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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맛 포도주의 맛
아가서 1장 1~4절
1 솔로몬의 아가라
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4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금년도 벌써 전반기가 다 지났고 후반기가 시작됐다.
오늘이 후반기 첫째 주인데 2023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중요한 해이다.
온 세계적, 시사적 문제도 그렇고
성경의 내용도 그렇고
온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이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이 한해를 영적 각성하면서 잘 지내야 된다.
신앙의 방향과 감각을 가지고 이 시대에 걸맞게
신앙생활을 잘 감당해야 된다.
이제 전반기를 마치고 후반기로 갈 때 더 분발하고
영적으로 각성하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는 개인적으로 금년이 목회 사역이 40년 되는 해이다.
의미가 있다.
제가 예수 믿은 지 42년 되는 해인데 42라고 하는
숫자는 의미가 있다.
계시록에 42달 이런 단어도 있고 예수님이 오신 때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 보면 아브라함 때부터
다윗까지 14대 그리고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 때까지
14대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 예수님이 올 때까지
14대 합쳐서 42대인데 14대씩 나눈 것은
영적 의미가 있어서 단락을 나눈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텐트를 치면서 진을 친 곳이 마흔두 번이다.
그러니까 성경적으로 42이라고 하는 숫자는
굉장히 영적인 의미가 있는 숫자이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도 금년 한 해를
굉장히 기대를 하고 있다.
세계적인 시사 문제도 중요하고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해이기 때문에
저는 금년 후반기를 영적으로 새롭게 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지난 부활절에 앞에 화분을 갖다 놨는데
그때는 꽃이 하얗게 피었다 져서 버리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아까워서 계속 물을 주고 관리를 했더니
전부 새싹이 나왔다.
이렇게 화분에 꽃이 피는 전성기가 지나가고
다시 새싹이 나오는 순을 보니까
이것이 옛사람 육십만 명이 죽는 모습 같아 보였다.
60만 명 다 죽고 나의 새 사람이 이 새싹처럼
새롭게 나오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교육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옛 사람이 이렇게 다 이파리가 없어지고
매주 마다 오면 대여섯 개씩 떨어져 있었다.
옛것은 다 죽어가고 새로운 싹이 계속 올라오는
나의 새 사람이 이렇게 올라오는 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경기도에서 디지털 배움터를 열었다.
노인들에게 무료로 디지털에 관련된 교육을 가르친다.
그런데 거기에 가보니까
"부천시 이모작" 이렇게 써져 있었다.
이모작이라는 단어가 저에게 꽂혔다.
그래서 이제 남은 인생을 좀 이모작으로 살아보자 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지금 여러 가지 교회 유튜브 방송에 관련된 교육과
지금 펴낸 책 10권 전부를 전자책으로 내려고
전자책까지 내는 프로그램을 6~7월에 배우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새롭게 도전하는데 옛 이파리가 다 지나가고
새순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 각자 인생을 이모작 해보며
남은 인생을 좀 보람 있고 가치 있게 살아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감동이 있어서 배우기로 하였다.
저만 이렇게 살 것이 아니고 여러분도 영적으로
좀 새롭게 되면서 남은 인생을 좀 보람 있도록 사는
그런 시간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사람은 오감을 가지고 있다.
5가지 감각이다.
시각이 있고 청각이 있고 후각이 있고
미각이 있고 촉각이 있다.
그래서 이것을 오감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인생은 오감을 만족하려고 살아간다.
그런데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육체적인 오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오감도 똑같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도 알고 살아야 된다.
그중에 이 미각이라고 하는 "맛"이라는 말을
오늘 이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맛이 무엇인가?
음식 따위가 혀가 닿았을 때 느껴지는 감각
그것을 맛이라고 한다.
'이 음식 참 맛있다', '이건 맛이 없다'
약이 좀 쓰다, 뭐가 시다 우리는 음식을 혀로 느끼고
표현 하는 미각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단맛이 있고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이 있다.
매운 맛 신라면의 매운 맛은 그 "신"자가 "매운 신"자이다.
그래서 매운 맛도 있는데
이 중에서 매운 맛은 혀가 느끼는 통증에 해당하기 때문에
맛으로 집어넣는 미각이 아니고 촉각으로 들어가게 된다.
촉각은 혀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엔 지방 맛이라는 게 있다.
고소한 맛 기름이 들어가서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것을
지방 맛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각은 여섯 가지로 정의를 한다.
한번 따라 해보자
단, 짠, 쓴, 신, 감, 지
이렇게 여섯 개가 맛이다.
여기에 떫은맛이라 맛도 있는데
이것도 미각에서 제외돼서 촉각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맛이라고 하는 말이 어떤 음식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물 현상에서
느껴지는 느낌, 분위기 이런 것도 맛이라고 한다.
예로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을 때 죽을 맛이라고 한다.
이것은 음식 맛이 아니고 어떤 느낌,
나의 분위기인데 이런 것도 맛이라고 한다.
우리가 시는 눈으로 읽는 것보다도 소리 내서 읽어야
시 본연의 맛이 나는 법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더 다른 의미가 또 있다.
어떤 일에 대하여 느끼는 만족스러운 재미,
이것도 맛이라 한다.
뭔가 재미 있는 것을 맛으로 표현하는데
도박의 맛을 느끼면 도박에 중독이 되는 것을 말하고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는 맛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오늘 설교 제목이 "사랑의 맛 포도주의 맛" 이렇게 정했다.
첫 번째,
이 세상의 모든 맛을 딱 정리하면
두 가지 맛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맛이냐 아니면
포도주의 맛이냐 두 가지 맛밖에 없다.
본문 2절을 보면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이것은 술람미와 솔로몬의 사랑 이야기인데
이 내용을 가지고 여러 가지 해석을 하지만
어쨌든 솔로몬이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사랑의 맛이라고 하는 네 사랑이 있고
포도주라고 하는 세상 정욕의 최고봉인 세상의 맛이 있다.
그래서 맛은 두 가지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맛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냐
세상으로부터 오는 포도주의 맛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냐
맛은 두 가지로 정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4절에도 또한번 말씀한다.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
맛의 대명사인 포도주 맛보다 그 사랑의 맛이 더 진하니까
모든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신부의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 처녀들인데 예수 믿는 모든 처녀들
이 모든 사람들이 전부 왜 너를 사랑하느냐?
네 사랑의 맛이 세상 포도주 맛보다 더 진하고
더 맛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맛은 딱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았다면 자라나야 되기 때문에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그 인자를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인자가 무슨 말인가?
인자하다 이것은 사랑이란 말이다.
자비하다 이것이 사랑이다.
긍휼을 베푼다.
왜 불쌍히 여기는가?
사랑이라는 근간에 따라 다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자스럽다, 자비스럽다, 긍휼히 여긴다,
전부 사랑에 기초한다.
그러니까 주님의 사랑을 맛보았다면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그 사랑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그 근원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고 그분의 사랑과 긍휼이 있다.
저와 여러분을 구속해 가는 원리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분의 긍휼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속을 이루고 가는 것이다.
시편 136편을 보자
136편에는 매 절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왜 계속해서 인자하심을 얘기하고 있는가?
매절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고백하고 있다.
계속 인자하심을 말하는데 이것은 광야 40년의 삶과
무관하게 말한 것이 아니고 광야 40년의 삶과
연결시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13절에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애굽을 떠나서 홍해까지 왔으니까 그 홍해를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갈라주신 것처럼 나의 환경에도 홍해가 열린다.
그 인자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 홍해에서 그냥 죽지 않게 하고 건너가게 해 주셨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15절에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려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홍해를 갈라서 나의 환경 배후에 바로의 군대와 같은
악령들이 따라와도 하나님이 다 수장시켜버리니까
그것을 감사하라고 하였다.
하나님 왜 그렇게 하셨나?
그분의 사랑과 인자하심 때문에 나의 환경 배후에
모든 악령들을 다 물리쳐 버리시는 것이다.
또 계속해서 나온다.
큰 왕들에게, 아모리 인의 왕 시혼, 바산왕 옥
이것은 미디안의 모든 연합국의 왕들을 다 죽이시고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에 근거해서
이 일들을 이루신 것이다.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끈이 나를 붙잡고 있다.
지금 그분의 인자가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를 맛보고
사랑을 맛보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의 맛을 볼수록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 정욕의 포도주 맛은 점점 끊어지는 된다.
그런데 그 맛을 느끼지 못하면 세상 포도주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무슨 맛인가 맛을 봤고 그 맛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인생이 이렇다.
그러니까 세상 포도주라고 하는 맛을 우리가 점점
멀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의 맛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의 맛을 보는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야지
우리가 세상맛을 이겨가게 된다.
요한일서 4장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가 이것을 알고 믿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을 알고 믿은 것이다.
그 십자가에 그 놀라운 사랑을 알고 그걸 맛보고
깨달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을 찾아 간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다 죄인이고 원수인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분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 십자가의 죽음의 사건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증하신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맛보고 그러면서 주님을 따라가고 있다.
로마서 8장 38절부터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세상 무엇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삶 가운데서
끊어버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그 사랑 때문에 결국 우리를 구원하시고
결국은 그 사랑 안에 우리를 완성시켜 가신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사건을
아가서 1장 3절에 이렇게 표현하였다.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쏟은 향기름 같다고 하였다.
기름 한 병을 땅에다 쏟으면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것처럼
사랑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쏟은 향기름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고 그 사랑이 진동하면서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
여기서 쏟은 향기는 예수님이라고 하는 그 이름 자체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것이 쏟은 향기로 우리가 그 사랑의 향기를 맡았다.
아가서 2장 3절에는
"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나의 사랑하는 예수님은 이 세상에 수많은 나무들이 있고
수풀이 있어도 열매 맺는 주님의 사과나무만
내가 그 그늘에 가서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가 내 입에 달았다고 하였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통한 열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 이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여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과나무로 그 사랑을 표현하셨어요.
아가서 5장 9절에는 뭐라고 표현했나?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네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포도주 이 세상 사랑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지 좀 말해 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맛보아야
포도주다운 세상맛을 끊어가면서
더 주님께 가까이 가게 된다.
그래서 또 하나의 맛인 포도주의 맛은 세상 최고봉으로
모든 애정과 욕망을 다 여기다 집어넣어서
세상 포도주의 맛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정욕이다.
수면욕 잠자는 것도 단맛이 있다.
성욕, 식욕, 명예욕, 물욕 그리고 여러 가지 애정들
이것이 다 애정과 욕망인데
이것을 하나로 포도주의 맛이라고 한다.
제가 어제 춘천에 갑자기 다녀오게 됐다.
화천에서 공동체를 같이 하던 목사님 어머니가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작년에 몸이 안 좋으시니까
나오셨는데 92세 되셔서 그제 돌아가셨다.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와서 어제 새벽 5시 반에 갔는데
주말이라 춘천까지 가는데 4시간 걸리고
올 때도 4시간정도 걸렸다.
장례식에 갔더니 화천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들
몇 분이 오셨었다.
90년에 제가 핵심진리 6회 사경회를 처음 듣고
바로 화천에 가게 됐는데 화천에 지방에 있는 목회자를
모아놓고 세미나를 했었다.
그래서 그때 저희 교단 신학원에 들어온
목사님들이 몇 분 계셨다.
그분들 중에 두 분이 온 것이다.
삼십 년 만에 만나 목사님, 사모님들 여섯 명이
초상집에 앉아 옛날 얘기 하다가 왔다.
목회자들이니까 자녀들 키우는 데 어려웠고 심방
다니느라고 돌보지 못하고 공동체 하느라 돌보지 못해서
다 자녀들 상처받고 그런 얘기들 잔뜩 하였다.
그런데 강릉에서 목회하는 강유경 목사님이
어제 이런 표현을 하셨다.
아들만 셋인 집안인데 아이들이 조금 크더니
그 중에 아들 하나가 어느 날 엄마 아빠를 불러다
앉혀놓고 "내 말 좀 들어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니
"나도 성도야 나도 좀 심방 좀 해봐" 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맨날 성도들 심방만 다니고
자기들을 돌보지 않으니까 마음에 상처가 되어
그 아이가 조금 커서 나도 성도니까
나 좀 심방 좀 자주 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목회자의 애로사항이 여기에 있다.
그 셋 중에 하나가 다행히 목사가 돼서
잘 됐다고 하였는데
"나도 성도니까 나에게도 좀 사랑을 부어봐",
"나도 좀 돌봐줘"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 아이도 목회자의 자녀지만 포도주라고 하는 세상,
정욕의 그 맛을 느끼지 못하고 못 누리니까
원망 불평하는 거다 그 말이다.
세상맛은 포도주의 맛으로 한 맛으로 하고
예수 믿는 내 사랑의 맛 이 두 맛밖에 없는 것이다.
한번 맛봐서 음식 맛을 아는가?
여러 번 맛보면서 정말 이 맛이 하나님의 사랑의 맛이구나.
제 맛을 봐야 된다.
이 포도주의 맛도 제 맛을 보는 사람은
그다음부터는 저절로 중독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제 맛을 모르니까 아직까지 거기에 빠져 있는 것이다.
세상도 맛볼 때가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의 맛이 우리의 삶 속에 어떤 맛으로
나타날 것인가?
부모 자식의 사랑이 어떻게 세상에서 표현이 되는가?
내 부모가 나를 보호해주고 있구나.
나에 필요한 걸 내 부모가 나에게 모든 걸
공급해주고 있구나.
엄마가 나를 매일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나에게 사랑으로 표현하고 이것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의 그 표현력이다.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
여기서 말하는 내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맛보이는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있는가?
그분이 나를 보호한다고 하는 걸 내가 느끼고
나와 사랑하고 나와 지금 동행하고 있다.
그걸 무엇으로 다 느끼고 있는가?
그게 종종 우리는 기도 응답으로 나타나는 거고
신령한 은사와 은혜를 주는 걸로 나타나는 거고
종종 그분이 나와 동행한다 말씀과 환경 가운데서
또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사실 그 목사님의 아이가
‘나도 성도니까 나도 신방 좀 해봐라.’
하나님께 영적으로 그렇게 가지고 나가야 된다.
‘나도 하나님 자녀인데 나한테도 좀 신경을 좀 써보라고.
왜 나를 보호해 주지 않고 나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고
왜 나에게 좀 이렇게 좀 이렇게...
사실 그 아이의 말이 영적으로 해석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맛보고 하나님이 동행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계시는구나.
그런 여러 가지 신령한 것들을 맛보면서 살아가야
그 맛을 제대로 아이로 살아가는 것이다.
말씀이 꿀맛 같다고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한다.
제대로 맛을 봐야 꿀맛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자꾸만 신령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그 신령한 맛, 하나님의 사랑의 맛을 자꾸 봐 나가야한다.
세 번째로
인생은 최대한 여러 가지 맛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음식 맛도 그러하다.
쓴 거 먹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쓴 맛이지 필요하니까 하나님이 만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쓴 맛을 괜히 만들었겠는가?
필요하니까, 약은 쓴데 몸에는 그게 좋은 것이다.
쓴맛도 필요하니까 만들었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신앙의 맛도 여러분 다 맛봐야 된다.
아이들이 단맛만 좋아해서 편식을 하면
이가 다 썩어버린다고 단맛 못 보게 한다.
우리가 사탕 뺐는다.
성도도 똑같은 것이다.
영적으로 어린 아이를 매일 단 것만 주면은
이빨이 썩어버리고
이빨이 썩으면 그 다음은 말씀을 못 먹는다.
영혼의 이빨이 망가지면 말씀을 못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쓴 것도 맛보게 하고
골고루 맛보게 하니까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되는가? 인생을 골고루 맛봐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서 실족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이럴 수가 있냐고
아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이런 고통 가운데
왜 가만 놔 두냐고
우리를 이 불행 속에서 왜 안 건지냐고
저 악마 같은 죄인들을 왜 그냥 놔두고 계시냐고
이 성도들이 실족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왜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면 선만 있지 않고 악이 있냐고
그런데 하나님은 인생을 구속하시는 시작부터
불행의 자리에서부터 시작을 하신 것이다.
고난의 자리에서부터 시작을 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를 알아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했는데
그 아담과 하와는 예수님과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아담이 갈비를 빼서 하와를 만드는 순간부터
아담은 불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을 떠나서 육신으로 온 이상
그 예수님도 불안전한 아담처럼
갈비뼈가 없는 인생과 같은
그런 예수님이 된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하와가 반드시 신부가 짝을 채워서
그 갈빗대를 찾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예수님이
애굽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고
죄 가운데 출발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완성을 향해서 만들어가도록
처음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설계가
그렇게 시작된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
왜 그렇게 하셨겠는가?
인생의 단맛 쓴 맛을 다 보면서
이제는 하나님밖에 없구나.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 올인하고
하나님께 내 의지를 드리고
하나님께만 순복하는 인생으로 만들어질 때
하나님이 ‘그래! 이제 수고했어. 이리 와.’
그러고 하나님이 천국으로 부르셔서
우리를 천국 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이지
쓴맛 한 맛을 알지 못하면 인생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다.
하나님의 설계 자체가 처음부터 아담의 갈비뼈를 가지고
하와를 만드는 것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예수님도 자체가 죄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죄인처럼 그렇게 가능하셨다.
마태복음 2장 15절 말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애굽에서 불러내도록 예언이 돼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애굽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죄인처럼 애굽에서부터 떠나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굽으로 제일 먼저 가는 것이다.
호세야 2장 14~15절
14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기에 지금 내가는 누인가? 하나님이다.
저는 누구인가? 저가 이스라엘이다.
개유한다는 말이 무엇인가?
개혁 성경에는 어려운 말이 많은데
제가 다른 번역으로 한번 봤다.
14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꾀어내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부드러운 말로 잘 타이르고
15 거기서 그녀에게 포도원을 되돌려 주고 고난의
골짜기를 희망의 문이 되게 하겠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여인을 하나님이 호세를 통해서
내가 아내로 삼겠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장가들겠다.
하나님이 그랬는데 제일 먼저 광야로
꾀어내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부터 살다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광야로 꾀어낸 것이다.
그런데 광야에 가보니까 40년 광야에서
바로 가나안 땅이 아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에서 말로 위로하고 잘 다스려서
그다음에 포도원을 준 게 이스라엘이라는 땅인 것이다.
포도원이 영적 기업이다.
그래서 아골 골짜기 같은 그 고난의 골짜기 광야 40년이
오히려 소망의 문이 되고 애굽에서 올라온 같이
거기에 가서 출애굽 할 때는 얼마나 기쁘고
환성이 나오는데 가나안에 들어가야
다시 환성이 나오는 것이다.
40년을 지나니까 지긋지긋한 마음이 세상 지긋지긋한
이 환경에서 이제는 벗어났구나.
그때 쾌재를 부르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거란 말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이렇게 인생을 구원하시도록
처음부터 고난과 고통에서 시작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종종 하나님이 쓴맛만 주는 것도 아니고
감미로운 단맛도 주시고 신맛도 필요하고
향기로운 사과 냄새 나는 포도 열매 나는
포도 냄새 나는 이런 향기로운 맛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데 중요한 것이 그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하루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면서
그 저녁이 되면 안 믿는 사람들
그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 먹으면서 “캬~, 이 맛이야.”
수고하고 애써야 그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쓰고 힘써서 기도 응답을 받으면서
신령한 하나님의 사랑의 맛을 보니까
‘과연 캬~, 이 맛이구나.’ ‘기도 응답이 이 맛이구나.’
이걸 맛봐야 된다.
애쓰고 힘써서 성경을 봤더니 꿀맛이 바로 이 맛이구나.
이게 꿀맛이구나. 이걸 진짜 맛봐야 된다.
멸치 볶다가 마르면 비린내도 나고
제대로 못 먹는데 찌개 끓이는 것도 잘 끓여서
완전히 제 맛이 일어나야 ‘과연 이 맛이구나.’
남의 맛도 제대로 맛을 봐야 되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맛도 제대로 봐야 되고
그분이 나와 동행하시고 그분의 능력이 나를 보호하는
이걸 제대로 맛봐야 ‘이 맛이구나,’
그래야 세상 포도주 맛이 끊어지는 거지
이 맛을 모르니까...
동양권에서 개고기 먹는 나라가 몇 없다.
우리나라하고 중국하고 필리핀 몇 몇 나라면 있다.
미국에서 난리가 났다.
참 무식한 미개인들 필리핀 놈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미국에서 큰일 날 일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아는가?
‘미국 놈들이 개고기 맛을 몰라서 그래’
여러분 신령한 맛을 그렇게 느끼게 되어야 된다.
이게 기도 맛이구나.
하나님이 그렇게 살아계신다니
이게 정말 나를 사랑해서 보호하시는 말이고
이게 말씀이 꿀맛이라더니 이게 정말 꿀맛이었구나.
이게 내 사랑이 포도주가 낳은
하나님의 사랑의 맛이구나.
이걸 느껴야 포도주를 끊어가면서
그 맛으로 가는 거지
이 맛이 하나도 모르니까
무슨 맛인가?
그러니까 세상 종류의 포도주 맛을 가지고
그게 중독되면서 거기에 빠져서
한 잔 걸치면서 ‘이 맛이야, 이 맛이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고스톱을 치고 지구땡을 하면서
장땡이라고 ‘이 맛에 내가 이걸 해.’
게임을 하고 칠칠칠에 세 번 나오면
돈이 와락 쏟아진다.
그 맛이 있으니까 그걸 하는 것이다.
주님의 포도주 맛을 모르니까
세상 포도주를 마신다.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사랑을
어설프게 맛보지 마시고 한 번 내 일생에
제대로 한번 맛을 보자.
기도 응답도 제대로 한번 주님의 응답을 받아보자.
말씀도 정말 제대로 한번 말씀을 받아보자.
그래서 아가서의 기자처럼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구나.
내 이름이 깨진 향기름처럼 사랑이 진동하는
그 내 이름을 내가 가졌으니
내가 이제는 이 포도주를 끊고
하나님 나라에 그 신령한 맛으로 살아간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봤으면
그리 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사랑을 맛봐서는 그렇게 하시고
그 사랑을 정말 한번 일생을 통해서 제대로 맛보고
그 맛대로 이렇게 술람미 여인의 신앙 고백이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 되면서 이렇게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