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살롬 ! (2023년 3월 2일 신우회 수요일 예배 말씀)
예수님의 영성은 우리가 알 때만이 성장하고 우리가 삶속에서 살아가야만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길에서는 고난도 있을 수 있고 고통도 따름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증거한다는 일은 그 만큼 상급이 큼을 말해줍니다.
본문 말씀 : 마가복음4:26-29절 < 새번역성경 >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낱알을 낸다.
열배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말씀 선포 : 부활은 있습니다. (There is Resurrection)
부활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은 다시 살아났다가 다시 죽음을 맛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야웨 하나님의 예언자들이나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신 적은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다시 죽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죽음을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온 성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삼위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모두의 부활을 확신합니다.
부활이 있다는 말을 허무맹랑한 소리로 여기는 이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안정된 삶을 뒤흔드는 일로 부활을 받아들이기에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에도 이렇게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이었던 그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로마제국이 자기들을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로서 질서를 유지하도록 맡긴 역할이 흔들이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부활은 그 질서를 뒤흔드는 끔찍한 일이었기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21세기 오늘에도 사두개인처럼 사회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부활을 싫어하며 부활은 가짜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 부활이 안정된 삶을 흔들 사건이라고 생각하는가는 부활이 가져올 삶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던 사두개인과 예수님의 대화 속에서 주님은 부활한 모두가 천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성도는 사람들이 결혼도 하지 않는다는 주님의 말씀과 결부하여 부활한 모두는 천사처럼 영적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이해는 오해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타 다른 이처럼 음식을 드신 것만 보더라도 사람은 몸을 가지고 부활할 것입니다. 이 몸이 현재 사람이 가진 몸과는 다른 면을 가지긴 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출입문을 봉쇄하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홀연히 나타나셨으니까요. 어째든 사람은 예수님처럼 자기 몸을 가지고 부활할 것입니다. 그럼 주님이 사두개인에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삼위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완전했던 제도로서의 결혼이 사라지고 진실로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영원히 한 몸을 이뤄 천사들처럼 주님을 기뻐하고 섬기며 살아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으로서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주님이 맺으신 한 몸을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 영원히 사라지고 이제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산 존재로서 하나님과 친밀한 언약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죽음을 무기로 누군가를 협박하며 자신의 이득을 취했던 이들로서는 부활이 가져올 엄청난 변화를 그들의 안정된 삶을 무너뜨릴 사건으로 여길게 당연했습니다.
영원히 산 존재로서 하나님과 친밀한 언약의 관계를 맺기를 기다리는 성도는 주님이 모두를 부활하게 하실 날이 있음을 기대하며 삽니다. 물론 주님이 언제 오셔서 모두를 살아나게 하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날을 기다리는 성도는 주님이 언제 오시던 상관없습니다. 이 성도는 장차 영원히 누리며 살아갈 혼인잔치를 기다릴 충분한 기름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마태복음서 25장에서 예수님이 주신 열 처냐 비유의 핵심은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다섯 처녀입니다. 주님과 영원히 살아갈 날을 소망하는 성도는 넉넉히 준비한 기름으로 주님 오실 길을 밝힐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넉넉히 기름을 준비한 사람이지 아닌지 알고자 한다면 하나를 자기에게 질문하십시오. ‘나는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을 가슴 뛰게 고대하고 있는가?’ 왜냐하면 그 날은 부활이 없다고 말한 이들에게 다시없을 가장 끔찍한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14장의 노래를 살펴보십시오. 부활이 없다 말하며 타인을 억압하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병들게 하며 주님의 이름을 조롱했던 이가 영원한 조롱을 받으면서 스올에서 살 것입니다. 불활이 없다 말하며 자신의 이름만 높아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영광을 잃어버리고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성도는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위로를 받으며 즐거워하며 살 것입니다. 시편89편 저자의 노래처럼 야웨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며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찬양할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오직 마가복음서에만 기록된 씨 비유처럼 주님의 일하심 속에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부활은 사람이 수고해서 얻지 못합니다. 주님이 부활을 자기 백성에게 수여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셨던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오직 유일한 보좌 위에 앉히신 것처럼 모든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시며,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던 온 성도를 왕들로 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청지기들 말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사람이 정한 모든 경계선을 무시하시고 이곳저곳에 거침없이 씨를 뿌리십니다. 주님은 또한 사람이 예상하는 바를 뛰어넘으셔서 복음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주님의 일하심에는 사람이 정한 한계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주님의 백성은 주인처럼 이곳저곳에 복음의 씨앗을 아낌없이 뿌립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그 씨앗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