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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하나는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세리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토색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또는,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눅18:9-14)
9 Jesus also told this parable to people who were sure of their own goodness and despised everybody else. 10 “Once there were two men who went up to the Temple to pray: one was a Pharisee, the other a tax collector. 11 The Pharisee stood apart by himself and prayed,[a] ‘I thank you, God, that I am not greedy, dishonest, or an adulterer, like everybody else.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that tax collector over there. 12 I fast two days a week, and I give you one tenth of all my income.’ 13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and would not even raise his face to heaven, but beat on his breast and said, ‘God, have pity on me, a sinner!’ 14 I tell you,” said Jesus, “the tax collector, and not the Pharisee, was in the right with God when he went home. For those who make themselves great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made great.”
어르신들께 하나님 믿으세요 하면 이렇게 답하십니다.
비 내리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빛을 내려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 아니면 농사는 어떻게 짓겠습니까?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렇게 답하십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없이 그 무엇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땅을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죽어도 사는 하나님의 나라 영생을 믿을 것입니다.
지금도 설교를 하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누리게 하는 일입니다.
9.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9 Jesus also told this parable to people who were sure of their own goodness and despised everybody else.
첫째 사람들은 쉽게 자신만 옳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쉽사리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만 사람의 사건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즉 사람을 멸시하는 일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성경이 이런 지적을 하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사람을 멸시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적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 학살까지 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둘째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면서 남을 멸시하는 행위를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예로써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은 기도를 예화로 드시고 있습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두 사람 이야기를 하십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사람을 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하나는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세리다.
10 “Once there were two men who went up to the Temple to pray: one was a Pharisee, the other a tax collector.
여기에서 두 사람이란 바리새인과 세리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말씀에 철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리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죄인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였습니다.
나라와 하나님을 배신한 죄인들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이 두 사람이 기도하러 함께 모였습니다.
그런데 질문하겠습니다.
세리와 바리새인이 모두 기도하러 왔는데 모두 옳았습니까?
기도하니까.......
먼저 바리새인이 기도했습니다.
실은 예수님께서 이 기도 행위를 통해 어떻게 사람을 멸시하는지를 보이셨던 것입니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토색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또는,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11 The Pharisee stood apart by himself and prayed,[a] ‘I thank you, God, that I am not greedy, dishonest, or an adulterer, like everybody else.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that tax collector over there.
바리새인은 교회당 제 일 앞자리에서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그가 이렇게 당당한 것은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감사할 기도 제목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가 감사했던 내용들은 없는 일을 만들어서 낸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삶은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이 요구를 정확히 지켰습니다.
율법이 금지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못된 일도 일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타락한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리를 보면서 혀를 찼습니다.
저런 인간이 교회 안에 함께 있어야 하는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세리와 같지 않은 자신을 감사했습니다.
친일로 먹고 사는 이 사람은 얼마나 비참한가!
그는 삶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뿐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봉사 역시 탁월하게 구별되었습니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2 I fast two days a week, and I give you one tenth of all my income.’
절제가 가장 어려운 욕구는 식욕과 소유욕일 것입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했습니다.
그는 십일조를 했습니다.
백만 원을 벌면 십만 원을 헌금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남이 못하는 일을 하나님 때문에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일을 두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13.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3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and would not even raise his face to heaven, but beat on his breast and said, ‘God, have pity on me, a sinner!’
그런데 세리는 할 말이 도무지 없었습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들을 모조리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 부끄러움을 본인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이었습닏.
그는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해서 온종일 그 일에 전념했던 것입니다.
그 일은 아버지의 대를 물려 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그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그 일로 인해 모든 풍요를 누려왔던 그였습니다.
또 자신이 그 일을 그만 둔다면 식구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런 주제에 그는 하나님을 부인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에 갔을 때 그는 교회 앞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을 제대로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서 기도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입을 열어 기도하면 하나님께로 더러운 입냄새가 확 토해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반복한 것입니다.
13.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3 ‘God, have pity on me, a sinner!’
그는 자신이 기도한다면 그 기도가 오히려 죄가 될 수도 있다고 여겼습니다.
입 다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14 I tell you,” said Jesus, “the tax collector, and not the Pharisee, was in the right with God when he went home. For those who make themselves great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made great.”
요즈음 내란 사건으로 TV의 재판정이 이 체널에도 등장합니다.
저 체널에도 재판정.
거기를 보면 검사는 죄를 고발하면서 징역 20년이라고 주장합니다.
변호사는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검사와 변호사가 아닙니다.
판사가 10년 하고 망치를 꽝꽝 두드리면 끝입니다.
14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14 I tell you,”
여기에서 나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바리새인이 거창하게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뻐하시리라 확신했습니다.
또 세리는 가슴만 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런 기도가 있나.......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 기도를 거부하셨던 것입니다.
면목이 없다고 가슴을 치고 있던 세리의 편을 드셨던 것입니다.
세리가 옳았다.!
얼마 전 어머니를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손에 때로 어머니 똥을 묻히면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해주셨던 일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10개월 동안 배에 넣고 다니셨습니다.
거기에서 어머니의 살과 뼈로 나를 만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생명을 건 산고를 치르신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다음 내 똥을 모조리 치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불고기집에 간다고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세계 관광을 시켜드린다고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내 존재를 가능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을 무엇인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똥 좀 치운 일과 존재를 결정한 일을 질적으로 다른 일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여긴 것입니다.
세리의 겸손이 옳았습니다.
그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은혜로 인해서 가슴만 칠 뿐이었습니다.
어르신께 전도하면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제껏 70-80 세월을 하나님 없이 살다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고백하는 것이 염치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리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하나님께서 세리를 수용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금식을 통해서도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이 감사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리새인이 감사 기도를 통해 사람을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을 대립했다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 앞에서 결국 우리 한계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겸손하는 일입니다.
세리처럼.......
하나님은 말문이 막혀서 가슴을 치는 자의 편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