조차도 없었고 더욱이 도현(圖顯)한 일은 전혀 없었느니라. 사자왕(師子王)은 전삼후일(前三後一)이라 하여 개미새끼를 잡으려 할 때나 또한 사나운 것을 잡으려 할 때나 힘을 내기는 매양 한 가지이니라. 니치렌(日蓮)이 수호(守護)의 어본존(御本尊)을 쓰는데 있어서도 사자왕(師子王)에 못지 않노라. 경(經)에 가로되 「사자분신지력(師子奮迅之力)」이란 이것이니라. 또 이 만다라(曼茶羅)를 정성껏 믿도록 하시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니, 어떠한 병(病)인들 장해(障害)를 할 손가,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지(受持)한 자를 수호(守護)하리라고 쓰였느니라. 행(幸)은 애염(愛染)과 같고 복(福)은 비사문(毘沙門)과 같이 되리라,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 십나찰녀(十羅刹女) 중(中)에서도 고제녀(皐諦女)의 수호(守護)가 깊을 것이니라. 오직 신심(信心)에 달렸느니라. 검(劍)이라도 부진(不進)한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법화경(法華經)의 검(劍)은 신심(信心)이 강성한 사람만이 소용(所用)되는 것이며, 범에 날개가 돋힌 격이니라.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法華經)이며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묘락(妙樂)이 가로되 「현본원수(顯本遠壽)로써 그 명(命)으로 하다」라고 해석(解釋)하셨느니라.
교오(經王)님에게는 화(禍)도 전환(轉換)되어 행(幸)으로 되리라, 기필코 신심을 일으켜 이 어본존(御本尊)께 기념(祈念)하시라. 무슨 일이든지 성취(成就)되지 않을손가. 「충만기원(充滿其願)·여청량지(如淸凉池)·현세안온(現世安穩)·후생선처(後生善處)」라고 함은 의심할 바가 없느니라."
교오전답서(經王殿答書) 1124쪽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행(幸)은 애염(愛染)과 같고 복(福)은 비사문(毘沙門)과 같이 되리라,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
"기필코 신심을 일으켜 이 어본존(御本尊)께 기념(祈念)하시라. 무슨 일이든지 성취(成就)되지 않을손가. 「충만기원(充滿其願)·여청량지(如淸凉池)·현세안온(現世安穩)·후생선처(後生善處)」라고 함은 의심할 바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처럼 되는 것입니다.비록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큰 확신으로 희망을 불태우는 것이 불법이며 법화경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와 뜻이 자신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