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하고 얻은 지식은 간접적인 경험인 독서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Idea)의 세계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세상으로 이론적인 세상이다. 그럼 경험해보지 못한 이데아의 세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불완전한 범인(凡人)의 능력 밖의 일이므로 / 버려진 페이지를 주워 책을 만들었다/ 거기/ 한 사람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처럼 플라톤(Platon)과 같은 위대한 철학자의 이론을 통해 얻을 수밖에 없다.
시인은 /밤마다 책장을 펼쳐 버려진 행성으로 갔다/ 나에게 두 개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처럼 시인 역시 때때로 현실과 이데아(버려진 행성)의 세계를 경험한단다. 그런데 시인이 생각하는 이론의 세계는 플라톤이 말하는 그런 이상향은 아닌 것 같다. 삶의 너머 세계, 죽음의 세계로 인간으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볼 수 없는 세상이다. 그것은 이론적인 세계로 시인은 ‘역광의 세계’라 이름 붙이고 있다.
알제리 출신 다니엘 포르(Daniel Fohr)의 소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에서 실연당한 주인공에게 다양한 종류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한번 죽게 되면 현실 세계에서 남은 그의 육신은 의미 없는 물질에 불과하지만, 죽음 너머의 세계는 관념적인 세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상상력의 세계(Idea)를 통해 죽은 자(물웅덩이에 갇힌 사람)와 대화를 나누거나 계절의 변화를 통해 자연의 현상을 살펴보거나 독서(책 속에 갇힘)를 통해 역광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시인의 의지이며 기호(嗜好)이다. 어쩌면 시인의 이러한 행동이야말로 참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급기야 큰 눈사태를 만나/ 책 속에 갇히고 말았다/의 표현은 당연히 눈(雪)의 의미를 눈(眼)의 의미로 사용한 중의적인 메타포(metaphor)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관념적인 의지에 심취해 있는 동안 /한 그림자가 다가와/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다/는 말처럼 누군가가 이러한 명상을 방해할 때면 /나는 고개를 저었다/라면서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시의 내용이 상당히 사변적이고 다소 난해한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를 읽을 때면 현실 속의 나도 가끔 죽음 너머의 세계 혹은, 전생이나 내세에 대한 궁금증과 같은 이론과 실존의 세계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생긴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그야말로 단순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은(감상) 후의 긴 여운이 있어야 책을 읽는 묘미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안희연의 시적 특징 중 하나가 이렇게 판타스틱(fantastic)한 내용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