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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은 온데간데 없고 도시락으로 시작해 도시락으로 끝난 산행이었다.
9월 정기산행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의 경계에 걸쳐진 소백산으로 다녀왔다. 카페 게시판에 공지하지 않고 카카오톡 단톡 방을 통해 공지하고 사람 모으고 준비해 다녀왔다. 사니사라 형처럼 인터넷에만 의존하는 회원에게 폐를 끼쳤다면 미안한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도권으로만 반경을 좁혀 답답한 속내를 풀 겸 소백산 장쾌한 능선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일기예보도 좋기만 했다. 월요일 아침 공지해 수요일 오전까지 자동차 두 대에 오를 여덟 전사가 추려졌다. 강북과 강남으로 나눠 각각 희망과용기 형이 운전대를 잡는 차에 피러 회장, 인천에서 새벽잠 설치고 달려온 꼬맹이와 알 대장이 타기로 했고, 달라무가 운전대를 잡는 차에 산바람, 마포나루, 모세 형이 승차하기로 했다.
산행 전날 마눌이 불길한 소리를 꺼냈다. 당일 오후 3시 소백산에 비가 뿌린다는 것이었다. 강수 확률이 30%인가 됐다. 아 그러면 안되는데, 하지만 산행지를 변경할 수 없었다. 수요일 오후 국립공원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통해 하나에 8000원씩 선지불했다. 물론 바꾸고 환불할 수 있지만 혼선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눈을 뜨니 오전 5시 14분인가 했다. 서둘러 씻고 허겁지겁 달렸다. 뚝섬역 플랫폼 계단을 숨가쁘게 뛰어 오르는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늘 아침에 일어나 기사 쓸 때 떠나는 첫 차 출발 시간을 33분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차를 놓친 뒤 시간표를 보니 31분이었다. 플랫폼을 떠나 우리 아파트 쪽으로 우꺾하는 시간을 나만 출발 시간으로 입력해 놓은 것이었다.
다음 열차는 40분이었다. 을지로 4가에서 환승하고 공덕 역 내려 커피점 찾아 헤매는데 꼬맹이가 전화를 해온다. 왜 벌써 전화를 하지? 그리고 역 나가니 희망과용기 형 차가 보인다. 손을 들어 조금 기다리고 한 뒤 콜드브루 커피 사들고 갔다. 회장이 핀잔과 비아냥, 호령이 뒤섞어 “너 왜 요즘 자꾸 늦니?” 그런다. 엥 뭔 소리지, 나 엄청 일찍 왔는데,
내가 6시 10분 모이자고 해놓고 머릿속에는 6시 30분이라고 잘못 입력한 것이었다. 요즈음 한 번 잘못 입력되면 수정 불가인 일이 많다. 하여튼 할 말이 없어 쩝쩝거리며 뒷좌석에 가만 앉아 갔다. 강변북로 나오니 벌써 차량이 장난이 아니다. 너 때문에 늦겠다, 이런 생각들을 떠올린다는 것을 나도 알 수 있었다. 희망과용기 형이 이따금 위로한다고, 그런 말을 건넸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경기광주 분기점에서 제2영동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데 호법까지 내려가게 됐다. 대화에 심취한 탓이었다. 호법에 가까워지자 아니나다를까 왕창 밀렸다. 여주 지나 평택~제천 고속도로 타서야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아침을 먹기로 한 도담삼봉 가마솥 순두부 집에 정차하는데 우리보다 20분 넘게 수서에서 출발한 일행이 들어온다. 거의 동시입장이었다. 그 차에도 문제가 조금 있었다며 서로를 보호하며 말을 삼간다. 여튼 조금 과하다 싶게, 막걸리나 소주를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많은 음식을 시켜 맛나게 먹었다. 순두부를 한 술 뜬 달라무 형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이렇게 맛있고 담백한 순두부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한 술 떠 맛을 봤는데 환 형이 맛집을 많이 안 다녀봤구나 싶었다. 팔당 기와집이나 예전의 강릉 초당순두부보다 조금 못한 맛이었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짜글이인데 많이 단 것이 흠결이었다. 오히려 들기름으로 구운 두부 맛이 나았다.
아무튼 식사를 마치고 20분쯤인가 더 달리니 어의곡 탐방센터가 나온다. 주차하고 도시락 찾고 그랬는데 달라무 형의 차가 나타나지 않아 10분 이상을 허비했다. 언제나 느긋한 형의 성품은 3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싶었다.
나도 어의곡 코스는 처음이었다. 체력이 좋지 않은 마포, 꼬맹이, 모세 형도 있어 그냥 원점 회귀하기로 했던 터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함께 하고 나머지는 개인별로 알아서 하기로 했다. 마포 형은 저쪽 희방사나 비로사 쪽으로 내려가 택시로 이동하는 경우의 수를 얘기했으나 그러지 말자고 했다. 결과적으로 날씨 때문에라도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어의곡 코스는 들머리로 아주 매력적이었다. 제법 길도 넉넉하고 이끼가 많은 계곡, 울창한 수림이 갖춰져 있었다. 힌 시간쯤 오르니까 전나무(잦나무일 수도 있다) 숲이 나왔는데 희망과용기 형과 나, 산바람과 달라무 형이 짝을 지어 오르고 다른 이들은 일찌감치 원점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 코스는 한 시간쯤 진행하자 곧바로 능선이 나타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계속 돌길과 계단이 번갈아 나타나며 조금 힘들게 했다.
중간에 맞춤하게 쉬는 공간이 나와 적당히 마지막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삼거리에 올라붙었다. 능선은 완전 안갯속이었다. 일행을 기다릴 겸, 둘 다 가보지 않은 국망봉을 들렀다가 올까 싶었지만 왕복 5.4㎞라 만만찮았다. 최선은 400m를 더 진행해 비로봉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10시 30분에 출발했는데 12시 50분쯤이었다. 캔맥주 하나를 나눠 마셨는데 날이 영 개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야만 연화봉을 염두에 올릴 수 있었다. 바람이 거칠었다. 정상에는 여섯 팀 정도가 있었는데 초등학생 아이들 셋이 계단에 앉아 간식을 챙기고 있었다. 보호자도 보이지 않아 웬일인가 싶었다.
바람을 피할 겸, 3m 정도 아래 환경 보호 전과 후를 비교하는 게시판 아래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후득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인가를 더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비를 그냥 맞았다. 움직이면 나을텐데 점점 빗방울이 굵어진다. 전화를 했더니 아무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전원을 꺼놓은 이도 있었다. 해서 형과 상의해 내려가기로 했다.
삼거리 거쳐 비탈진 숲속 하산길에 한 분이 걸어간다. 양보하길래 감사하다고 했더니 알은체를 한다. 비로봉 갔다가 돌아오는 달라무 형이었다. 산바람 형은 그보다 먼저 정상 들러 내려간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셋이 어울려 내려가니 둘만 있을 때보다 나았다. 산바람 형을 따라잡으려고 서둘렀는데 영 나타나지 않았다. 해서 별로 허기지지 않는데 도시락을 까먹기로 했다. 캔맥주 하나씩 건배하고 도시락을 개봉하니 일단 가성비가 괜찮아 보였다. 희망과용기 형은 석달 전 이 산에서 같은 방식으로 도시락을 먹었는데 그때는 국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했다. 보통 편의점이나 전문점에서 파는 도시락은 퍽퍽해 먹은 뒤에 여간 고생하는 것이 아닌데 이 도시락은 속이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언제 빗물이 든 도시락 밥을 제대로 먹어보겠느냐" 했다. 세 사람 모두 만족했다. 그러니 좋았다.
이제 밥도 먹었겠다, 뒤풀이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하산 종료 30분 전에 꼬맹이와 전화 연결이 됐다. 모두 무사히 내려와 매점에서 감자전에 막걸리 마시고 있다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산바람 형은 혼자 하산하다 우산 들고 도시락을 맛있게 까먹고 매점에 합류해 맥주를 마셨다고 했다) 모두 바로 서울 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길이 왕창 막힐테니 아예 저녁 먹고 올라가자고 하니까 스피커폰으로 연결된 저쪽에서 아우성이다. 할 수 없지 뭐.
30분쯤 뒤 도시락 반납하고 매점에 가 일행과 다시 만나 잠시 숨 좀 돌리고 산행 지도 앞에서 단체 사진 찍기로 했다. 사실 능선 삼거리에서 하도 시끄럽게 난리 부루스를 쳐 한소리 할까 하다가 희망과용기 형이 하지 말라고 해 하지 않았던 젊은이 일행 중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능선에서 한소리 했더라면 대단히 면구스러울 뻔했다. 역시 나이 든 사람과 마눌 얘기는 잘 들어야 한다. 하여튼 그가 셔터를 눌러 그나마 여덟 얼굴이 한 자리에 모인 사진 하나 건질 수 있었다.
희망과용기 형 제안에 따라 단양강 잔도를 잠깐 들러 산책하기로 했다. 곡절 끝에 주차하고 난 뒤 형이 그러는 거다. “왔다갔다 한 시간쯤 걸릴 거야. 난 눈 좀 붙일게. 운전하며 잠드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않겠어?” 뭐라 대꾸할 도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들이 자꾸 묻는다. 형은 왜 나타나는 거냐고, 당연히 아우성과 질타가 쏟아진다. 속았다드니, 이기적인 사람, 어쩌구 저쩌구. 그런데 푸른 강물이 보이고 산자락에 단아한 단양읍 풍경에다 멀리 충주호 물결이 비치자 형에 대한 칭송으로 바뀌었다. 야 여기 오길 잘했다 어쩌구 저쩌구. 정말 그랬다. 돈이 제법 들었겠다며 열악한 지자체 살림을 걱정하는 한편, 부모나 가족, 아내, 연인과 함께 찾을 날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여튼 만천하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1.2㎞를 걸어갔다가 돌아오는데 클래식 명곡들의 우아한 선율에 제법 교양 가득해져 돌아왔고, 희망과용기 형은 잠이 들지 않아 “눈만 감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효과 만점”이라고 했다. 형의 탁월한 선택에 엄지를 치켜들며 출발했다. 다행히 내비는 그렇게 막히지 않는다고, 우리를 2시간 20분쯤 뒤 수서역 근처에 데려다줄 것이라고 했다. 뒷좌석의 꼬맹이와 회장님은 한 시간 정도 깊은 잠에 빠지고 난 가뭇가뭇 찾아드는 잠기운을 떨치려 애를 쓰니 일몰이 참 아름다웠다. 초생달이 미인의 눈썹마냥 떠오르는 장면도 생생히 목격했다. 조금씩 막히긴 했지만 8시 10분쯤엔가 수서역 공영주차장에 차를 댔다.
김흥국의 노래 ‘59년 왕십리’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지만 손님 대하는 태도가 영 아닌 ‘왕십리 포차’에서 이것저것 많이도 안주를 시켜 먹으며 세상의 모든 술을 들이키겠다는 듯 마셔댔다. 11시쯤엔가 해산하고 전철 타고 돌아오는데 분당선 압구정로데오 역이 나오길래 계속 선 채로 분명 “다음 역에서 내려야지” 입력했는데 눈을 뜨니 왕십리 종점이었다. 이런 xx. 어떻게 선 채로 그렇게 껌벅 잠이 드느냐 말이다. 이렇게 혼잣말을 해가며 왕십리 철로변으로 한양대 쪽으로 빠져나와 강변 나오니 그 시간에도 자전거 타거나 달리는 이들이 많았다. 뭘 그렇게 열심히 뛰노? 그러면서 살곶이 다리 건너 집에 돌아와 씻으니 새벽 1시가 다 됐다. 소백산 능선은 하나도 구경 못했는데 참 좋은 산행이었다, 생각하며 까무룩 잠들었다.
첫댓글 ㅎㅎ 일등이네요. 제가 느리긴 해도 끝까지 올라 여러분에게 민폐를 끼치곤 했는데, 이번엔 낙오...ㅠㅠㅠ. 갈수록 체질이 저질이 되는 듯. 암튼 덕분에 선두 팀은 부담이 적었을 듯....산행기 잘 읽었는데, 알 형 교정 한번 다시 봐야 할 듯. 선배들 보면 무섭게 혼날 것 같아요^^. 어의곡 매점에서 먼저 내려온 일행이 먹은 음식은 막걸리에 감자전이었답니다. 후에 산바람 형이 내려오셔서 과자 안주 삼아 맥주 드셨구요.
저는 회장님께서 하사하신 택시비 덕분에 귀가 시간을 반으로 줄여 편하게 집에 도착했답니다. 도시락, 단양강 잔도가 베리 굿이었던...초가을 산행이었습니다.
수정했습니다.
전철 첫차 출발 시각이 평일과 토요일이 달라서 혹시 착각한 거 아닌가? 그리고 사소한 지적을 하자면 '이천 지나 제2 중부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게 아니라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경기광주분기점에서 제2영동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데 호법까지 내려간 것이 맞다네. 그리고 두부부침은 참기름이 아니라 들기름을 넣고 구운 것임. '민구스럽다'는 강원도 사투리. 경상도에서도 그 말 쓰는데 '민구타'란 식으로. 표준말은 '면구스럽다'라네. 잘 읽었네. 산행기를 읽고 나니 괜찮은 산행이었다는 생긱이 드는군. 알 대장! 애썼어.
수정했습니다. 운전하신 형과 달라무 형이 더 고생하셨습니다.
대리운전을 불러 귀가하면서 회장님께 중간에 내려드리겠다고 하니 어차피 택시 탈 생각이었다며 대리비를 내주시겠답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2만5천원이라고 하자 회장님께서 인심 좋게 3만원 드리겠다며 기사에게 돈을 건넵니다. 주차장에 도착해 돌아가던 대리기사가 갑자기 되돌아옵니다. "3만원 주신다고 했는데 한 장이 천원짜리네요." 회장님께서 착각하고 2만1천원을 건넨 겁니다. 하는 수 없이 제가 1만원을 주고 1천원을 받았죠. 회장님! 대리운전비 3만 원 중 9천 원은 제가 냈습니다. 그래도 무지 고맙습니다.
회장님이 꼬맹이와 희망과용기 형으로 지출하신 돈은 7만 1000원으로 정리됐습니다. ㅋㅋ
에고. 진짜? 어두워서 그랬구나. 1000원짜리는 다 썼는 줄 알았는데...담에 9000원 줄게~~ ㅎㅎ
사회적 거리두기를 몸소 실천한
특별한 산행으로...기억될겁니다.
능선까지 올라
멋진 자연을 두눈에 담고 싶었지만
참으로 아쉬윘습니다.
아들녀석이 사준 등산화를 신고
소백산을 멋지게 누비고 싶었는데...
그래도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양강 잔도는 이다음에 가족들과
꼭 한번 다녀올 것입니다
너무 좋았어요.
ㅎ, 우중산행 될지는 예상도 못했네요~~
그래도 정겹게 잘 걷고 왔으니 좋았겠습니다^^ 산행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오랫만에 서울을 벗어난 산행이었는데, 비가 왔었네요. ㅠㅠ. 산행기 재미있었습니다.
산행기 쓰느라 애썼다. 잘 읽었어. 언제 그 큰 짐을 지고 서서 종점까지 가는 신기를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