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여:이 글은 한겨레신문 4월 18일(수)자 31쪽에 있는 고정 칼럼난인 [유레카]에 한승동님이 "제주 기지, 경로의존성"라는 제목으로 쓰신 칼럼입니다. 좋은 글이라여겨 이곳에 그대로 옮겨 놓았읍니다.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유레카]
제주 기지, 경로의존성
한승동(한겨레신문 논설위원)
5월 6일부터 일본 원전 가동이 전면 중단된다. 그럼에도 전력 부족에 따른 타격은 예상만큼 심각하진 않다. 일본의 원전 의존 심화는 핵무장
계산까지 포함한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원전을 통해 이익을 향수하는 산업계와 관료들,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의 농간 탓이 크다. 그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자연에너지 등 대체에너지 개발 가능성도 차단했다. 일본 사회의 원전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을 심화시킨 것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비극이란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서야 거기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한번 정해진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게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을
가리키는 경로의존성. 19세기 말 타자기 개발 때의 기술에 고착된 지금의 비효율적인 영문 입력 자판 배열구조가 그 전형적인 사례다. 더 효율적인
베타 방식이 브이에이치에스 방식에 패배한 비디오카세트 개발 역사도 그렇다.
한-중 관계를 무조건 위험시하고 한-미 관계에 집착하는 맹목도 일종의 경로의존성이다. 60년을 넘긴 주한미군
장기주둔도 마찬가지. 한-미 관계나 미군 주둔 체제에 재빨리 적응함으로써 이익을 향유하는 집단이 우리 사회 상층그룹을 형성하면서 사회 전체의
경로의존성은 심화됐다. 1,000여개 해외기지들을 배치해 놓은 ‘군사기지 제국’ 미국의 군사주의 폐해를 비판한 찰머스 존슨의 <제국의
슬픔>은 그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남북 분단의 고착화도 통일보다 분단이 기득권 유지에 더 유리한 남북의 집단 또는 계급의 존재를 빼곤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 관료들도 오키나와 미 해병대 기지 이전 논란 때 조국 일본이 아니라 몰래 미국 편을 들었다는 사실이 위키리크스 폭로로 드러났다.
그래야 자신들 자리와 기득권이 보전될 테니까.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은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