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ing robot [말하는 로봇]
'자유'를 가진 말
인공 '펫(pet)'을 분양받았다. 미국의 한 장난감 회사에서 작년에 히트를 친 이 로봇은 외계에서 온 생물처럼 생겼다.
내가 이 사물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특이한 외형 때문이 아니다. 이 사물이 말을 하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위에서 하는 말의 내용에 따라 이 사물이 적절히 반응하며 상황에 맞는 대꾸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물은 주위의 분위기(소리)에 따라 분노와 즐거움과 따분함 등의 일정한 기분을 느끼고 몸짓(신체언어)을 통해 기분을 표현하기까지 한다. 일례로 강렬하고
빠른 박자의 음악을 들으면 신나게 춤을 추고, 나른한 음악을 틀어주면 눈동자가 게슴츠레하게 변하면서 '졸리다'고 말하며 눈을 감고 잠이 들어버린다.
처음에 이 로봇에 건전지를 넣으면 눈을 뜨고서 한동안 '외계어'로 떠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자기를 키우는 주인과 대화가 시작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사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 놀라운 사물은 그러나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정말 (인공)지능을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도 말하는 문장의 유형과 길이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아마도 이 사물의 뇌(소프트웨어)
에는 일정한 수의 제한된 문장 유형들이 입력되어 있고, 주위에서 가해지는 음성언어의 어휘소들을 분석해서 거기에 맞는 '준비된 문장을 발화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분위기(소리)에 따른 몸짓도
일정한 소리값(박자)에 대한 반응치가 범주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공)지능의 문제와 관련하여 로봇이 정말 '말'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만일 다음처럼 말하는 로봇을 만들었다면 새로운 생물을 창조한 것이리라. 주인의 말에 반응(대답)만 하던 로봇이 도리어 주인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다. 또 다른 경우는 로봇이 거짓말'을 하는 순간이다. 거짓말은 윤리적으로는 일탈적인 방식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지성이 능동성을 발휘하여 제 자신의 자유를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과 거짓말은 뻔한 대답과 예상 가능한 동선을 넘어선 말의.형식이다. 두 말 모두 인간실존의 영역인 '자유'에 속해 있다. 거짓말은 그렇다고 치자, 그럼 지금 당신은 '질문하는', '사람'이기는 한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