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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을 찬양하라
2021년 12월 19일 / 시편 146:1-10
■ ♬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1.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후렴>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3.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4.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이 찬송(찬 370장)의 작사자인 히윗 여사는 어떤 부랑아에게 복음을 증거하다가 도리어 봉변을 당하여 오랫동안 병상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리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로 말미암아 히윗 여사는 심각한 신앙의 도전 받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입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이야기하기는 쉬우나 그 희생이 직접 자신에게 요구될 때에는 실로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히윗 여사는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 가해자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 병실 청소부인 흑인 여자가 찬송을 흥얼거리며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히윗 여사는 “이봐요,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아서 흥얼거려요?”라며 버럭 역정을 냈다. 그때 청소부는 “나에게 닥친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로 바뀔 힘을 주님께서 주셨으니 즐거울 수 밖에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히윗 여사는 전기의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의 불평과 증오로 가득 찬 나날에 대해 부끄러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음으로는 깊이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쏟았으며, 입술로는 본 찬송 시를 읊었다. 회개 속에 주신 아름다운 찬송시였다.
그 이후부터 히윗 여사의 투병생활은 기쁨과 찬송의 연속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의 아픔은 제거되었고 또한 가해자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히윗 여사는 많은 찬송가 작시와 청소년 선도에 일생을 바쳤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 하시니 …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 ”
불러도 불러도 은혜롭고 콧날이 시큰거리는 찬송이며 기쁨이 넘치는 감격스러운 찬송이다.
▶ 시편 146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치고 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노래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시편은 찬양의 시이다. 이 시편은 150개의 시편의 마지막 다섯 편이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치는데 ‘할렐루야 시’의 첫 번째이다.
대부분의 구약학자들은 이 내용이 유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할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포로기 이후로 기록 시점을 보고 있다. 유다 백성들이 나라를 잃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 후, 본국에 돌아온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인생 밑바닥에서 살아서 돌아온 것과 같다. 출애굽의 기쁨이 재생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렐루야! 즉 찬양하다 뜻의 히브리어 ‘할랄’과 여호와를 가리키는 ‘야’가 합성된 단어로 ‘여호와를 찬양하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할렐루야’, 이야기를 마칠 때도 ‘할렐루야’로 마쳤다. 그들의 언어 속에 처음과 끝이 모두 ‘할렐루야’이다.
1. 찬양하라(1-2).
시 146:1-2 / [약한 자 편들어 주시니] 할렐루야. 나 여호와를 찬양하리라. 2) 이 목숨 살아 있는 동안 나 여호와를 찬양하리라. 한평생 나의 하나님께 찬양 노래 부르리라.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2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이 3번이나 나온다.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본다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간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1-2절은 이 찬양시의 서론이다. 시인은 이중적으로 찬양을 강조하고 있다. 자기 속사람 즉 자기 영혼에게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스스로에게 찬양하리라고 결단하고 있다. 그는 자기 영혼에게 찬양하라고 했고 자기 일생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채울 것이라고 다짐한다.
‘나의 생전에’, ‘나의 평생에’라는 말은 ‘나의 계속되는 존재 속에,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을 때까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과 대화도 하고, 권면하고 명령도 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을 행해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어느 목사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미천한 나의 하나님도 되신다. 에녹과 함께 300년 동안 동행하셨던 하나님, 노아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 야곱과 요셉 그리고 모세와 함께 동행하셨던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는데, 약간의 환란이 있다고 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찬양하는 성도가 되자.
한 번 살다가 하는 삶이라면 욥처럼 환란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자. 비록 금과 은은 못 드린다 해도 우리의 일생 다하도록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자.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으로 가득 채우자. 이에 다윗도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환란과 핍박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다윗의 찬양을 받으시며 함께 하셨다.
시 22:1-3 / [버림받은 이 몸 건져 주소서; 다윗의 노래] 하나님! 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요? 살려 달라 울부짖어도 어찌하여 들은 체하지도 않으시나요? 어찌하여 그렇듯 멀리만 서 계시나요? 2) 날이면 날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어찌하여 대답 한 마디 하지 않으시나요? 밤이 다 새도록 애타게 불러도 어찌하여 들은 체하지도 않으시나요? 3) 그래도 우리 주님은 거룩하신 하나님, 고마움 그지없어 이스라엘이 찬미할 분이라.
찬양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하나님의 결연한 의지를 볼 수 있다. 결코 찬양을 사울 왕처럼 자기 자신이라든가 우상들에게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자.
■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들을 더듬어 보며 오늘도 하나님을 찬양하자. 이사야서는 BC 7세기쯤 쓰인 책으로 구약의 예언서 중 위대한 예언이 많이 있는 책이다. 이사야서는 예수님에 대한 가장 적나라하고 문자적인 예언을 많이 한 책으로 신약에서도 많은 구절이 인용되었다.
특히 이사야 42장과 43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포로생활에서 해방을 시켜줄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난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면 실망치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더딜지라도 기쁨의 날을 맞이하게 것이다.
사 42:8-9 /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이다! 여호와가 바로 내 이름이다. 역사를 지배하는 나는 영광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나의 이 명성을 우상들에게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 9) 너희가 포로로 잡혀 오기 전에 내가 미리 앗수르의 침략을 말하였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려 주겠다. 새 일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알려 준다. 너희도 포로생활에서 해방되며 온 인류도 죄악에서 해방될 새로운 일을 내가 시작하겠다.”
사 43:1-7 /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해방시키리라! 내가 네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선택하였으니 너야말로 내 사람이다. 2) 내가 너를 해방시킬 때에 네가 물속으로 지나가게 되더라도 내가 너를 데리고 함께 건너가겠다. 네가 빠르게 흐르는 강물속으로 지나가더라도 그 물결이 너를 휩쓸어 가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속으로 지나가게 되더라도 네가 불길에 그을지 않을 것이다. 어떤 불꽃도 너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3) 바로 나 여호와가 네 하나님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를 해방시켜 주는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해방시켜 주는 값으로 애굽과 구스와 스바 등 온 아프리카를 모두 다 바사에게 넘겨주었다. 4) 세상의 어떤 백성이든지, 아니 온 세상을 다 네 값으로 내주고서라도 나는 너를 해방시켜 주겠다. 너는 온 세상보다 더 귀하고 내가 그토록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5) 너는 두려워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흩어져 있다고 하여도 내가 그들을 해 뜨는 곳에서도 데려오고 해지는 곳에서도 모아 오겠다. 6) 북쪽을 향해서도 내가 ‘그들을 내놓아라!’라고 외치며, 남쪽을 향해서도 ‘그들을 가두어 두지 말라’하고 외치겠다. 아무리 먼 곳에서라도 나의 아들들을 데려오너라. 세상 끝에서라도 나의 딸들을 데려오너라! 7) 그들은 모두 내 이름을 품고 다니는 백성이다.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그들을 창조하고 직접 손으로 빚어서 만들어 놓았다.”
사 43:8-13 / [하나님의 증인 이스라엘] 주께서 세계 만민을 모으시고 온 세계의 주인이심을 주장할 때에 이스라엘을 증인으로 세우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을 증인으로 세워 놓아라! 볼 눈이 있어도 소경처럼 보지 못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처럼 듣지 못하는 이 백성을 나의 증인으로 세워라. 듣고 볼 능력이 있으면서도 소경과 귀머거리 노릇을 하는 백성이지만 내 증인으로 세워 놓아라. 9) 세상의 모든 민족들도 모아 놓고 모든 백성들도 집합시켜 놓아라. 그들의 모든 신들 가운데서 누가 오늘의 일을 예언하였느냐? 과거에도 그들이 예언한 대로 된 일이 있으면 우리에게 말해 보아라. 그들도 증인을 내세워 증명해 보아라. 세계 만민이 듣고 ‘참으로 옳다’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하여라.” 10)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이스라엘 백성이 나의 증인이다.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요 나를 섬기라고 종으로 세운 백성이다. 내가 한 모든 일의 증인이 바로 너희다. 너희가 나를 알고 나를 의지하고 따르며 이 세상에 나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도록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종으로 삼았다. 내 앞에 다른 신이 없었으며 내 뒤에도 다른 신이 없을 것이다. 11) 나만이 여호와, 세계의 주인이요 역사의 지배자이며 나밖에는 다른 구원자가 없다. 12) 내가 너희에게는 구원한다고 미리 알려 주고 선포했을 때 너희 가운데서 듣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참 신이라는 것을 알려 줄 증인들이다. 나는 이미 과거에 너희를 해방시켜 주었지만 13) 앞으로도 내가 너희를 해방시켜 주겠다. 나는 언제나 똑같은 해방주이다. 내가 해방시킨 백성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갈 자는 아무도 없다. 내가 하려고 작정한 일은 아무도 방해할 수가 없다.”
사 43:14-21 / [새 해방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의 해방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으로 정복자를 보내겠다. 그러면 그 도성의 주민들이 잔치를 벌이며 즐기던 유람선들을 타고서 강물을 따라 모조리 도망할 것이다. 15) 나는 너희의 거룩한 하나님 여호와요, 일찍이 너희를 창조하고 언제나 너희를 보호하고 인도하는 왕이다.” 16) 이스라엘의 해방주이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애굽에서 내 백성을 해방시킬 때에 바닷속에서도 큰길을 내었고 거센 물결 속에서도 곧은 길을 내었다. 17) 이스라엘을 뒤쫓는 그 엄청난 애굽 군대를 전차와 말들과 함께 내가 모조리 깊은 물속에 집어넣었다. 그들이 깊은 바닷속에 잠겨서 다시는 기어 나오지 못하였다. 마치 꺼져 가는 심지처럼 그들이 모두 사그라졌다. 18) 너희는 그 옛날 일만을 생각하며 오늘을 탄식하지 마라. 항상 그 옛일만을 되돌아보며 과거에 매여 있지 마라. 19) 보라, 내가 이미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 그 일이 이미 새싹처럼 돋아났는데 너희는 아직도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바로 내가 광야에 큰길을 내고 죽음의 사막에 생명의 강줄기들이 흘러가도록 하겠다. 20) 그래서 나의 선민 이스라엘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마음대로 마시도록 하겠다. 그러면 들짐승들도 그 물을 마시며 나에게 영광을 돌리며 승냥이와 타조들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21) 그러면 내가 만든 새 백성 이스라엘이 이 일을 계속 이야기하면서 나를 찬양할 것이다.”
▶ 이사야 44장 말미와 45장 초반에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고레스가 왕이 되게 하여 세상을 다스릴 통치권을 줄 것이며 13절에 그가 아무 조건없이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유다)백성을 풀어줄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사 44:21-28 / 주께서 말씀하셨다.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비록 포로생활의 어려운 처지에 있을지라도 이 사실을 잊지 말아라. 너희는 내가 보호하는 백성이다. 너희는 내가 창조하여 나를 섬기도록 선택한 백성이다. 이스라엘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결코 잊지 않겠다. 22) 내가 너희의 악행과 죄악을 모두 용서하여 먹구름이 사라지고 아침 안개가 사라지듯이 말끔하게 치워 버렸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제 내게로 다시 돌아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해방시키리라.' 23) 주께서 이루실 그 앞날을 내다보고 하늘아, 환호성을 질러라. 온 땅아, 주께 찬양하여라! 산들아, 환호성을 터뜨려라. 삼림과 숲속의 나무들아, 소리를 높이 질러라. 여호와께서 야곱을 해방시키시고 주님의 권세와 능력을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시지 않았느냐? 24) 이스라엘 백성아, 네 창조주이시며 해방주이신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태초에 모든 것을 창조하고 역사를 항상 지배하는 여호와이다. 내가 홀로 하늘을 차일처럼 팽팽하게 당겨 놓고 내 힘으로 온 땅을 펼쳐 놓았다. 25) 시대의 징조를 보고 예언하는 이들에게 내가 그들의 모든 거짓말에 대하여 벌을 내리고 점쟁이들이 모두 바보인 것을 내가 폭로해 놓겠다. 내가 똑똑한 현인들도 할 말을 모르게 만들어 버리고 그들의 지식이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겠다. 26) 그러나 나의 종들이 예언할 것은 언제나 내가 그대로 성취시켜 주었고 나의 심부름꾼들이 선포한 나의 계획은 내가 항상 그대로 실현하였다. 역사를 지배하는 내가 이제 예루살렘에 대하여 선언한다. `사람들이 거기서 다시 살 것이다!' 잿더미가 된 그 도성을 내가 다시 일으켜 놓겠다. 유다 땅의 성읍들도 재건될 것이다. 27) 깊은 바다와 넓은 강들과 같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바벨론 제국에게는 내가 이렇게 선언한다. `세계를 위협하는 깊은 바다야, 밑바닥까지 말라라! 네 강줄기들도 모조리 잦아들어라!' 28) 내가 이제 고레스에게 새 임무를 준다. `내가 너를 내 백성의 목자로 삼는다!' 내가 하려는 일을 그가 모두 실현할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런 명령을 내릴 것이다.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성전을 다시 세워라!'
사 45:1-12 / [하나님의 도구인 고레스왕] 주께서 고레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를 선택하여 왕으로 세워 놓았다. 내가 그와 함께 있어서 그를 도와주고 내가 그의 앞에서 세계 만민을 굴복시키며 왕들의 권세를 빼앗아 그에게 넘겨주겠다. 그가 가는 곳마다 내가 성문을 열어 주어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겠다.' 2) 주께서 고레스 자신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앞에 먼저 가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겠다. 청동의 성문들도 내가 산산조각으로 박살을 내버리고 무쇠 빗장도 쳐서 부러뜨리겠다. 3) 바벨론의 궁중에 숨어 있는 보물들도 내가 네게 넘겨주고 그 감추어 놓은 재물들도 네게 내주겠다. 그러면 너를 불러서 사용하는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다. 4)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지만 나는 너를 불러서 영광스러운 칭호를 네게 주겠다. 나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여 나를 섬기게 하였으나 그 야곱의 후손들이 지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불러서 내 백성을 해방시켜 주기로 작정하였다. 5) 나는 세계의 주인이니 더 이상 다른 주인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나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 고레스야, 너는 나를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내가 네게 권세를 주겠다. 6) 나만이 온 세상의 주인이며 나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온 세상이 다 알게 하려고 내가 너를 불러 왕으로 세우겠다. 7)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는 자이다. 나는 평화도 이루고 재앙도 불러오는 자이다. 이 모든 일을 집행하는 자가 바로 나 여호와이다! 8) 하늘아, 위에서 정의를 빗방울처럼 쏟아라. 모든 구름들아, 정의를 강물처럼 쏟아라. 대지야, 그 빗방울과 강물로 마른 땅을 녹여라! 해방과 평화의 새싹을 뿜어내어라! 나 여호와가 직접 이 일을 이루어 놓겠다.' 9) 누가 감히 자기의 창조주에게 비난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다윗의 왕손도 아닌 고레스를 이스라엘의 해방주로 쓰시느냐고 누가 감히 항의한다면 그것은 옹기그릇이 옹기장이에게 항의하는 것보다 더 악한 일이다. 토기장이가 진흙덩이를 주무르면 그 진흙이 `무엇을 만들 셈이냐?'고 토기장이에게 묻느냐? 작품이 예술가에게 `솜씨도 없게 만들었다.'고 불평할 수 있느냐? 10) 자기 아버지에게 `왜 나를 이 모양으로 낳았느냐?'고 항의하는 자식과 자기 어머니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고 원망하는 자식은 저주받을 것들이다. 11) 이스라엘의 창조주이신 거룩한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을 내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너희가 따질 작정이냐? 그것은 내가 직접 하는 일이니 너희가 간섭하지 말아라! 12) 땅을 만든 자도 나요 땅 위에 사는 인간을 창조한 자도 바로 나다! 내가 손으로 직접 하늘을 팽팽히 펼쳐 놓았으며 별들에게 명령하여 제자리에 가 있도록 하였다.
사 45:13 / 고레스가 승리하고 일어나게 한 이도 바로 나다. 그가 나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내가 그를 일으켰다. 나는 앞으로 그가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하겠다. 그는 나의 도성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나의 백성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는 무슨 돈이나 뇌물을 받지 않고 내 백성을 해방시켜 줄 것이다.
고레스가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는 약 150년 후인 BC 538년 쯤 성취되었다. 에스라 1장에서 구체적으로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적어놓았다. 나라를 잃고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갈 때에는 절망이었으나 하나님의 약속이 서서히 이루어짐을 보았을 때에 후대에서 그 모습을 보는 하나님의 백성들 아니 지금 성경을 읽고 있는 우리로서는 어떤 어려운 문제와 곤경에 처했을 때도 그것들이 가져다 줄 좋은 결과를 생각하며 기뻐하면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시련은 오히려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게 하고 인내는 강인함을 길러 주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희망과 믿음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 환란→인내→연단→소망을 이루는 공식을 늘 기억하자.>
라 1:1-4 / [고레스왕의 조서] 바사 왕 고레스가 즉위한 그 해에, 여호와께서 이미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알려 주셨던 약속을 성취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세계의 통치권을 잡은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그가 자기의 온 제국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그것을 문서로도 적어 공포하였다(BC 538년). 2) `바사 왕 고레스가 공고한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내 손에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 나라의 예루살렘에 자신의 성전을 짓도록 분부를 내리셨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렇게 조서를 내린다. 3) 너희들 중에서 이 신을 섬기는 백성이 있으면 누구든지 이제 유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지어라. 그 하나님이 그들 하나하나와 함께 계셔서 그들이 돌아가는 길도 보호해 주시고 성전 짓는 일도 도우시기를 바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예루살렘에 계시며 거기서 섬김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4) 이 포로생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또 그가 어느 곳에 살고 있든지, 그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금과 은도 주고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과 타고 갈 짐승도 주고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바칠 자원제물도 주어서 그들이 영광스럽게 떠나가도록 도와주어라.'
라 1:7-11 / [성전 기구들을 되돌려주다] 이때에 바사 왕 고레스가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들도 돌려주었는데 그것은 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약탈해다가 자기 신전의 보물 창고에 보관하였던 거룩한 물건들이다. 8) 그때에 바사 왕 고레스는 그것들을 모두 자기의 재무장관인 미드르닷에게 넘겨주고 미드르닷은 그 물건을 유다 백성의 지도자인 세스바살에게 모두 정확하게 세어서 넘겨주었다. 9) 그 명세서에는 특별히 다음과 같은 물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금대접 30개, 은대접 1000개, 분향 접시 29개, 10) 금잔 30개, 깨진 은잔 410개, 그밖에 다른 기물 1,000개. 11)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들은 모두 5,400개였다. 유다 백성의 지도자 세스바살이 석방된 동족들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데리고 올 때에 그 모든 물건을 함께 가지고 왔다.
참고 : 많은 역사 비평가들은 이런 성경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비웃었다. 당시에 강대국이 나라를 정복하고 포로된 자들을 풀어주고, 그들의 성전을 짓기 위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하지만 고레스의 원통이 발견된 이후 비평가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레스의 칙령으로도 유명한 원통에는 고레스가 어떻게 바벨론의 도시를 저항 없이 취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있다(사 45:1-3). 또 그와 함께, 외국 포로에 대한 자유와 사회적 신분을 바로 잡아 주고 그들을 고국 땅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기록해 놓았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왕 고레스(키루스 2세)는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보내고 그것은 BC 7세기에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였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어떻게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을 예언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이 왕이 되어 어떤 일을 할지? 특히 그가 당시에 가장 강한 나라를 누르고 지역을 통치하게 될지? 또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고 손해가 되는 즉 자신의 종으로 삼은 백성을 해방시키는 일을 할 것인지를 알 수 있었을까?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함께 이 세상의 통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예언이다. 무엇을 더 증명해야 하나님을 찬양하겠는가?
▶ 웹스터 사전을 보면 ‘찬양하라’는 말은 ‘칭찬하다, 찬미하다, 존경하다, 갈채를 보내다, 인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찬양한다’는 말은 어떤 사건을 인정하고 확고히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인정한다는 말은 우리가 승인한 바를 받아들이고 공감한다는 말이다.
고통과 환난과 질병과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위하여 준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받아들이자.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요, 나의 하루하루 모든 삶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이다.
♬ 조은아 사, 신상우 곡 ‘하나님의 은혜’라는 성가곡이 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후렴]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 은혜 / 나 주저함 없이 이 땅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은혜
■ 권길중 박사는 세계 100대 조형건축가로 선정이 된 인물이다. 그런데 한참 인정받을 시기에 식도암에 걸렸다.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 없다보니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야위어 갔다. 코에 호스를 끼워 죽을 공급받으며 생명을 유지하였다. 의사는 살 소망이 없으니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죽어 가는 자신이 비참했다. 병상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생에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산 것이 무엇인가? 과연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는가? 박사학위까지 주셨는데 하나님 앞에 보답하는 삶을 살았는가?” 돌이켜 보니 자신의 예술과 명예만을 위해 살았으며, 하나님 앞에 죄만 지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연변 과학기술대학 총장 김진경 박사의 간증 테이프를 들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압니까?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구심점에 두고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다면 연변 과학기술대학으로 오십시오. 중국의 젊은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들의 장래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될 수 있다.” 도전과 초청의 설교였다. 그는 설교를 들으며 가슴을 후벼 내는듯한 아픔을 느꼈다. “하나님, 제가 진작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병든 몸이 되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갑고 메말랐던 손이 따뜻해졌다. 몸에 온기가 돌고 무언가 자신을 감싸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호스를 빼어버리고 죽을 먹기 시작했다. 며칠 후 의사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다. 기적이 일어났다며 연구해보자고 했다.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해지자 그는 부인과 함께 연변으로 갔다. 그리고 연변 과학기술대학 건축과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남은 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할 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날마다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평생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리라 결단하였더니 하나님이 책임져주신 것이다.
■ 테너 배재철 집사는 유럽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던 성악계 기대주였다. 독일 자르란트 주립극장에 주역가수로 발탁된 2005년 비극이 찾아왔다. 갑상선암을 선고받은 것이다. 갑상선암 적출 수술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넓게 펴져있어 결국 성대신경까지 절단해야 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목소리를 잃은 것이다. 식구들의 걱정과 근심이 컸지만 그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면서 신앙이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하였다. 얼마 후 일본에서 성대복원 수술을 받았다. 이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2008년 12월 도쿄에서 재기 콘서트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중요한 무대로 부르셨다. 전도 목적으로 열린 ‘요코하마 러브 소나타’ 집회였다. 6천명이 참석한 무대에 섰을 때 그는 전율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집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간절히 찬양을 불렀다. 그가 부른 곡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이었다. 그는 찬양을 하면서 스스로 ‘장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노래할 수 있다니 힘을 내자!’라며 목소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통해 나의 목소리를 바꾸신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바꾸셨다. 이전까지는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목표였고 열심히 했기에 재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소리를 잃은 후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어느 무대에서든 설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다시 노래할 이유를 찾은 것이다.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 것이다. 목소리가 언제 완전히 회복될지 모르지만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는 명성과 찬사로 인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으로 인한 것이다.”
2. 여호와만 바라라(3-5절)
시 146:3-5 /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고 하신다. 귀인이라고 하면 지도자, 고관, 귀족, 방백을 의미한다. 권력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들은 우리에게 약간의 도움은 되지만 진정한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면 그날로 즉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모든 인격과 성품과 생각도 소멸한다. 인생이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사람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베풀 수가 없다. 누구의 말대로 인생은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입원하였다거나 돌아갔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였고, 사업을 잘 하고, 건강하여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도 잠시 동안이요, 모든 소유와 가진 능력을 내려놓고 가야 한다. 요즈음에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그렇게 강하게 보였던 옆사람이 코로나19로 죽어나가고, 백신을 맞고 건강하던 학생이 부모 앞에서 죽어나가고 …. 병원이나 질병관리청에서는 밝히 설명조차 해주지 않고 ….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조차 ‘하나님! 이 재앙을 언제 물리쳐 주시려나이까? 코로나19야 물러가라!’고 외치지만 코로나19는 끔쩍도 하지 않는다.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과 계획과 능력이 다 소멸하게 되어 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야 철이 들고, 자기를 의지하는 것이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물론 욥은 고난을 통하여 깨달았지만 …… .
▶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Theodor Jaspers)의 말을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인간은 이성만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의 능력에 대하여 생각했다. ‘인간이 어떻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어떻게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어떻게 불안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전쟁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그는 마침내 인간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빠져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야 비로소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야스퍼스는 말년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 인생을 마쳤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 5절에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시편 기자는 강조했던 것이다. 이 말씀을 암송하면서 깊이 묵상하고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겠다.
▶ 기독교의 영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케네스 리치라는 영성신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기독교의 영성은 그리스도께서 주도권을 잡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의 과정이며,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동행이며, 그리스도와의 죽으심과 부활을 공유하는 것이라.” 이론적으로 볼지라도 완벽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하나하나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영성의 목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참된 영성을 소유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우리의 영안을 열러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고, 우리의 귀를 예민하게 세우면서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 것을 버림과 더불어 하나님과의 깊은 묵상 교재를 생활화해야 한다.
5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을 히브리 성경을 직역하면 ‘복되도다! 그의 도움이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소망이 여호와 자기 하나님께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믿어야 할 분이 누구라고 하셨는가? 왜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을까? 야곱이란 사람은 꾀가 많은 사람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노력으로 잘 살려고 한 사람이었다. 형의 굶주림을 이용하여 장자권을 요구하였고, 축복을 받기 위하여 눈먼 아버지를 속였고,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는 형님도 안중에 없었다. ‘하나님의 축복도 내가 받아야 하고,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 내려오는 가문의 축복도 내가 차지하고, 내가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형님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갈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다. 금의환향하여 야곱이 외삼촌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그가 속인 형 에서가 400명의 사람을 이끌고 자기를 치기 위해 온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 앞에 완전히 엎드렸다.
얍복 강변에 엎드려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였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몰아가시는 것을 본다.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외삼촌 집으로 갈 때는 빈손 들고 간 사람이지만,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4명의 부인과 12명의 자녀들과 소와 양과 염소가 떼를 이루고 돌아왔다. 형 에서와의 문제도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해결되었다.
우리도 ‘나의 도움과 나의 소망은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자. 항상 사모하는 열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에녹과 같이 하나님 목전에서 살아가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 어떤 사람이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인가? 누가 복을 받을 사람인가?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우리도 믿음으로 고백하였으면 좋겠다.
▶ 올브라이트(W. F. Albright)라고 하는 유명한 구약신학자가 있다. 이분은 이스라엘을 지정학적으로 설명했다. 왜 하나님이 선택한 선민 이스라엘 나라를 3개 대륙의 연결 지점에 두신 것일까? 위에는 앗수르와 시리아가 있고, 오른쪽에는 바벨론이 있고, 밑에는 애굽이 있고, 왼쪽으로는 블레셋과 바다가 있고해서 사방으로 다 적에 의해서 포위되게 하셨다. 왜 이런 곳에 당신의 백성을 두신 것일까? 이는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오히려 당신의 백성을 삼아 세상을 비취는 빛이 되게 하려는 것이며, 선민으로 삼아 이들로 세계만민에게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세상에 잘 사는 것이 소망일까? 이 세상에서 권력을 누려보는 것이 소망일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인자하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
■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척 콜슨’은 자신의 감옥생활 경험을 중심으로 ‘본 어게인(Born Again)’이란 책을 썼다. 그는 교도소에서 나와 교도소 선교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는 죄수들 사이에 세 가지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❶ 희망이 없는 죄수로 자기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자신의 몸을 해치는 사람들이었다. ❷ 역시 가망이 없는 죄수들로 자기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❸ 교도소에서 나갈 날을 기다리며 기회 있을 때마다 마당에 나가 운동을 하는 유형이었다. 그들은 감방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마치 내일 나갈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설령 몸은 갇혀 있지만 마음은 밖에 나가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의 삶은 자유롭다. 소망을 품은 사람은 희망이 넘칩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비관주의자들은 빛 가운데서도 어둠을 보고 있다. 반면 하나님으로 소망을 삼는 성도는 오늘의 고난을 내일의 희망을 맞이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렘 29:11 / 너희가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너희를 향한 나의 계획은 언제나 평화이지 결코 재앙이 아니다. 너희가 지금 갈망하는 것과 같이, 너희에게 밝은 미래를 열어 주는 것이 나의 계획이다. 이것도 내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 내일을 주셨고, 희망 곧 소망이 되어주셨다.
■ 유태인으로서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정신분석학자 빅토르 프랭클(Viktor Frankl) 박사는 나치 독일의 처참한 유태인 수용소에 대한 관찰한 기록으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이란 저서를 남겼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치 수용소에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고문과 무서운 형벌과 비인간적인 학대 속에서 나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희망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수용소에 있는 인간상을 이렇게 구분하였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곧 쇠약해졌다. 희망을 끝까지 가진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자기 혼자서 희망을 이룰 뿐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이웃들을 도와주고 희망을 계속 갖도록 격려하던 사람이 몸도 마음도 가장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라고 했다. 절망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영원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에 있다.
■ 영국 런던 케이 미술관에 프레드릭 왓츠(G. Frederic Watts)의 명화가 전시되어 있다. 작품의 이름은 소망(Hope)이다. 이 그림을 보면 둥그런 지구 위에 약하게 보이는 소녀가 남루한 옷을 입고 앉아 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눈을 수건으로 싸매고 있는 소경이다. 그리고 소녀의 손에는 낡은 하프가 들려져 있는데 여섯 줄은 끊어지고 단 한 줄만 남아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는 남은 한 줄에 소망을 가지고 하프를 연주를 하고 있다. 하나의 줄 밖에 없으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소녀의 뒤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별 하나가 희미하게 비취고 있는데 소망의 빛을 뜻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남북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물질의 줄도 끊어지고, 믿었던 사람과의 줄도 끊어짐으로 소망이 끊어진 것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도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줄이 있다면 남은 인생을 얼마든지 노래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줄을 붙잡으시기 바란다.
▣ 결론
시 146:10 / 여호와는 영원토록 임금이시니 시온아, 네 하나님은 오고 오는 세대에도 다스리시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이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은 당신이 직접 그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고 대대로 통치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형통하지만,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면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어 있다.
어거스틴이 고백록에서 “당신이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까지는 평안할 수 없다.”라고 고백한다.
어거스틴의 말은 정확한 말이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망하고 절망할 수 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친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비로소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다.
■ 어떤 사람이 무덤에서 묘비를 바라본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 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픽하고 웃었다. 두 번째 줄에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곳에 서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 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진지해져서 세 번째 줄을 읽었다.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나 하시오!” 할 일은 많은데 세월이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간다.
삶의 목적을 알고 살아야 한다. 허락받은 시간인 평생에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이것이 지음을 받은 목적이다.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의 남은 생애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찬양으로 남은 생애를 채웁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자.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둡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억눌린 사람들, 주린 사람들, 갇힌 사람들, 맹인,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붙들어주십니다.
탈무드에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장소는 사람의 가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슴에 하나님을 모시고 평생에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의 평생에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일까요?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평생에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평생토록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찬송가 93장을 부르며 오늘 하루, 이번 한 주간, 올해,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갑시다. 오늘 찬송을 부르는 사람은 내일도 찬송을 부를 것이며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오늘 찬양이라는 샘에서 찬양을 퍼내는 사람만이 내일도 찬양의 샘은 솟아날 것입니다.
♬ 93. 예수는 나의 힘이요
❶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구주 예수 떠나 살면 죄 중에 빠지리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 이 주 예수
❷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친구 되시니 그 은혜를 간구하면 풍성히 받으리
햇빛과 비를 주시니 추수할 곡식 많도다 귀한 열매 주시는 이 주 예수
❸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기쁨 되시니 그 명령을 준행하여 늘 충성 하겠네
주야로 보호하시며 바른 길 가게 하시니 의지하고 따라갈 이 주 예수
❹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소망 되시니 이 세상을 떠나갈 때 곧 영생 얻으리
한없는 복을 주시고 영원한 기쁨 주시니 나의 생명 나의 기쁨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