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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고린도전서 4:1~5)]
2023년 11월 5일 주일연합예배(설교 : 김성현 감독)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린도전서 5:1~5)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천국에 가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은 자들입니다. 그것도 충분히 설명을 듣고 또 충분히 어떤 인도를 받고 그 개념을 여러 각도로 소개받고 마음을 정한 자들입니다. 결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기로 한 자들입니다. ‘무리수’라고 하죠? 그 끝이 없는 무리수처럼, 끝이 없는 그 끝으로 우리는 달려가고 있습니다. 일단 그곳으로 접어들면 그것으로 끝일 것입니다. 영원히 기쁘고 밝은 그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도 우리는 반응하는 자로서 그분께 마땅한 반응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에 대한 문제를 그가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께서 99.9999%를 해결해 주셨고 우리는 어떤 그 구실에 불과한 정말 0.0000몇퍼센트의 표현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 나 진짜 무능합니다. 매일 자꾸 넘어지려고 합니다. 날 붙잡아주시고 힘주시고 이끌어주시옵소서.” 이 정도만 해도 천국에 능히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하나님께서 굉장히 귀하게 여길 것 같습니다. 인간은 그것도 못합니다. 인간은 평소에 순수함이 더하여지는 일과 덜하여지는 일 중간에 있다 합시다. 그럼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데 굳이 마이너스 쪽으로 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셨을 때에 어떠셨을까요? 성경 보면, 그가 처음 천사들을 만났을 때 그는 그들이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천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이 누군지 안다고는 성경에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창세기 부분입니다. 성경을 잘 봐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착한 사람이라 그를 잘 영접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먼 길을 오셔서….’ 하며 그들을 잘 영접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가장 먼저 갖고 있어야 하는 그 의를 갖고 있는 자입니다. 굉장히 선한 자입니다. 야비하지 않고,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사람이고, 진실합니다.
그가 진실하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나도 안 하는 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안 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약점이 있습니다. 그가 진실하다는 것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선한 자, 그와 같이 그래도 하늘을 향해 진정한 겸손이 있는 자, 하늘을 도전하지 않는 자, 자기 위치에서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비방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자를 기준으로 하셨습니다. ‘다 망가진 이 세상에서 어차피 내게 용납될 자가 없다.’ 하고 아셨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메시지를 대하면서 그나마 은혜주신 하나님께 못된 몸뚱어리를 가지고 그래도 찬양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념하고, 하나님을 영광되게 함으로써 천국에 대한 소망이라도 굳게 하는 자, 이런 자를 찾으실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자였는지를 생각하며 연구해 보면,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에 되지도 않는 것을 돋보기를 놓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실제적으로 적용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신앙의 모든 것은 자세의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해 다가오실 때에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되는 모든 사회적 연결고리가 무엇이 됐든 굉장히 사모하고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주께서 구원하신 십자가의 공로만을 알고 있을뿐 하나님께 대단히 무례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하나님과 엄청나게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잘못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영광스러운 나라로 가는 꿈을 꾸고 있다는 그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완전히 밑바닥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로케트처럼 어떻게 올라가 보려고 애를 쓰는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도무지 건방지다고 생각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보이지 않아야 됩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은 이 사회가 우리 각인을 어떻게 보고 있던지 상관없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하나님께 대해 자세만이라도 맞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어떻게 됩니까? 신앙인생,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이 세상 많은 교회들도 그렇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하나의 도우미로 삼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도 계속 자기 갈 길을 갑니다. ‘하나님은 나의 도움, 내 가는 길의 도움이라.’ 하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예수 믿고도 여전히 자기 인생을 가고 있습니다. 자기 길 가는 중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를 하나 더 갖게 된 것뿐입니다.
사실 세상의 많은 교회가 교인이 너무 없으면 교회 살림이 안되기 때문에 교인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참으로 여러분에게 천국을 보여주고 싶고, 주님의 마음과 여러분을 자꾸 연결하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우리 교인들이 주님을 한 번 만나고 나서 인생을 바꾼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좁은 문으로 기어서라도 들어가는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 믿은 다음부터 우리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이 여기를 기준으로 해서 가야 됩니다. 세상 삶 더하기 신앙의 삶, ‘ok. 다 갖췄다.’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위해서 신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은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삶, 주님이 주신 삶, 생명에 대해 애착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교회에서 엄청나게 이루어 놓은 것들이 많지만, 대단히 부족한 면도 있습니다. 빨리 달리다 보니 미처 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장에 싸우러 나가는데 너무 급하다 보니 맨발로 나가 있는 그런 경우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시작하면 인생이 정말 하나님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 2~3세기처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때에는 ‘나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야.’ 하면 잡혀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성공을 위해 지하로 연결해 다니며 교회를 도왔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 사람은 ‘나는 농사꾼이요.’ ‘나는 어부요.’ ‘나는 장사꾼이요.’ ‘나는 그냥 뭐… 공인이요.’ 이렇게 하지만 그 바탕은 하늘에 속한 시민으로서 인생을 그리스도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먹고 살아야 되니까 일은 합니다만, 그 중심에는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믿는 자의 삶의 밸런스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교회 생활은 멀리 두고서 신앙생활 한다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세상에서는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기준을 그런 것으로 잡으면 안 되고, 제가 드리는 말씀으로 기준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삶이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우리 성도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니, 세상 직장 다 관두고, 학교도 다 관두고 여기로 모이세요!” 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살아야 될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혜롭게 가되,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에게 속한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내 것이다.’ 할 수 없습니다. ‘나’가 그리스도 것이 되어야 천국에 갑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나입니다. 비록 흩어져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곳곳에서 주의 교회를 잘되게 하기 위해, 내 구주를 잘되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완전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언젠가는 하늘에 올라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이 공중에 뜨나요? 인간의 과학 기술을 다해도 이 맨 몸이 공중에 뜨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으로 이미 살아있는 자라서 영적으로 사는 것을, 물리적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보증합니다. 약속되어 졌습니다. 이미 약속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날만 기다리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 현실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정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완전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습니다. 자기도 알 것입니다. 굉장히 뒤쳐져 있습니다. 완전히 자기 신앙이 가짜라는 것을 스스로가 압니다. 그런데도 아닌 척하고 “천지가!” 하면서 근사하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자기도 자기의 삶과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이 밸런스가 맞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아무리 아닌 척한들, 주님은 누가 자기와 가깝게 있는지, 멀리 있는지 다 아십니다. 오늘 예수 믿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도 그 누구보다도 주님께 가까울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과 연결하여 살고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매일 보고 계십니다. 우리 각인의 자세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 대한 자세, 심지어 건물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하는지 보십니다. 교회에 대한 우리 각인의 자세가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교회를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자기 일처럼 사랑하고 자기 일처럼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삶에 자기를 넣어야 합니다. 자기가 빠져나올 수 없게 예수믿는 삶에 자기를 넣어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저는 외국에서 공부할 때에 영국인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때 거기 두어 번 목사님이 바뀌었는데, 그 중 한 목사님에 대해 제게 약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최근 갑자기 그 기억이 나서 저는 너무나 괴롭습니다. ‘좀 실력이 없다. 베뢰아를 모르니까 어쩜 저렇게 하나도 모르냐…? 말씀에도 너무 능력이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사람과 ‘그 목사님 좀 부족하다.’ 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됩니다. 그때에는 그 교회 떠나고 한국에 갈 생각에 그렇게 함부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교회에 영원히 머물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떠나면 그만이지.’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매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참겠습니다. 힘들어도 참겠습니다. 서울에 가면 사랑하는 귀한 형제 같은 내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제게는 제가 섬겨야 될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대단히 기다렸습니다. 한국에 가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한국에 가면 다 위로받는다.’ 저를 반갑게 맞아주는 성도들의 모습들이 그려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그런 제 꿈이 이렇게까지 산산조각 날 줄은 몰랐습니다. 근데 당시 저는 진짜 순진하게 ‘하나님, 내 교회 가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나 가고 싶어요! 그러니 여기서는 참을게요!’ 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목사님에 대해서는 ‘아 … 영적인 걸 너무 모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이 그 목사님의 귀에 들어가고, 목사님은 마음이 상했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몸에 못을 박았습니다. ‘주님, 이것도 부족해요.’ 하고 못을 다시 박았습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해 지금 100배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거기서부터 그렇게 어렵고 방해가 있었습니다. 이미 제 인생에 뭐가 끼어 들었습니다. 어떤 인격이 끼어 들어서 제 인생의 구도를 바꿔 놓는 그런 장치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도 수년 간 그곳에서 그 교회를 섬겼습니다. 열심히 섬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떠날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냥 잠깐 나그네라 생각하고, 그 목사님을 무시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목사님을 직접적으로 괴롭게 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한 마디 한 것이 제게 이렇게 큰 고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서운 현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건 무서운 현실이구나. 하나님은 계속 계시구나. 내가 주의 종을 함부로 무시했다가 100배의 벌을 받는구나.’ 결코 한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해결이 없습니다. 절대로 비판을 가하고도 살아날 수 없는 것이 교회와 감독자에 대한 여러분의 비판입니다.
지금은 거의 갈라져 나갔지만, 부목사님들 중에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지만 참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부목사님들이 나랑 아주 찰떡궁합으로 다 맞춰서 잘 따라와주고, 교회와 저를 성도들에게 잘 연결해주어 그렇게 우리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한 덩어리가 되게 해주시기를, 그렇게 성도들에게 감독의 스피커로서 잘 전달해주고 손잡아주는 중재자들이 돼 주기를 바랍니다. 묵은 누룩이 아직 묻어 있는 분들이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하나님에 대한 예의를 다하시고, 오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다하고 오늘 내 교회에 대한 진실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렇게 다짐한다고 해서 우리가 100% 잘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를 얕보는 마음이 생기면 목회자와 교회를 비난하면서도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못합니다. ‘나 떠나면 그만이야.’ 하는 생각도 그런 데서 비롯합니다. 떠나면 그만이다 생각하니 교회를 함부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를 보니까 그렇습니다. 당시 저는 그 밖에 모든 것은 정말 순결하게 했고, 교회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또 선하게 임무를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만한 마음이 제 속에 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 현실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진짜 자기 자세를 겸손하게 하기 바랍니다. 옛 교만했던 마음을 누그러트리고 오늘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의 자세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을 천국의 시민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천국 하나님 집에 권속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당장 당신의 나라에 가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올리우심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자기가 쌓은 모든 공로와 노력, 또 직분자로서 해온 것들은 잠시 내려놓으시고, 오늘 현실에서 만나는 주님과 하나가 되시고, 겸손하게 그와 관련이 된, 그와 연결이 되는 교회의 목회자 모두를 사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제가 목회자의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주의 종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말씀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설교에서 그 말씀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주의 종을 무조건 섬겨야 한다 하지만, 우리 중에 진실하지 않은 종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교회에 해를 가하고 있는 목사들까지도 다 섬겨야 된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그 말씀을 강조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고, 교회를 비판합니다. 그곳의 성도가 ‘우리 목사님 왜 저러실까?’ 하면서도 ‘주의 종 건드리면 안되지.’ 하는 생각에 참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안 되지!’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은 제 목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일입니다. 제 인생의 구도를 완전히 바꿔 놓은, 방향을 바꿔 놓은 하나님의 위임으로 제게 닥쳐진 목회인데, 진실하지 못한 목회자들로 인해 중요한 부분이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2~3년 안에는 신실한 주님의 목회자가 되시고, 성도와 감독을 연결하는 자가 되셔서 감독의 타는 심정을 성도들에게 전해야 될 것입니다. 저는 한 말씀 한 말씀 하늘에서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고 있습니다. 먼저 목회자 자신이 울부짖고 회개하고, 성도들 앞에 가서 엉엉 울어야 할 것입니다. 감독의 하나님께 대한 애타는 마음을 그들에게 전해주려면 먼저 울어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을 해 나가는데 주님 앞에 100프로 깨끗하게 보일 수는 없습니다. 오직 회개하는 심령만이, 통회하는 심령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저와 손을 잡고 서로 박자를 맞춰서 갑시다.
매주일 예배 중에, 찬양 중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또 내 교회를 대할 때 마음 속에 자기를 북돋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그 뼈대가 무너지지 않고 잘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필요할 때만 나를 도와주세요!! 아, 하나님! 빨리 빨리 좀 와주세요!’ 이러지 말고, ‘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이 삶을 해 나가기 원합니다. 여기가 내가 묻혀질 교회입니다. 나 여기에 묻어주옵소서. 그리고 내 육신을 데려가시기 위해 부르러 오실 때에 여기 오셔서 내 이름을 불러주옵소서.’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진실한 자세를 갖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부로 하나님에 대해서 모욕하는, 직간접으로 하나님께 모욕되는 일 하지 않도록, 언사나 마음에 있어서 착한 심령으로, 의로운 심령으로 바꾸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성락교회 밖에서 뭐라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이 알아주셔야,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여겨 주셔야, 다른 말로는 불쌍히 여겨 주셔야 합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려 하고 또 우리를 긍휼함으로, 인자하심으로 대하시고 선하신 그분이 자기의 선하심으로 모든 걸 우리에게 주려 합니다. 우리는 든든합니다. 자신만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자신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에 데 우리의 자신감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야. 하지만 나는 하나님만 의지해! 나는 지옥 갈 놈이야. 그러나 나는 하나님 의지해. 하나님은 나를 지키실 거야.’ 그런 사람만 천국가는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를 받아 주시옵소서. 부족하고 이 못난 우리들을 구원의 주와 영원한 운명을 함께 엮어 주심을 감사드리며, 이제는 내 교회, 내 목회자 또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조건을 통해 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내 심령, 변화된 자세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연결된 모든 곳에서 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내 현실이 하나님으로 꽉 차 있게 하여 주시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나님의 임재하신 품, 귀한 손길 위에 서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우리 성도들을 도와주시고 저들 마음 속에 하나님 성령으로 임하시고, 이제는 참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강력한 이끄심으로 명하여 주셔서 모두가 우리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새롭게 정비되게 도와주시고, 우리 주님의 힘으로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간접적이라도 주님과 반대하는 자, 주님의 마음에 못을 박는 자, 거룩한 그리스도의 보혈에 배반하는 자 또 성령을 거스르는 자 없게 하여 주시고, 모두가 아름답게 우리 주님의 영원한 나라에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귀한 우리 모든 성도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출처] 20231105 비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고린도전서 4:1~5)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