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메모리용량 때문에 더듬어 기술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왜곡될 수도 있겠지만 「하얀 거짓말」 조차도 의도적으로 가감하지 않을 것이다. 허위사실을 편집할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사실충실성을 뜻하는 “Factfulness”에 근거하여 과거를 되돌아본다. 재직시절의 episode는 무수히 많다. 특히 영업현장에서 좌충우돌했던 사건과 사고는 기록을 넘어서 반면교사도 가능할 것 같다.
Cyclosporin성분의 면역억제제가 있다. 장기이식환자의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필수의약품이며 어떤 이는 “절대치료제”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그 대표적인 약물이 스위스 산도스(노바티스)에서 독점하던 “산디문”이었다.
당시 회사의 개발마케팅 슬로건인 “국내 최초! 세계 두번째”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임프란타’라는 산디문의 경쟁상품이 탄생하였다. 탄생과정의 우여곡절이나 이상한 생동실험 등은 오늘은 언급하지 않는다.
소위 제네릭 면역억제제의 도전은 이식센터가 있는 병원들은 물론 이식학회나 신장학회 등에서도 반신반의했다. 세포탁심이나 세프트리악손은 특허 우회전략으로 가능했을지 몰라도 이건 아닐 걸? 싸늘한 반응 속에 ‘제품을 갖고 와봐!’ 소위 DEMO용 Sample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경쟁사인 산도스에서 샘플을 수거해 갔고 이후에 결정체(crystal)가 섞여 있는 사진이 돌아다녔다. 전문Dr. 일부는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cristal결정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기술도 오늘은 언급을 유보한다.
영업파트에서 수거해온 사진을 들고 과천으로 뛰었다. 1981년 4월에 출범한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아가 민원상담 사무관을 만났는데 나하고 같은 임(林)씨 성을 가진 사무관이었다. 나는 법률상식에 무지했지만 상대의 행위가 괘씸하여 제소를 하게 된 것이다. ‘부정경쟁방지법’에는 경쟁사의 약점만을 부각하여 고객에게 홍보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당시 경쟁사에는 법률 전문가 로비스트가 활동하고 있었고 우리는 장똘배기 수준인 내가 공정정책과를 출입하게 되었다.
의료계에는 제소사실을 적극 홍보했고 그 sample의 수집경로나 보관상태, 사진촬영환경 등의 객관성을 문제삼으며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30여개의 장기이식 센터는 산도스의 나바론 요새 같았다. 그러나 독점의 오만과 편견은 곳곳에서 감지되었고, 산도스 퇴직인력을 찾아내어 특채로 합류시키면서 내친 김에 전직회사(영진약품)에 근무중인 슈퍼영업맨까지 삼고초려하여 뽑아서 국산의약품 독립군 특공대를 조직했다
제품만 제네릭을 만들면 승률이 낮다. 마케팅이나 영업도 개량신약화 해야 한다.
마드리드 유럽신장학회에 혈혈단신으로 Tag Along(꼽살이 껴서)하며 KOL들과 교분을 만들고 바로셀로나 이식학회에서는 Korean Dinner Party의 half host 역할도 했다. Welcome Address의 일부가 기억난다. “대한민국에는 <Four임>이 있습니다. 한미약품에 <임>성기회장이 있고, <임>선민본부장이 있고, <임>왕기PM이 있으며 <임>프란타가 바로 그 <4임>입니다. 전날 밤새워 만든 원고는 산디문 말고도 ‘임프란타’라는 면역 억제제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충분히 각인시켰던 것 같다.
국내학술대회에서는 우리처럼 쬐끄만 미라지 부스에는 선생님들이 잘 안 찾는다. 곁에 있는 외자사의 아일랜드부스에는 많이 북적인다. 학회행사 중에 부스투어 하는 시간은 약간의 릴랙스 타임이다. 약이 오른다! 특공대원들에게 붉은색 자켓을 입히고, TV모니터를 동원하여 High Comedy Mr. Bean을 틀어 제꼈다. 그 이후에는 대부분 의사들은 우리 부스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다.
전략적 접근의 전쟁에서 <간, 신장이식 환우회> <이식 전문간호사모임> 종로6가에 있었던 <경제정의실천연합> <장기기증운동본부>……국내제약산업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직접 참여도 하게 되었다.
*나의 운전면허증에 표기된 장기기증 서약서
전쟁보다 전투가 더 어려울 때가 많다. 국립 전남대학교병원 입찰에서 한미의 임프란타가 낙찰 되었다. 써도 되는지 여부를 학회에 질의하기에 이르렀다. 예상대로 부정적 답변이 나갔고 그로 인한 파장을 막기 위해서는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의 특단의 도전이 필요했다
전투는 다부동전투만이 아니다. 가장 치열했다던 장진호 전투는 물론이고 진퇴를 거듭했던 백마고지전투는 어디에 비하랴!
이 시점에서 산도스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산디문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microemulsion type의 산디문 네오오랄을 발매하게 되었고 어떤 이들은 ‘한미는 뱀꼬리를 잡고 있는 꼴이다.’ 라는 걱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미의 독보적인 제제기술로 네오오랄과 같은 “네오프란타”를 만들 줄이야! 디테일의 스토리텔링도 절묘했다. 올리브오일보다는 fish oil이 신장기능에 더 도움이 된다는 신장내과 선생님들의 조언이 어프로치 하는 말거리로 충분했다.
그들은 국내시장 정도는 경쟁하며 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웬걸? 미국의 Global Generic社인 IVAX가 노리고 있을 줄이야! 국내시장에서도 이식센터 대부분이 단독 또는 공존의 Code-in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Rx Protocole을 신장내과에서 운영하는 병원은 물론이고 이식외과에서도 호응 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장기이식의 석학을 초빙하여 제주 파라다이스호텔을 전세내어 심포지엄을 열었던 마케팅 Event는 지금도 자랑스럽다.
어느 맑게 개인 주말 오후. 임회장님의 부름을 받고 진흥아파트에 올라 갔다. 한손에는 서류 뭉치,또 다른 한손에는 전자계산기를 들고 계셨다.. 국내매출 Invoice 기준으로 15% 로열티를 20년간 주겠다는데~~.팔까? 말까? Neoplanta의 품목이전은 6,300만불! 계약금 1,300만불에 매년 1,000만불씩 5년간!
영업현장에서는 거의 피투성이 전투에 지쳐 있는 상태인데 설상가상으로 국내C社도 도전장을 낸 상태였다.
회장님! 빨리 파십시요!
인천상륙작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되었다.
1997년 IMF직전의 일이다. 840원대 환율이 매일 100원이상씩 치솟고 있었고 계약금으로 받은 1,300만불은 매일 일이십억씩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2개월여가 지나자 달러는 1,900원을 넘나들었고 어느 날 임원들과 함께 “어양”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에 “우리가 달러 장사도 아니고 자금도 필요할텐데 환전해서 쓰지!” 그 결정 이후에 환율은 서서히 하향곡선을 긋고 있었다.
「혜안」 이었을까?
「행운」 이었을까?
그 어려웠던 IMF시절에 남들은 불경기를 탓하며 회사를 Downsizing할 때 우리는 아주 우수한 인력의 확보, 조직확대, 의약분업 처방약을 준비하면서 신바람이 났다.
<톰 피터스> ‘미래를 경영하라! 저서에 나오는 <Reward excellent failure, punish medicore success!> <멋있는 실패에는 상을 주고, 그저 그런 성공에는 벌을 주라!>라는 문구를 노트에 적어 놓으시고 내게 보여주시며 자신의 경영철학을 강조하셨던 시절에 나는 주로 Punish쪽에 속할 때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회사의 성장, 발전에 기여한 공(功)을 쌓으며 받은 벌(罰)은 상(賞)보다 훨씬 더 맛 있었던 것으로 추억한다!
http://www.pharm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