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달라졌어 / 최종호
한글날이 끼어 있는 연휴를 활용하여 대학 친구 부부와 여행을 다녀왔다. 당초에는 세 쌍이 가기로 했으나 안동에 사는 친구의 장모가 일반 병실에서 갑자기 응급실로 옮기는 바람에 그는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최종 목적지는 홍도.
열두 시에 여객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해서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하지만 목포 톨게이트를 앞두고 정체 현상이 심했다. 또, 시내를 통과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사이 친구에게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늦을 것 같으니 여행사에서 알려준 대로 2층 선박 회사에서 표를 받아놓으라고 했다.
출항할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으나 만나기로 한 시각을 넘겨 마음이 바빠졌다.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 ‘이제 됐다.’ 싶었는데 입구에 ‘만차’라고 쓰여진 표지판이 가로막았다. 할 수 없이 국제선 앞, 개인이 운영하는 주차장에 차를 맡겼다.
회비를 맡아 관리하기에 술과 안주, 과일, 간식거리를 늘 내가 준비하는 편이라 짐이 제법 많았다. 낑낑거리고 2층 대합실로 갔더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앞 주가 추석 연휴라 이렇게 여행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지 못 했다. 대부분 장년층 이상이었다.
식당에서 점심 먹을 여유가 없을 것 같아 아내가 미리 준비해 온 간편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구석에 놓여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이용할 수 있어 좋았다. 출항할 시간은 오후 한 시. 손님이 많아서인지 10분 후에도 한 편이 더 있었다. 대합실에 사람이 그리 많았던 이유가 있었다.
우리 자리는 쾌속선의 2층 맨 앞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서로 마주보게 되어 있었다. 한 의자에 세 명씩 앉도록 되어 있는데 한참 후에 두 분이 늦게 왔다. 틀림없이 포기한 친구 부부 두 사람 때문에 배표를 샀을 것으로 예상하고 물으니 가장 늦게 표를 구한 것은 맞는단다.
배는 미끄러지듯 목포항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마주보고 앉은 그들과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이 지긋한 부부는 목포에 사는데 흑산도에 딸린 섬에 집이 있어 가끔 둘러보러 간다고 했다. “섬에 사는 분들은 국가에서 운행 요금을 보조해 주니 좋겠어요.”라고 했더니 1인당 단돈 1000원이라며 웃는다. 깜짝 놀랐다. 여행객의 반값이나 되는 줄 알았는데 상상 밖이었다.
목포에서 도초도까지는 약 한 시간, 흑산도까지는 두 시간, 홍도까지는 두 시간 30분이 걸린다. 잔잔했던 바다가 도초도를 넘어서자 조금씩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앞에 앉은 분은 생글거리며 “아주 좋은 날에 여행을 가네요?”라고 했지만 친구 아내는 멀미가 심한지 얼굴빛이 희노랗게 변해 있었다. 친구도 1층으로 내려가 소식이 없었다.
사실 나와 아내는 이번이 두 번째다. 40년 전, 대학 3학년 가을에 밀월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그 시절, 교육대학은 다른 대학교에 비해 납부금이 적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 달쯤 지나면 장학금 명목으로 일부를 돌려준다. 말하자면 나만 아는 용돈이 생긴다. 여행 경비는 그 돈으로 마련했다. 배가 어찌나 요동을 치던지 멀미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내도 힘들어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좋은 유전자를 타고났는가 보다.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다 보니 어느덧 흑산도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도에 닿았다. 부두 바로 앞에는 2층 여객터미널이 있었으며 접안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여행사에서 알려준 대로 1번 기둥으로 갔더니 현지 가이드가 명단을 들고 이름을 확인했다. 작은 섬에 한꺼번에 350명 이상이 내렸으니 시끌벅적했다. 젊은이는 거의 없고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뿐이었다.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예전의 마을은 온데 간 데 없고 현대식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뒤쪽에 있는 몽돌해수욕장에 있는 횟집으로 갔다. 경치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아 마시는 술이 기가 막혔다.
다음날, 아침을 일찍 먹은 다음 유람선을 탔다. 남문바위에서 바라본 기암괴석은 정말 빼어난 절경이었다. “회비로 왔을 것인디 총무는 내 돈 아닌 게 아끼지 말고 이럴 때 팍팍 써버리시요잉. 그래야 여행 끝나면 바꿔 주제.” 안내하는 사람의 입담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어선이 한척 다가왔다. 즉석 회에다 소주를 곁들이는 맛은 여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열한 시쯤 홍도를 뒤로하고 흑산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홍도가 멀어질 때까지 정겨웠던 예전의 작은 마을이 자꾸 기억에 되살아난다.
첫댓글 저도 예전에 엄마 모시고 홍도 흑산도 1박 2일로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40년 전, 대학 3학년 가을에 밀월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교장 선생님의 비밀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정말 용감하시네요. 하하하!
우와. 선배님 용기에 박수를!
'밀월'이라는 단어만 남았습니다. 하하. 아, 저도 차 멀미는 해도 배 멀미는 안 해요.
저도 자부했는데 저기 갈 때 바다 한가운데 가면 멀미 나더라구요.
@심지현 그래요? 한번 가봐야 겠네요. 하하.
@황선영 아무튼 제 기억엔 사람들 다 쓰러졌었어요.
저도 흑산도 한 번 갔다가 멀미로 죽을 뻔 했어요. 다시는 안 갑니다.
그런데 선생님 대학교 때가 정말 궁금해 지네요. 그 이야기도 기대합니다.
대학 3학년 가을에 밀월여행 하셨다고요? 우와!
원래 쾌속선의 앞자리는 멀미하는 자리지요. 홍도 여행기, 반갑습니다. 2020년에 흑산도에 살았거든요.
얼마나 배멀미를 심하게 했던지 홍도하면 고개가 저어집니다.
선생님의 밀월 여행담이 궁금합니다?
교대에는 좋은 전통이 있네요. 이제 알았습니다. 하하하.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