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임해로 64-19 (구황동 786-1)
054-777-6862
관람시간
[4월~10월] 09:00-18:00 (평일) / 09:00-19:00 (토요일, 공휴일)
[11월~3월] 09:00-18:00
월요일 휴관
1월1일 설당일 추석당일 휴관
입장료 : 성인 3,000원 / 청소년,군인 2,000원 / 어린이 1,500원
무료 주차 (주차장이 아주 넓다)
경북투어패스를 이용해서 입장료를 지불하지는 않았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이만큼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황룡사지를 둘러보며 걸어가니 지루하지 않다.
또 걸어가는 길 옆에 석조유물들도 볼 수 있다.
황룡사의 출발은 신라 진흥왕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흥왕 14년(533)에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 자리에서 누런 용이 나타났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진흥왕은 궁을 절로 고쳐 짓기 시작해 17년 만에 절을 완공하였다.
이후 진평왕 6년(584)에는 인도에서 건너온 철과 금으로 만든 5m 높이의 거대한 삼존불상을 모시기 위해 금당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선덕여왕 12년(643)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대사의 권유로
호국의지를 담아 9층 목탑을 짓기 시작했는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2년 만에 완성되었다.
황룡사는 장장 백여 년에 걸쳐 건립된 국찰이었으며, 동양최대의 사찰로 이름을 떨쳤다.
아쉽게도 황룡사는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
지금은 광활한 대지에 건물터와 주춧돌 일부만을 확인할 수 있다.
1976년부터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금동불입상, 금동귀걸이, 와당, 기와 등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높이 1.8m에 이르는 대형치미(용마루 끝머리 장식)는 건물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신라왕경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황룡사지 바로 옆에 건립된 전시관이다.
황룡사지의 연구 및 발굴조사 성과를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공간이 마련되었다.
1층에 황룡사 9층목탑을 1/10크기로 재현한 모형탑이 전시되어 있다.
1/10 축소모형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마주하고 나니 그 위용에 압도당하게 된다.
1:1 실제크기의 기둥 하나씩을 양 옆에 만들어 놓아 전체 황룡사 9층목탑의 실제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계획안 1안은 적층구조방식으로 계획되었고 주심포식 공포를 사용하여 처마를 구성하였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계획안 2안은 적층구조방식으로 계획되었으며 백제계 하앙식 공포를 사용하여 처마를 구성하였다.
공포(拱包)란 전통 목조건축에서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한 짜임새를 의미한다.
1안의 주심포식(柱心包式) 공포는 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하는 양식이다.
2안의 백제계 하앙식(下昻式) 공포는 지붕의 하중을 받는 공포 위에 하앙을 덧댄 후 도리를 더 얹을 수 있게 함으로써
서까래를 건물의 바깥쪽으로 길게 뽑을 수 있게 만든 백제계 건축양식이다.
신라 건축에서 왠 백제? 사실 황룡사 9층목탑은 선덕여왕이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불러다 2년만에 완성하였다.
2006년부터 시작된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은
월성, 동궁과 월지, 황룡사, 쪽샘지구, 대형고분, 첨성대 등 15개 핵심유적 복원, 정비 사업이다.
총사업비 1조150억 원(국비 7천105억 원, 시·도비 3천45억 원) 가운데 올해까지 4천417억 원(국비 3천91억 원)이 확보됐다.
역사상 한 도시가 천년동안 수도였던 도시는 이탈리아 로마, 터키 이스탄불, 일본 교토, 중국 시안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주
이렇게 딱 5개 도시 뿐이다.
내가 우려하는 부분은 이런거다. 일사천리로 예산확보하고 서둘러 복원작업이 이루어질 경우... 자칫 재건축이 될 가능성이다.
철저한 고증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복원이 느리더라도 올바른 길이라는 거다.
기껏 복원작업을 마쳤는데 오류가 밝혀지거나 반증의 사료나 유물이 나왔을 경우 어쩔려고...
숨기거나 왜곡하게 되면 그건 진짜 역사의 죄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황룡사 9층목탑의 재현이 반가우면서도 걱정스러운 것이
바로 철저한 사료를 통한 고증과 뒷받침하는 유물에 근거한 복원이 아니라 1안과 2안을 두고 선택한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마치 건축 설계를 의뢰해서 아파트를 건설하는 거와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
황룡사지 사찰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철저한 고증없이 섣부른 복원을 통한 관광상품화를 유네스코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어쩌면 막대한 국가예산이 들어갔으니 뭔가 성과물을 보여주려고 황룡사 역사문화관같은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닌지...
많은 이들의 노력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순수성이 윗사람의 독단과 독선으로 왜곡되지 않았으면 한다.
2층에 바깥으로 나가서 황룡사지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황룡사지가 신라왕경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직접 볼 수 있다.
황룡사 합성 포토 체험존이 있어서 한 번 해 보았는데....
청바지를 입었더니 하체는 사라지고 상체만 둥둥 떠다닌다.
포토 체험존 촬영 유의사항
배경과 비슷한 색상(파랑, 남색 등)의 옷은 촬영시 화면이 흐려지게 나올 수 있다.
솔거(率居) 금당벽화를 그리다
솔거는 신라인으로 가난하고 변변하지 못한 집에서 출생하여 그 출신을 알 수 없으나 그림을 잘 그리기를 타고났다.
솔거는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는데 나무의 줄기와 몸통은 주름지고, 가지와 잎은 서려서 일그러졌다.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가 간간이 바라보고 날아들다가 부딪혀 어름어름하며 떨어졌다.
세월이 오래되어 색이 암담해지자 절의 중이 단청(丹靑)으로 덮어 개칠을 하였더니 오작(烏雀:까마귀와 참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다. 경주 분황사의 관음보살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이 모두 그의 필적이니 세상에 신화로 전하여 온다.
1층의 3D영상 시청각실로 가서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영상을 관람했다.
일부 화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지만 3D영상이라 다소 겹쳐 보이긴 하나 황룡사 9층목탑의 소실 장면을 실감나게 그렸다.
고증여부를 떠나 비록 10분의 1이었지만 황룡사 9층목탑을 실물로 영접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복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후손에게 쪽팔리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