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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무룡고개 → 영취산 → 선바위고개 → 백운산(정상) → (중봉) → 중고개재 → 산죽계곡 → 지지리'의 8km 구간을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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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靈鷲山]
높이: 1,075.6m
위치: 전북 장수군 장수읍
영취산은 백두대간 종주 코스 지도에는 표시되지만, 웬만한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다. 영취산(1,075.6m)은 백두 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으로 함양의 진산인 백운산에서 백두대간인 육십령으로 북상하는 도중에 거치는 산이다. 영취산 정상에는 정상 표지목이 있고 사위 조망은 북으로 남덕유산이, 서쪽으로 장안산이, 남으로 백운산이 조망된다.
영취산은 신령령(靈), 독수리취(鷲)를 쓰고 있다. 영취산은 고대 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사성(王舍城)의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서 석가가 이곳에서 법화경과 무량수경(無量壽經)을 설법했다고 한다. 영취산을 준말로 영산, 또는 취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그 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으로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로서의 걸맞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장수군청의 관광 안내에나 그 외 일부에서는 장안산을 일명 영취산이라 표시하고 있는데 장안산과 영취산은 동일산이 아니고 다른 산이다.
백운산[白雲山]
높이: 1,279m
위치: 경남 함양군 백전면
백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많다. 그중에서 "흰 구름산"이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산이 바로 함양의 백운이다. 높이도 1,000m가 훨씬 넘는 준봉인 데다 산정에서의 조망도 으뜸이다.
남도의 내노라하는 명산들이 동서남북 어떤 방향에서든 거칠 것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남쪽에 하늘 금을 그은 지리산의 파노라마는 그리움의 경지를 넘어 차라리 연민이다. 반야봉의 자태는 너무 뚜렷해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북쪽 끄트머리에는 넉넉한 덕유산이 태평스레 앉아 있고 그 너머에 황석, 기망, 월봉산이 줄기를 뻗대고 있다. 금원 기백도 가까이 보이고 동북 방향 멀리로는 수도, 가야, 황매산도 가물거린다. 양쪽 날개인 양 백운산과 맥을 같이한 동쪽의 갓걸이산(괘관산)과 가을 억새가 멋진 장수군의 장안산이 서쪽에서 마주 보고 있다. 이렇듯 백운산은 명산에 둘러싸여 명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 지방 최고의 진산으로 산세 또한 전형적인 육산이다. - 한국의 산하
마천에서 살던 시절 자주 듣던 얘기가 빨치산이었고, 백운산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하는 얘기니 당연히 그 백운산이 가흥리 뒷산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마천을 떠나 서울로 이사와 학교에서, 빨치산에 관해 알아가니 그들의 활동 무대의 백운산은 전남 광양이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리산 종주 시 섬진강 건너로 보이는 백운산을 보며 언젠가는 가야지 다짐했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봤지만, 대중교통으로 서울에서 당일 산행은 불가능했다. 해서 지리산과 연계하는 1박 2일 산행 계획을 세우기도 하며, 기회를 엿보다 우연히 발견한 산악회의 공지를 보고 2018년 12월 1일 광양 백운산을 다녀왔었다[산행기].
그리고 2019년 초파일 즈음에 지리산 삼정산 칠암자 순례에 참여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다 삼정산 건너에 내가 어려서 들었던 백운산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정확히 들은 거다. 어쨌든 2019년 5월 11일 좀 이른 초파일 칠암자 순례에 한 산악회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코스와 주어진 시간을 계산해 보니 뱀사골에서 출발해 백무동 계곡과 합류해 덕천강을 이루는 강을 건너, 백운산과 금대산을 주파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실천에 옮겼다[산행기]. 백아산에서 시작한 빨치산의 산을 탐방하다가 이걸 순례길로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련된 산을 찾아보았다. 당연히 경남의 오지 함양의 주요 산이 등장했고, 그중에 또 백운산이 있는 걸 발견했다.
황석산, 거망산, 기백산, 금원산 그리고 괘관산, 백운산! 함양의 빨치산 활동지 중 황석산은 까만 소 100대 인증에 포함되어 있어 산악회를 이용하면 되고, 전북의 오지 장수 장안산도 까만 소 인증 산이라 그와 연계한 영취산도 산악회의 단골 메뉴였다.해서 2019년 6월 1일 장안산과 연계해 영취산을 다녀왔다[산행기]. 그리고 황석산, 기망산, 금원산 기백산은 호리병 모양의 산세를 이루고 있고 그 안에 유명한 용추사와 용추계곡, 용추폭포가 있어, 많은 산꾼이 한 번에 종주하는 산행지이기도 하다. 환종주를 시도해볼까 해서 교통편을 알아봤지만, 서울에서 당일 산행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두 번에 나눠 진행하는 산악회의 계획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2019년 7월 6일 먼저 기백산, 금원산, 현성산을 다녀왔다[산행기]. 문제는 까만 소 인증에 끼지 못한 백운산과 괘관산이다. 그나마 백운산은 백두대간의 산 중 하나라 산악회가 가끔이나마 방문하지만, 괘관산은 산악회를 믿었다간 이번 생에 못 갈 수도 있을 거 같아 봉 감독과 세운 계획이 있다.
그러던 중 지난주 가리산을 동행한 산악회에서 공지에 올린 산행 계획 중 하나가 (내가 알기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백운산인)함양 백운산행 계획이 있었다. 백두대간 상에 있는 산이라 산악회 대간팀을 따라갈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대간팀은 무박이 일상이라 주저하고 있었다. 해서 망설임 없이 산악회에 회비를 내고 버스 좌석을 신청했다. 내가 신청할 즈음 이미 십여 명의 등산객이 신청한 상태였다. 아직 성원에는 부족했지만, 산행까지 10일 정도 남아 성원 미달로 취소될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12월 2일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가 왼쪽 무릎에 심한 고통을 느낀 게 문제다. 전주 토요일 가리산[산행기]에서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하루 전인 일요일도 증상이 없었다. 아침에 샤워하다가 이상을 느껴 파스를 붙이기는 했지만, 통증이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
오후가 되자 통증은 사라졌고, 다음 날은 별 이상을 느낄 수 없어 생활에는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그날이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라 검진 후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의 진단은 무릎 연골이 닳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양호한 상태고 주사 한 대 맞고 이틀 치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거였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고, 혹시 산에서 이상이 있을 수도 있어 긴급히 산 무릎보호대와 심설에 쓰기 위해 준비한 지팡이를 이번 산행에 가져가기로 했다. 기어서라도 내려오면 되지만, 다른 등산객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기에. 마침 같은 산악회에서 다음 토 산행으로 작년부터 노리고 있던 계관산, 삼악산 연계 산행 계획이 있지만, 이번 백운산행 결과를 보고 신청하기로 했다. 지난 가리산 등산 이후 배낭에서 꺼내 보지도 않은 비상용 디팩은 그대로 가져간다. 이번에도 점심은 과일과 비상식으로, 당연히 무알코올 산행을 한다. 하산지에 식당이 있다면 우리의 신조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른 산행지와 같이 도토리묵 무침에 곡차로 그 지역의 도토리 맛은 다른 지역과 어떻게 다른지 평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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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에 기상해 먼저 무릎 상태를 확인하니 이상 증상은 없었다. 이후 누룽지를 끓이려고 보니 없다. 몇 년간 지켜온 전통을 깨고 누룽지가 아닌 밥을 먹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6시 55분에 등산꾼의 성지 신사역에 도착해 지난주 경험을 토대로 역사 안에서 기다리다가 7시 1분경 밖으로 나갔다. 출구에 대기 중인 버스가 있어 확인해 보니 다른 산악회의 차였다. 내가 타고 갈 버스는 아직 도착 전이었다. 1분 정도 후에 버스가 도착해 익숙한 인솔자(공지에는 다른 인솔자였는데?)가 버스에서 내려 가끔 본 등산객과 인사를 나눴다. 나도 인사하고 늘 그렇듯이 패드와 카메라는 들고 배낭은 짐칸에 넣었다. 익숙한 인솔자는 공지대로 처음 보는 인솔자에게 인계하고 다른 버스를 타고 떠났다. 이번 영취산, 백운산 연계 산행의 인솔자가 인솔계의 초보라 같이 온 거 같았다.
예정대로 7시 10분에 출발한 버스는 죽전과 신갈에서 나머지 등산객을 마저 태우고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무룡고개를 향해 출발했다. 애초 이번 산행을 신청할 때만 해도 성원만 넘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최종 35명이 신청했다. 문제는 신청자 중 한 명이 내 옆자리를 선택했다는 거! 여성 혼자 있는 옆자리를 달라고 하기 힘드니 내 옆자리를 신청한 거 같은데, 비좁은 자리에 둘 다 아주 불편한 상·하행길이였다. 이후 내가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예의고 뭐고 여성 옆자리로 신청하겠다고 맹세할 정도였다. 8시 40분이 좀 넘어 버스는 죽암 휴게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데 익숙한 버스가 보였다. 2주 후에 갈 지리산행 버스!
늘 그렇듯이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자가 이번 산행 코스 지도를 나눠준 후,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행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도에 있는 시간 계획을 보고 놀랐다. 10시 30분 무룡고개에 도착해 16시 백운산행 날머리인 지지리 마감이니, 대략 9km 조금 넘는 거리에 5시간 30분의 시간이라는 얘기다. 지난 6월 1일 장안산행 시 영취산에 올라봐 코스의 상태[산행기]를 어느 정도 아는데 5시간 30분씩이나 달릴 코스가 아니라, 대략 4시간이면 충분한 코스다. 다른 코스인 장안산은 회귀 산행으로 2시간 30분이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는 코스다. 그런데 인솔자는 시간을 조정할 생각은 없었다. 빠른 사람은 장안산에 갔다 와서 백운산도 타라고 권할 뿐이었다. 나야 남는 시간은 날머리에서 곡차와 도토리묵 무침을 맛볼 생각이었는데, 날머리에는 뭘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전혀 없다고! 고로 산에서 5시간 이상을 보내야 한다!
이번 산행은 까만 소 100 명산에 장안산이 들어 있고, 백두대간 인증에 영취산과 백운산이 끼어 있다. 고로 100 명산이든 백두대간이든 인증꾼에게는 중요한 산행이다. 그런데 해마다 늦가을, 초겨울 한 달 정도는 산불 통제 기간으로 국립공원을 비롯한 대부분 산이 입산 금지다. 그런데도 인증에 목숨 거는 몇몇 꾼이 불법적으로 산을 방문해 인증을 올리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인증을 시작했다면, 나도 다르지 않을 거다. 당연히 그게 문제가 되고 비난이 쏟아질 것에 대비한 건지, 아니면 욕을 먹을 만큼 먹은 후 도입한 건지 모르겠지만, 입산 통제 기간에는 인증지에서 찍은 사진과 '입산 허가신청서' 사진을 같이 올려야 인증이 되는 시스템인 거 같았다. 왜 카페 산행 게시판에 '입산 허가신청서' 사진을 올려두고 필요하면 내려받아서 사용하라고 했는지 인솔자의 말을 듣고 이해됐다. 까만 소가 마음에 안 들지만, 이런 걸 비롯해 몇 가지는 잘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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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버스가 올라가는 소리에 비좁은 자리에서 불편하게 자던 잠을 깨 창밖을 보니 버스가 해발 900m 무룡고개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인솔자가 '등산객이 아니라, 버스가 등산한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예정보다 빠른 10시 20분에 들머리인 무룡고개에 도착했다. 지난 장안산행에서 확인했듯이 무룡고개에는 쉼터가 있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거나 막걸리를 마실 수 있었다. 아마 장안산이 목적인 등산객은 남은 시간 대부분을 여기서 보낼 확률이 높다. 그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각자 볼일을 보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한 팀은 장안산을 향해, 다른 팀은 백운산을 향해 무룡고개에서 헤어졌다. 10시 23분 백두대간 육십령, 복성이재 입간판 지도를 지나 영취산을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무룡고개가 해발 900m, 영취산이 해발 1,076m니 176m만 올라가면 되는데, 코스가 급경사라 처음 시작부터 대간꾼을 지치게 만들고 땀을 쫙 빼게 한다.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고, 무릎 상태를 몰라 서두르지 않고 가능하면 여유롭게 올라가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쨌든 최대한 양다리에 신경 써, 한 발 한 발 딛는 데 신경을 집중해서 올라갔다. 물론 이번 산행 내내 그랬지만.
미리 삼각대를 꺼내 조립하며 정상을 향해 올라 10시 37분에 영취산 정상에 도착했다. 10시 23분에 출발했으니, 정상까지 14분이 걸렸다. 그리고 올해 6월 1일 이후 두 번째 올랐다. 근교 산이 아님에도 1년에 두 번씩 올랐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경우인데, 영취산이 그랬다. 조립한 삼각대를 설치해 인증을 찍은 후 주변 산세를 구경했다. 가끔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청명하고 맑은 하늘에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라 조망은 좋았다. 다만, 앙상하지만, 울창한 나뭇가지가 사진 찍는 걸 방해해 내가 본 모든 걸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웠다.
10시 38분 영취산 정상을 떠나 백운산을 향해 출발했다. 영취산에서 백운산까지 3.4km, 백운산이 해발 1,278m니 200m가량을 3.4km 동안 오르면 된다. 고로 아주 완만한 능선 길이고, 상태는 수많은 대간꾼이 다녀서 만들어진 건지, 지자체에서 만든 건지는 확실하지만, 아주 좋았다. 둘 다겠지?! 백운산을 향해 가며 물 한 통만 들고 뛰어 내려오는 등산객? 러너? 를 만났을 정도다. 주변에 보이는 건 우 장안산, 좌 거망산, 황석산, 뒤 남덕유산, 앞 지리산이다. 사진으로 남기기에는 방해물이 너무 많아, 더 가면 이 모든 걸 찍을 수 있는 좋은 전망대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앞으로 갔다.
전망대가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가다가 백운산 정상 바로 200여 미터 직전 바위 전망대를 발견했다. 밤새 내린 서리가 얼어붙어 미끄러운 바위 정상에 올라 주변을 보니 우의 장안산은 나뭇가지에, 앞의 지리산은 백운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뒤의 덕유산과 좌의 거망산, 황석산은 잘 보였다. 밑으로는 마을이 보이고. 주변의 산세를 조망하며 눈 앞의 산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며 주변의 산세를 조망하고,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전망대를 떠나 백운산 정상을 향해 갔다. 정상을 향하는 길은 갈지자를 그리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과 바로 올라가는 과거의 것이 있었다. 과거의 길은 최근에 인간이 다닌 흔적은 없고 과거에 길이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무릎이 불안하긴 했지만, 당연히 과거의 길을 따라 바로 정상을 향해 치고 올라갔다. 그 길을 올라가는 순간 내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일기 예보에 의하면 밤사이 약간의 눈이 내린다고 했었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눈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길로 들어서자 낙엽에 쌓인 눈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싸리지만! 다른 지역은 눈이 아니라 비가 내렸거나, 눈은 따뜻한 햇볕에 녹은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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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 눈에 미끄러지며 11시 54분 백두대간 백운산 정상에 도착했다. 무룡고개에서 1시간 30분가량 걸렸다. 정상에는 '白雲山'이라고 음각 후 붉게 쓴 작은 정상석과 백두대간의 이정표가 당당히 서 있었다. 정상 아래에는 헬기장이 있고, 백두대간이 인기를 얻은 후 만든 거로 보이는 거대한 정상석이 있었다. 거기에는 나보다 앞서 달렸던 몇몇 대간꾼이 인증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막걸리를 꺼내 한잔하자고 권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인증을 찍고, 찍어주기도 한 후 다시 정상에 올라 주변 산세를 구경했다.
12시 6분 백운산 정상을 떠나 백두대간 중재를 향해 출발했다. 중봉 갈림길에 도착하니 앞으로 조망이 좋다는 중봉이 보였지만, 중봉에서 중재로 가는 길이 없어 중봉은 포기했다. 처음 주어진 시간 대비 코스가 짧아 예정에 없던 중봉을 거쳐 중재로 갈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굳이 정상에서도 다 보이는 조망을 위해 중봉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중봉 갈림길에서 중재로 향하자 전면에 장안산이, 우로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영취산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운산에서 중고개재까지 2.4km, 중고개재에서 중재까지 1.6km 고로 백운산 정상에서 중재까지 4km다. 이 상태의 길이라면 아무리 놀며 가도 1시간 30분이면 간다. 그럼 날머리에 2시 전에 도착한다. 버스는 4시에 출발하고! 아침으로 누룽지가 아니라 밥을 먹어서 그런지 슬슬 배도 고파왔다. 점심으로 가져간 과일이나 비상식은 걸으며 먹을 수 있는 거라 굳이 바람 찬, 능선에 주저앉아 먹을 이유가 없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 보내기는 라면이 답인데, 점심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중고개재를 향해 가다 놀라운 장면을 발견했다. 길목에 있는 중재, 백운산 이정표 아래에 자리 잡고 앉아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고 있는 산꾼이 있었다. 최소한 나는 숨는 척이라도 하는데! 하긴 위치상으로는 최적이었다. 좁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 앉아 있을 정도는 됐고,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도 있었다. 그 장면을 보자 라면을 끓일까 말까 했던 고민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 산꾼과 같은 철면피와 적당한 이정표가 필요했다. 그런데 해발 1,076m의 백운산 정상에서 해발 650m인 중재까지는 내리막길로 가끔 급경사고, 낙엽에 덮여 보이지 않는 계단도 있어 위험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이 보이던 이정표도 없었다. 그럼 내 장기인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며 중재를 향해 가 1시 정각에 중고개재에 도착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막혔지만, 애초 중고개재는 갈림길로 바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탈출로로 많이 이용하는지 길 상태는 좋았고, 그 길을 따라 산악회 리본이 많이 걸려있었다. 볼 것도 없이 폐쇄된 길로 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상용 디팩과 점심이 든 디팩을 꺼냈다. 비상용 디팩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라면 물이 끓는 동안 꼬마 소시지를 꺼내 먹었다.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고, 여기 사람이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인멸한 후, 귤과 미니 핫바를 꺼내 주머니에 넣은 후 배낭을 다시 꾸려 그 자리를 떠난 시각이 1시 34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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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입가심으로 귤과 미니 핫바를 먹으며 중재를 향해 갔다. 아, 라면 끓여 먹고 난 후 처음으로 뜨겁게 담아온 우렁차를 마셨다. 지난번 가리산행에서는 물은 꺼내 보지도 않았지만, 짠 라면을 먹은 후라 뜨거운 물 한잔했다. 중재를 향해 가는데 붉은 노끈으로 경계를 표시한 지역이 보였다. 그리고 유심히 보니 원두막 같은 것도 보였다. 처음에는 산림청에서 조사를 하기 위해 설치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무 사이에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보고 실상을 알 수 있었다. 그 지역은 사유지로 산양삼을 재배하는 곳이었다. 등산객이든 전문꾼이든 무단으로 들어와 채취해 가는 게 문제였다. 해서 CCTV와 금줄을 설치하고 호소문까지 작성해 달아 둔 거였다. 왜, 남의 것에 손을 대는지?!
재배지는 꽤 길게 이어졌고, 중재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재배지는 백두대간 길의 반대편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재배지와 백두대간 길목 사이에는 관리되지 않는 거로 보이는 무덤이 많았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묘였지만, 후손이 부족해서 그렇겠거니 이해하고 중재를 향해 갔다.
2시 7분에 백두대간 중재에 도착했다. 중치? 중령? 중재? 치·령·재 같은 의미지만, 다르게 불리는 고개라는 명칭! 뭐 예외는 많지만, 각기 붙이는 규칙이 있다고 하는데, 있겠지?!!! 중재에 우뚝 서 있는 이정표의 '복성이재'를 보는 순간 어디서 봤는데? 중치? 중재? 12km! 그냥 달릴까? 이 글을 쓰며 확인해 보니 백두대간 지리산 서북능선 위에서 남원 쪽으로 방향을 트는 길목에 있는 고개다. 그래서 익숙한 듯!
중재에서 이번 백두대간 영취산, 백운산 코스의 들머리인 지지리까지 1.5km를 더 가야 한다. 지지리를 향해 출발한 시각이 2시 7분이다. 라면을 끓여 먹느라 시간을 보낸다고 노력했음에도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중재에서 지지리까지는 해발 기준 50m를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계곡을 건너니 당연히 대간 길은 아니다. 과거 대간이니 정맥이니 산맥이니 하는 개념 없이 삶을 위해 오고 갔던 길이다.
지구 위의 어느 곳이든 대부분 길은 비가 냈고, 비가 낸 길을 짐승이 다졌고, 먹고 사느라 인간도 길을 다지는 데 일조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지지리로 가니, 아이젠이 필요한 계절이라는 걸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이 왔다. 길은 조리대 숲 안에 있는 작은 빗길이었다. 빗길이었지만, 과거에는 짐승과 생존을 위해 인간이 다녔고, 지금은 대간꾼이 다녀 아주 잘 다듬어진 등산로! 문제는 물의 흐름이 바뀌지 않아 꽁꽁 얼어 있었다. 그 얼음에 넘어져 가뜩이나 조심하던 왼 무릎에 실제적인 타격을 줄 뻔했다.
2시 21분 조리대 숲을 헤치고 이번 백두대간 산행의 날머리인 지지리에 도착했다. 10시 23분 무룡고개에서 시작해 14시 21분에 마감했으니, 4시간이 조금 안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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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 날머리는 평소에는 농가지만, 여름에는 지지계곡 피서객을 위한 식당으로 변하는 한 집의 뜰이었다. 거기에는 이미 나에 앞서 도착한 한 팀이 축구를 하며 놀고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시간은 남아돌아 뭘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한 등산객이 내게 와 앞으로 흐르는 개울이 좋으니 그리 가 보라고 했다. 그 개울- 지지계곡-로 가자, 지난밤 생각보다 상당히 추웠는지, 흐름이 약한 곳은 꽁꽁 얼어 있었다.
개울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물로 들어갔다. 조금 지나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가움이 온몸을 덮쳐 바로 나왔지만, 아주 시원하고 좋았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발도 얼리며 놀고 있는데, 바로 위 도로로 관광버스가 지나는 게 보였다. 차로 봐서는 우리가 타고 온 게 맞는데, 인솔자가 산행 계획에 관해 얘기할 때 무룡고개에서 3시 20분에 떠나겠다고 했으니, 시간상 우리 차가 아니다.
어쨌든 딱히 할 일도 없고 발도 시려, 다시 복장을 갖추고 5m가량 떨어진 도로로 갔다. 도로에는 간이 주차장이 있고, 조금 전에 본 관광버스가 주차해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맞았다. 장안산 쪽이 생각보다 산행이 일찍 끝나, 다음 정차지인 지지리로 계획보다 빨리 내려온 거였다. 내가 지지리 간이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2시 42분으로 아직 백운산행 팀이 다 도착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미 도착해 끼리끼리 놀고 있던, 등산객이 주고받던 얘기를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마지막 팀이 중고개재에 있고 들머리에 도착하려면 최소 30분 정도 더 걸린다는 거였다.
버스 짐칸에 배낭을 넣고 남은 시간 뭐 할만한 일이 있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당연히 곡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도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이런 상황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일찍 도착한 모두의 문제였다. 나야 고독을 즐기지만, 단체로 온 등산객은, 그 짐의 반이 라면과 막걸리 그리고 안주였다. 남은 게 시간이다 보니 그들은 주차장에서 잔치 판을 벌였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불러 한잔하라고 권했다. 그 모습이 익숙했던 이유는 백운산 정상에서 막걸리 한잔하라고 권했던 그 팀이다. 주변에 있던 많은 등산객이 각자 가져 온 걸 꺼내 분위기를 돋웠다.
물론 내가 우리 등산방원들과 갔으면, 삼겹을 구우며 비슷한 모습을 보였겠지만, 모르는 사람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고독을 즐길 곡차가 없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잠이나 자자는 생각에 버스에 탔다. 코스도 짧고, 알코올도 섭취하지 않고, 산도 험하지 않았지만, 무릎에 신경을 집중해서 그런지 다른 산행 때보다 많이 피곤했다. 바람이 차고, 얼음 계곡에 발을 담가서 더 피로했을 수도! 어쨌든 버스에 타 책을 보고 있으니, 옆자리 등산객이 탔고, 생각보다 빠른 3시 20분에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하는 버스의 시간이 3시 20분이라는 걸 확인한 후 불편한 잠자리이지만, 푹 자고 깨어보니 천안 삼거리 휴게소였다. 그 시각이 5시 11분이었다. 상상을 못한 시간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한 후 편의점에 들러 식혜를 하나 사서 마시고 다시 버스로 돌아갔다.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자가 산악회에서 만든 달력을 나눠줬다. 나야, 지난주에도 받았지만, 多多益善이니 또 받았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마이크 소리에 놀라 깨니 신갈에 곧 도착하니 내릴 등산객은 준비하라는 거였다. 그리고 죽전!
애초 신사역, 명동역, 시청역에서 끝나는 여정인데, 인솔자 말에 의하면 이 추운 날에도 도심에 시위가 있어 명동과 시청은 못 가고 대신 양재에서 내려 준다고 했다. 6시 30분 양재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해 7시 30분이 되기 전 도착했다. 원거리 산행이란 걸 한 이후 가장 이른 시간 집에 도착했다. 와이프 왈 "앞으로는 산악회와만 다녀!"
처음 계획대로 '무룡고개 → 영취산 → 백운산 → 중고개재 → 중재 → 지지리'의 9.7km(트랭글 기준), 4시간 5분의 백두대간 무룡고개, 중재 코스를 달렸다. 이동 3시간 36분, 휴식 29분! 휴식 29분 동안,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 끓는 속도를 보니, 본격적인 겨울 산행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산행이다.
해발은 높지만, 들머리도 높아 많이 오르지 않고, 9km 내외로 코스가 짧고, 주변의 조망이 탁월해 산악회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산으로 좋다.
산꾼은 장안산, 영취산, 백운산 3개 산을 5시간 3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코스다.
산행의 날머리 중재에서 봉화산, 복성이재, 여원재를 거쳐 지리산 서북능선 위의 고리봉에 도착하면 백두대간이 연결된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런 식의 산행이면, 결과적으로 백두대간 종주가 될 듯하다.
첫댓글 산악회가 생각보다 요긴하네 ^^
잘 활용하면 가성비 최고의 솔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