監牧官趙公重岱永世不忘碑
(감목관조공중대영세불망비)
전남 고흥군 도양읍 관리 관중회관 앞의 보호수 아래 있는 철비로 감목관 조중대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비이다.
비의 전면에는 監牧官趙公重岱永世不忘碑(감목관조공중대영세불망비) 후면에는 道光十五年乙未正月日(도광십오년을미정월일 1835년(헌종1) 음력 1월)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조중대가 1700년대 후반에 흥양감목관을 지냈으나, 이 비가 1835년에 새워진걸 보면 중건(重建)한 것으로 보인다.
비의 재질은 철이며, 주조를 통하여 글자와 문양을 새겼다.
비갓에는 팔괘(八卦)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크기는 전체 높이 97cm(비신 72cm, 비갓 25cm), 전체 너비 34cm(비신 28cm), 두께 3cm 이다.
조중대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관직은 공산진관병마절제도위까지 올랐으며, 품계는 통훈대부(通訓大夫)이다.
『일성록』 정조3년 기해(1779년)3월 21일(을사)에 좌의정 서명선(徐命善)의 장계로 전 흥양감목관(興陽監牧官) 조중대(趙重岱)를 수령에 제수하라고 명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흥양(興陽)은 지금의 고흥군 도양을 말하며, 감목관(監牧官)은 조선 시대, 지방에 있는 목장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종육품의 외관직을 이른다.
▲ 보호수 아래 있는 철비(왼쪽이 조중대 불망비, 오른쪽은 감목관 정청 철비)
첫댓글 이렇게 철비에 대해 정리해 올려주시니 많은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에서 비에 관한 글
1). 刻石頌德 以示 悠遠 則所謂善政碑也 內省不槐 斯爲難矣
" 돌에 덕을 새겨 칭송하여 영원히 본보기가 되게 하는 것은 이른바 선정비라 한다. 마음속으로 반성하여
부끄럽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다."
2). 木碑頌惠 有誦有諂 隨卽去之 卽行嚴禁 則母低乎恥辱矣
목비로 은혜를 칭송하는 것 중에는 찬양하는 것도 있고 아첨하는 것도 있으니 세우는 대로 곧 없애
버리고 엄금해서 치욕에 이르지 말게 하여야 한다
3). 조선 인조때 사람 석담 이윤우가 경성판관이 되었는데 경성은 수 천리 밖 외진 변방으로 옛 석막의
터였다. 그 풍속이 오랑캐와 섞이어 더욱 다스리기 어려웠다. 공이 정성껏 다스리고 죄를 지어도
용서하였다. 돌아간 뒤에 그 고을 사람들이 철비를 만들어서 사모하여 마지 않았다.
목민심서의 석비, 목비, 철비에 관한 글을 소개헤 주셔서 감합니다. 계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