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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바꿔치기 대작전
이 홍사
노트북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걸 아무래도 무슨 수를 써야 하겠는데?
홍랑은 노트북을 주물럭거리며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노트북은 두 대인데 두 대다가 말썽이었다. 하루는 큰 노트북을 쓰다가 하루는 작은 노트북을 썼는데 두 대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두 대를 장점만 골라서 하나로 합치면 쓸 만한데 그럴 수가 없는 노릇이다.
노트북은 아직 비교적 새것이었다. 큰 노트북은 자판 오른쪽에 숫자판이 따로 있는 것을 말하는데 모니터가 십오 인치이고, 이것은 삼 년 정도 된 물건이다. 아직 새것이다. 작은 노트북은 우측에 숫자판이 없는 것을 지칭하는데 모니터가 십삼 인치로서 이건 겨우 일 년이 넘었으니 정말 새것이나 다름없다. 이걸 두고 또 노트북을 다시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이 허락하지 않을뿐더러, 바꾸었다가 그걸 알면 마누라가 난리가 난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에 투자한 것이, 마음같이 분양이 되지 않는 바람에 집안에 여윳돈이라고는 씨가 말랐는데 다시 산다면 난리가 날 일이고 홍랑도 노트북을 사는 것보다 있는 노트북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큰 문제인 일이다. 버리자니 아깝기 그지없고, 쓰자니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다.
태풍이 지나가느라고 밖에는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었다.
-이거 어쩌면 좋아?
홍랑의 가슴은 내리는 비와 노트북을 보는 비애로 인해 축축하게 젖고 있었다.
노트북 두 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큰 걸 꽂아서, 테스트하다가 또 작은 걸 꽂아서 테스트를 해보지만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큰 노트북은 언젠가 자판에 커피를 한번 엎지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두어 개가 복구되지 않는다. 누르고 나면 복구가 되되 않으니 그 모음이 계속 찍히게 되는 것이다. 엎지른 커피에 희석된 설탕이 들어가서 엿처럼 끈적하게 달라붙은 현상이 생기는 모양이다. 또 그 노트북은 자판이 손에 익지 않아서 홍랑의 독수리타법으로 사용하려면 자판을 보아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자판을 보고 모니터를 보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반면, 작은 노트북은 자판이 너무 민감하다. 자판이 민감해서 그런지 한참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앞에 쓴 글의 한 부분이 덮어씌우기가 저절로 되고 그걸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엔터키를 두드리면 그 덮어씌우기가 된 부분이 삭제되는 것이다.
쓰고 있던 글 한 부분이 뭉텅 날아간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 경우를 당하면 낭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분명히 이쪽에 커서를 두고 한참 모니터와 자판을 보며 머리에 든 것은 모음과 자음을 조립하여 활자로 만들고 있는데 그렇게 앞부분이 날아가면 뭘 쓰려고 했는지 머릿속에 있던 생각마저 날아가 버린다.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음과 모음을 조립하여, 창작이라는 것을 하는 인간으로서는 그런 낭패가 없다. 또 커서가 어느 순간에 전혀 엉뚱한 곳으로 이동을 해서 한참을 두드리다 보면 전혀 엉뚱한 대목 중간에서 타이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외장 마우스 탓인가 싶어 외장 마우스를 바꾸어 보았지만 마찬가지다.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오고 있다.
이 노트북 두 대를 팔고 중고 노트북 한 대로 바꾸는 방법이 없을까? 홍랑은 고심하다가 교차로나 벼룩시장 같은데 찾으면 그렇게 중고 노트북을 취급하는 곳이 나와 있을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두 대를 팔아서 한 대를 사자!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골목 앞 전신주에 매달린 교차로나 벼룩시장을 찾아야 한다. 그런 곳에는 분명 중고 노트북을 사고, 판다는 광고가 있을 거다.
홍랑은 테스트를 하던 노트북을 버려두고 현관의 우산을 찾아 쓰고 밖으로 나갔다. 빗줄기가 더 거세어졌다. 한데, 교차로가 들어있어야 할 플라스틱 통은 전부가 비어있는 것이었다. 골목을 한 바퀴 다 돌았지만, 모두가 그랬다. 아마도 날씨 때문에 교차로를 넣지 않은 모양이다.
우산은 펼쳐 들고 나갔지만, 빗줄기가 워낙 심해서 바짓가랑이는 흠뻑 젖어버렸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교차로를 대신하는 곳?
가만히 생각하니 지역 포털사이트가 있다. 오래전에 홍랑은 그런 포털사이트가 있다는 걸 알고 가입을 했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중고 노트북이나 컴퓨터를 거래하는 곳을 알 수가 있겠다.
그 생각을 미처 못했군.
책상 위에 어지럽게 늘린 노트북 중에서 작은 노트북을 전원을 연결하여 인터넷 유선을 꽂았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구미 지역이니 구미넷을 한글로 쳤다. 창이 떴다. 구미넷 바로 가기를 클릭한 것이다.
메인화면에는 여러 가지 배너 광고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더니 놀랄 정도로 발전을 했고,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었다.
구미 지역에서 활동하는 네티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곳인 모양이다. 메인화면을 둘러보다가 중고물건 사고팔기 코너로 들어갔다. 그 코너로 들어가니 의류, 가구, 전자제품 등으로 중고도 분류가 되어 있었다. 전자제품, 코너를 클릭해서 찬찬히 살폈다.
있었다!
중고 노트북을 산다는 것이 아니라. 판다는 곳이 있었다. 전화번호도 친절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판다는 곳이면, 혹시 개인이 아니라면 사기도 할 것이다. 전화번호를 메모지에 적고 다른 곳을 더 살폈다.
없다!
그곳 이외에는 다른 곳은 없었다.
일단 전화를 해보자. 그런데 산다고 해야 할지 판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종이컵에 정수기의 뜨거운 물부터 부어서 그다음에 믹스커피를 타느냐, 아니면 커피부터 넣고 물을 붓느냐, 하는 문제인데 면밀하게 관찰하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전자를 택하고 어떤 이는 후자를 선택한다. 버릇이다. 홍랑도 예전에는 커피를 먼저 종이컵에 붓고 물을 따랐는데 그 방법은 현명한 게 아니었다. 결론은 물부터 붓고 커피를 타야지만 물이 많으면 조금 버릴 수가 있고 너무 적으면 조금 더 보충할 수가 있는데 커피부터 먼저 부으면 물 조절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생각하면 아주 하찮은 일인데 커피 맛을 좌우하는 일이다.
노트북을 사고, 파는 일도 마찬가지다.
먼저 사고 난 다음에 팔려고 했다가 안 팔리면 노트북이 세 대가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이것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는 수가 있다. 팔고 난 다음에 산다면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하이마트에 가서 새것으로 마음에 드는 걸 구매하면 된다.
사고, 파는 게 아니라 팔고 사는 것이니 파는 게 중요하다. 일단 파는 게 우선이다.
홍랑은 파는 것으로 결정을 짓고 그 번호로 전화를 했다.
신호가 가니 지체할 틈이 없이 단번에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혹시 노트북을 사는 곳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중고가 두 대 있는데 팔려고 한다고 했더니 왜 파느냐고 이유를 물었다. 고장이 나서 판다고 하면 가격이 내려간다. 홍랑은 얼떨결에 뜻하지 않게 노트북이 하나 생겨서 두 대를 팔고 싶다고 했다.
수화기 건너 상대는 언제 산 노트북이냐고 물었다.
하나는 삼 년이 되었고 하나는 겨우 일 년이 되었다고 하고는 그곳의 위치를 물었더니 봉곡동의 우체국 골목으로 오십 미터만 들어가면 있다고 했다. 홍랑의 집도 봉곡동이다. 우체국 뒤라면 걸어서 겨우 십 분 남짓한 거리다. 간판은 컴퓨터 프라자로 되어있다고 했다. 홍랑이 가끔 우체국에 가는데 그곳에 그런 가게가 있다는 걸 몰랐다.
지금 문이 열려 있느냐고 물었다.
열려 있다고 했다.
바로 가겠다고 하고는 노트북 가방에 두 대의 노트북을 한꺼번에 집어넣었다. 거기에 따른 충전기도 챙겼다.
노트북이 두 대를 소유하게 된 이유가 있다.
작년에 한 현장에 도급 공사를 받았는데 근 한 달을 중기가 일해야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도급 금액은 상당하다. 현장소장이 가설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노트북을 보니 아주 구형이었다.
소장과 커피를 마시며 공정에 관해 얘기하다가 노트북을 보고 여태 이런 노트북을 쓰느냐면서 핀잔을 주고, 업무용이니 사장한테 하나를 새로 바꾸어 달라고 하라고 농담을 했다.
-얼마나 깐깐한 양반인데요. 절대로 바꿔주지 않습니다. 사장님께서 하나 사 주세요.
-노트북을요?
-도급 금액이 얼마인데? 현장에 그런 거 하나 적선해도 되죠.
듣고 보니 노트북을 사 달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알았습니다. 하나 사 드리죠.
-고맙습니다. 가능하면 가벼운 것으로 사 주세요.
그렇게 약조가 되어 버렸다. 소장의 입김에 공사가 좀 쉽게 풀리면 노트북값은 쉽게 빠지는 현장이다.
그래서 하이마트로 가서 그날 바로 노트북을 샀다. 하이마트는 단골이라 노트북을 파는 직원이 홍랑과 안면이 있다. 그래서 한글과 엑셀을 무료로 깔아주는 것이다. 엑셀과 한글 최신버전 2010을 깔아서 소장에게 전해주라고 기사에게 일렀다. 그리고 홍랑은 다른 현장에 갔다가 사흘 후에 그 현장에 들러 노트북을 잘 쓰고 있는지 확인을 해보았더니 현장소장은 고물이 다 된 헌 노트북을 쓰고 있었다.
홍랑은 새것은 어떻게 하고 그것을 가지고 청승을 떠느냐고 물으니 숫자판이 없어 굉장히 불편해서 쓰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홍랑은 무릎을 쳤다.
가볍고 작은 것만 생각했지 오른편에 숫자판이 없는 것은 현장에서 숫자를 많이 쓰는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불편할 거다. 미처 그 생각을 못 한 것이었다.
-이건 내가 쓰고 다시 하나 사 드리죠.
굉장히 미안했다. 노트북에 들어있는 서류와 도면을 외장 하드로 옮기고 포맷을 하고는 홍랑이 들고 나왔다. 그리곤 바로 하이마트로 달려갔다. 노트북 중에서 외장 키보드와 자판이 같이 생겨 먹은 걸 구매했다. 그게 소장의 손에 익은 모양이다. 또 숫자를 많이 쓰는 분야이니 그게 절실하겠다.
숫자판이 따로 있는 큰 노트북은 가격은 작은 노트북보다 저렴했다. 그 노트북에 한글과 엑셀을 깔아달라고 하니 하이마트 직원은 며칠 전에 노트북을 사지 않았냐고 물으며 아는 척을 했다.
그럴 사정이 있다고 하며 사서 소장에게 전해주고 나니 홍랑에게는 뜻하지 않게 노트북 하나가 생겼다.
그렇게 노트북이 두 대가 되었는데 이젠 처치 곤란의 흉물로 둔갑한 것이다.
아무튼, 노트북을 먼저 팔고 그곳에 마땅한 것이 있으면 사고, 아니다 그곳에서는 사지 못한다. 뜻하지 않게 노트북이 하나 생겨서 판다고 핑계를 댔으니 그곳에서는 사지 못한다.
밖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비가 와서 빨리 날이 어두워지는 모양이다. 걸어서 가도 되지만 팔고 나면 바로 하이마트를 가서 새것을 알아보려고 차를 끌고 나섰다. 한데. 우체국에서 오십 미터만 들어가면 있다고 했는데 없었다. 골목으로 거의 이백 미터는 들어갔지 싶은데,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홍랑은 다시 전화를 때렸다. 위치를 말했더니 돌아서 나오면, 편의점과 우체국 사이에 있다고 했다.
차를 돌려서 찾아냈다. 한데 가게에 불은 켜져 있는데 문이 잠겨 있는 것이다. 비는 억수로 내리고, 컴퓨터 가게 잎에 차를 세우고 가게 앞 처마에서 다시 전화했다.
직원들이 저녁을 먹으러 나간 모양이라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직원들을 두었다면 규모가 제법 큰 가게인 모양인데 홍랑은 그곳에 컴퓨터 가게가 있는 걸 왜 몰랐을까? 노트북이 든 가방을 가게 앞에 놓고 안내에 물어서 지산동 하이마트로 전화를 넣었다. 저녁 여덟 시 반까지 영업한다고 했다.
이제 여섯 시이니 시간은 넉넉하다.
비가 너무 내려서 다시 차에 탈 엄두가 나지 않고 그냥 가게 처마에 서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컴퓨터가 게 사장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직원들이 저녁을 먹는 중인데 십 분 정도 걸린 거라고 했다. 홍랑은 상관없다면서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비가 너무 온다,
쓸데없는 비다. 농사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아주 앳된 총각이 우산을 쓰고 나타났다. 홍랑에게 오래 기다리셨죠? 하며 인사를 했다. 직원인 모양이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분해된 컴퓨터와 모니터 등으로 어지럽게 늘려있었다. 노트북도 여러 대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얼른 보기에도 홍랑이 가져간 노트북보다 구형으로 보였다.
홍랑은 가방에서 노트북 두 대를 꺼냈다. 앳된 총각은 노트북을 펼쳐서 켜고 사양과 외관의 사진을 찍어서 어디론가 전송했다. 아마도 사장이라는 작자에게 보고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노트북의 가격이 나왔다. 산 가격의 일 할 정도의 가격이 책정되었다. 저희 사장과 카톡으로 주고받은 가격이 그렇게 형성된 모양이다. 산 지가 오래된 큰 노트북이 가격이 더 나왔다.
-이게 더 새것인데 왜 그래요?
작은 노트북은 자판 때문에 찾는 사람이 드물다는 설명이었다. 빨리 팔고 노트북을 사러 가야 하는 일이라 마음이 바빴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 작업을 하려면 노트북이 필요한 것이다. 너무 헐값에 처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저희도 팔아서 이문을 남겨야 하는 일이기에 그 정도의 가격이 나온 것이다.
-너무 싸게 파는 것이 아닌가?
-적정가격입니다. 더 주고는 구매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그 가격에 하고 가게 출입구 부근에 쌓여있는 A4용지를 한 통 덤으로 달라고 했다. 앳된 직원은 곤란하다고 했다. 납품할 물건이라고 했다. 그럼 두 뭉치만 달라고 하고는 홍랑의 손으로 박스를 열어 두 뭉치를 노트북을 담아간 가방에 넣었다.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았다. 흥정이란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다. 직원이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장물이 아닌가 싶어 확인해 두려는 모양이다. 복사를 뜬 신분증을 받고 점원의 요구대로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
상황 끝!
빨리 하이마트로 가야 하는 일이다.
문을 닫기 전에 노트북을 사고 가방에 든 외장 하드에 옮겨놓는 내 문서와 사진을 옮겨야 하는 일이다. 엑셀은 쓰지 않으니 깔 필요가 없고 한글 2010 파일을 깔아달라고 해야 할 일이다.
지산동 하이마트로 갔는데, 얼레? 캄캄한 빈 점포다. 어디로 이사를 간 모양이다. 좀 전에 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 옛날 점포 앞이라고 했더니 신평동 방면으로 오백 미터를 내려오면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하이마트에 점포를 이전한다고 붙여놓은 현수막이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유턴해서 오백 미터쯤 내려가니 이 층 건물을 새로운 매장을 열어놓았다. 주차를 시키는데 중고 노트북을 판 가게 주인이 전화가 왔다. 입금했다는 내용이다. 홍랑은 알았다면서 그 노트북에 있는 문서가 유출되지 않게 포맷을 하라고 했다. 상대는 중고를 사면 바로 포맷을 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이마트의 컴퓨터 담당은 얼굴을 알고 있다.
반갑게 맞아주었다.
진열된 노트북을 살폈다.
이건 크기는 마음에 드는데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고 가격이 마음에 드는 건 이름 있는 메이커가 아니고, 또 갈등해야만 했다.
자판 우측에 숫자가 없는 노트북 중에서 저렴하게 살 수가 없느냐고 물으니 전시상품이라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마음에 든다고 찍은 모델 중에서, 지금 전시된 이 상품보다 조금 전에 나온 모델인데 전시상품은 남아 있을 거라고 했다. 전시상품을 사면 십 퍼센트 정도가 싸다. 그것도 단골에게만 한다는 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홍랑은 그게 좋겠다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컴퓨터 담당은 전산을 두드려보더니 이 매장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하루를 기다리란 말인가요?
-아닙니다. 강 건너 매장에 있을 겁니다. 오토바이 퀵으로 받으면 됩니다.
노트북 담당 직원은 다른 매장으로 전화를 하는 동안 홍랑은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서 마시고 있었다. 전화로 확인한 컴퓨터 담당 직원이 오더니 강 건너 매장에 있다면서 퀵으로 탁송 받으면 삼십 분 정도가 소요된다며, 이 층에 올라가시면 전시용 안마의자가 있으니 안마를 받으며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삼십 분 그거야 기다리지, 잘된 일이다.
일단, 홍랑은 매장 밖으로 나와 처마 밑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무슨 가을비가 이렇게 내려?
날씨 탓인지, 노트북 때문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몸이 착 가라앉으며 뻐근했다. 노트북 때문에 어지간히 열이 올랐는데 해결이 된 것이다. 먼저 팔고 사는 게 완벽히 해결된 것이다. 사는 것보다 파는 게 중요했다. 사기는 쉬워도 파는 게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종이컵에 커피를 먼저 붓느냐, 물을 먼저 따르느냐 하는 문제인데 물을 먼저 따랐으니 커피 맛을 적절하게 조정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의외로 쉽게 이상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고 있다. 가방에 있는, 문서를 옮겨 담은 외장 하드만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완벽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결재는 예전의 포인트가 남아 있어서 그 할인된 노트북 가격에서 이 퍼센트가 더 할인된다는 얘기를 들으며 카드를 긁었다. 삼 개월 할부! 결재를 마쳤다. 계산을 해보니 골초인 홍랑의 하루에 담뱃값 정도가 빠져나가는 셈이다. 그것도 석 달 동안만.
진즉에 이렇게 마음먹을 걸 괜히 열을 냈군.
강 건너에서 퀵으로 온다고 해도 삼십 분은 족히 걸리겠지.
홍랑은 매장 이 층으로 올라갔다. 새로 옮긴 매장이라 깔끔했고 이 층에는 냉장고와 세탁기 등. 비교적 덩치가 큰 가전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가의 안마의자가 있어서 이 층을 담당하는 직원이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홍랑은 신발을 벗고 안마의자에 앉았다.
앉은 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누웠다.
노트북 덕분에 이런 호강을 하는군!
안마의자는 자동으로 몸 구석구석을 자극하며 뭉친 부위를 풀어주었다. 목덜미부터 종아리까지. 홍랑은 안마받는 걸 싫어한다. 해외여행을 패키지로 따라가면 항상 안마를 받는 코스가 들어있다. 남의 손길이 왠지 부담스럽다. 특히나 젊은 여자가 몸을 만지면 어지간히 싫다. 돈 몇 푼 때문에 이렇게 남의 남정네 몸을 주물러야 하는 젊은 아가씨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남의 손길이 닿는 걸 홍랑은 유독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안마의자는 괜찮다. 그런 심리적인 부담이 없어서인지 편안했다. 전자동 시스템을 눌렀더니 목덜미부터 종아리까지 죄었다 풀어주곤 했다. 시원하다.
눈을 감았다.
모든 게 제대로 풀려간다.
노트북이 도착하면 한글과 몇 가지 프로그램을 깔고 외장 하드에 있는 문서와 사진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안마의자는 안락했다. 시간은 홍랑을 두고 저 혼자 흘러갔다.
해외여행을 가서 안마를 받다 보면 커튼 너머에서 안마를 받던 사람이 코를 고는 소리를 가끔 들을 수가 있는데 이렇게 편안해서 쉽게 잠이 드는 모양이군.
홍랑은 왜 남의 손길이 그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질까?
미얀마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한국의 지인들을 만난다. 골프를 치러 가자고 하거나 안마를 받으러 가자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홍랑은 두 곳 다 손을 내젓는다.
골프는, 투자 초기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따라 나갔으나 투자가 확대되고 투자금을 한국에서 빚을 내서 나가고부터 골프를 끊었다. 골프를 치는 비용은 한국의 삼 할 정도면 충분하다. 골프가 아무리 싸다지만 단 한 푼이라도 한국의 빚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편하게 골프를 칠 수가 없었다. 미얀마 로컬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골프비용은 자신이 대겠다면 나가자고 해도 정중히 사양했다. 그래서 두 세트가 되는 골프채가 든 가방을 한국으로 가져다 놓고 절대로 나가지 않는다.
미얀마에는 백십 년이 넘은 골프장이 있다. 골프의 역사로 따지면 한국보다 빠르다. 그 옛날 영국령에 있을 적에 영국군들이 들어와서 만든 골프장인데 자금은 양곤시청에서 운영하며 양곤 시내에 있다. 십팔 홀인데 땅값으로 따지자면 천문학적인 숫자일 것이다. 그 외에도 양곤 시내에 골프장이 서너 곳이 더 있다. 땅값이 뉴욕보다 더 비싸다는 양곤 시내에 그렇게 넓은 골프장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홍랑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저 비싼 땅에 골프장을 운영할 수가 있지?
그게 불가사의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삼각함수였다.
골프뿐만이 아니라 안마도 동남아 어느 나라보다 싸다. 그러나 남의 손길이 싫어서 안마를 가자고 하면 손부터 내젓는다.
이런 자동 안마의자를 들여가서 영업하면 어떨까?
홍랑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장사가 될까?
아서라! 마무리공사를 하는 집을 팔 생각부터 해야지. 그런 푼돈 벌이는 누가 해도 이미 하고 있을 것이다.
눈을 감고 느긋하게 안마를 받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노트북이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이 층 직원들이 들고 있던 무전기로 연락을 받은 모양이다.
홍랑은 냉큼 일어나 신발을 찾아 신었다. 편안하고 안락해서 그랬는지 삼십 분은 금방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컴퓨터 담당 직원이 비닐로 싼 포장을 풀고 있었다. 오토바이 탁송에 비를 맞을까 봐 어지간히 야무지게 포장을 했다. 노트북을 꺼냈는데 의외로 흰색이었다. 잘된 일이다. 처음에는 회색이라고 했었는데 도착한 것은 흰색이었다. 아내는 감쪽같이 속을 것이다.
-어라? 회색이 아니라 흰색이네요. 상관없죠?
컴퓨터 담당 직원이 홍랑을 돌아보며 물었다. 잘된 일이다. 아내가 감쪽같이 속을 것이다.
-오히려 잘 되었죠. 한글 2010을 깔아주세요.
-한글 2018이 최신 버전으로 나왔는데 그걸 써보시는 게 어때요?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한번 써보지요.
한글 2018은 디스크를 넣어 까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다운을 받는 모양이다. 무선 인터넷을 연결하고 직원이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고 인증번호를 받고 금세 깔았다. 다음은 홍랑의 가방에 든 외장 하드를 내밀었다.
그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묻는 것이다. 하이마트라고 할 수는 없었다. 노트북을 바꾼다고 하면 더더욱 안 된다. 친구들을 만나서 저녁을 먹고 있다고 둘러댔다. 그럼 저녁을 안 차려도 되겠네?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을 안 차리는 게 그렇게 좋은가?
오늘 저녁은, 아무래도 꼼짝없이 굶게 생겼군!
그래도 마음은 가벼웠다. 아내에게 노트북을 바꾸었다고 말하면 생트집을 잡을 게 뻔하다. 같은 흰색이니 감쪽같이 속을 것이다.
한글을 깔고 외장 하드의 문서를 옮겨 담으니 모든 게 끝이었다. 무선 마우스랑 노트북 가방, 등 홍랑에게 필요 없는 물건은 컴퓨터 담당 직원에게 줘버리고,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노트북과 외장 하드만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억수로 오는 비를 뚫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한글 2018이 어떤가?
노트북을 연결하고 글자 크기와 글꼴을 조정하고 그것부터 살폈다.
어라?
비문非文까지 잡아주는 것이다. 문장이 안되는 글에는 붉은색으로 밑줄을 치는 것이었다. 띄어쓰기가 잘못되거나 오타가 있는 경우 붉은색으로 밑줄을 표시하던 2010과는 달리 업그레이드되어 문장이 안 안되는 비문까지 잡아주니,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한글의 버전은 발전을 거듭한다. 여태 쓴 글도 2018이 깔렸으니 퇴고를 하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글 한 편을 다시 보니 고칠 부분이 엄청 많다. 자판을 두드리니 손가락에 닿는 촉감이 엄청 좋다. 일단 마음에 든다. 내일 새벽이 즐겁겠다. 홍랑은 새벽 세 시나 네 시쯤 일어나서 두세 시간 글을 쓰다가 아침을 먹고 일하러 나가는 게 일상이다.
일단 퇴고는 내일 새벽으로 미루고 바탕화면부터 깔아야 한다.
어떤 그림이 무난할까?
바탕화면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그림이나 사진이어야 한다. 인터넷 바탕화면을 치고 들어가서 사진을 고르고 있을 때 갑자기 사무실 불이 꺼졌다.
-누구고?
홍랑의 집은 삼 층이고 사무실은 이 층이다. 삼 층에서 누가 내려오다가 빈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으니 불을 끈 모양이다. 스위치는 바로 문 옆에 달려있고 사무실에 칸막이를 설치해서 홍랑이 쓰는 방, 경리부장인 여동생은 사장실이라고 하고 홍랑은 흡연실이라고 부르는 방을 순전히 담배 때문에 만들었었다, 아무튼, 홍랑의 방에 있으면 사무실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조다.
그렇게 고함을 질렀더니 다시 불이 켜지고 아내가 들어왔다.
-뭐 하세요?
-아! 생각나는 게 있어서 정리 뭐 좀 하느라고......
얼버무렸다.
아내는 문단속하러 내려왔었는지 별말이 없이 사무실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가 물통에 물을 받아 사무실과 홍랑의 방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도 홍랑이 노트북을 바꿨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성공이다.
노트북 바꿔치기 작전에 성공이다. 대작전의 대성공이다.
메인화면에 바탕화면으로 깔 사진이나 그림은 싫증이 나지 않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욕심이 사라지는 것이라야 한다. 카페에 있을 적에는 좋아 보여도 막상 바탕화면에 깔고 보니 깨지는 그림도 있고 확대하니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태반이었다.
여러 컷의 사진과 그림을 깔아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깔았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쓰던 글을 클릭해서 보니 비문이 참 많았다. 문장 밑에 붉은 선이 많이 그어져 있다는 얘기다. 그걸 새로 찬찬히 읽어가며 고쳤다.
자판의 촉감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오늘은 골칫거리인 숙제를 하나 깔끔하게 해결한 셈이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한다.
노트북을 종료시키고 사무실 문단속을 하고 삼 층 집으로 올라갔다.
-저녁 먹어야죠?
아내의 말에, 친구들과 먹었다고 했잖아? 홍랑은 능청을 떨었다.
-하이마트에서 노트북을 바꾸면서 무슨 친구들을 들먹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홍랑은 전율했다.
-뭐야? 당신이 어떻게 알았어?
-핸드폰 두었다가 뭣해요?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결재했으니 아내의 핸드폰에 결재 내용이 문자메시지로 뜬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멀쩡한 노트북을 바꿨는데 왜 잔소리를 안 하는 거야?
홍랑은 이상하다는 투로 물었다.
-바꿀 이유가 있었으니 바꾸었겠죠. 술값으로 탕진한 것도 아니고 무슨 잔소리를 해요? 좋은 글이나 많이 쓰세요.
아내는 식탁에 저녁을 차리면서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홍랑은 그 말을 듣고 고민했다.
이걸 두고 노트북 바꿔치기 대작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깔끔하게 작전은 완료되었다.
대작전이 아니어서 스릴을 만끽하지 못해도 좋다.
이젠 노트북 자판에 커피를 엎지르는 걸 조심해야지.
내일부터는 새벽에 짜증스러운 일이 없고 새벽이 즐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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