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돼지만 바꾸었을 뿐, 돼지의 환경을 바꾸지 않았다"
2002년으로 기억된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에 근무했던 적이 있다. 학기 초에 가정방문을 다녔다. 5학년과 6학년이 함께 공부하는 복식학급 담임교사였다. 6학년 학생 중에 한 명의 집이 돼지를 키우고 있었다. 학교에서 걸어서 30여분 걸리는 거리였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간다고 하니 싫어했다.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가 좋든 싫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다고 말씀을 해 놓았기에 약속된 시간에 도착했다. 학부모님께서 일하고 계셨다. 돈사를 물로 청소하고 있으셨다. 돼지를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침 암퇘지 곁에서 새기 돼지들이 옹기종기 젖을 빨고 있었다. 다른 칸에서는 돼지 몇 마리들이 좁근 공간에서 엎드려 있다시피 놓여 있었다. 선홍빛깔의 피부에 덕지덕지 오물들이 묻어 있어 청결과는 약간 거리가 먼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돼지의 눈은 참 맑았다. 돼지 코도 가까이에서 보니 의외로 귀엽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돈사에서 풍겨나오는 냄새가 고약하다고 하지만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다. 늘 일하시는 분들 앞에서 냄새 타령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스웨덴의 수의사 리나 구스타브손이 돼지 도축장에서 검사원으로 지낸 85일간의 경험을 일기로 담아낸 책을 펴냈다. 학급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이야기들을 매일 매일 기록한 교사 일기라든지 코로나19를 맞이하여 감염병과 씨름하듯 환자들을 돌본 사례를 적어낸 의사 일기 등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도살장 일기는 생소했다. 우리나라도 축산물위생관리법 제12조에 따라 축산물 검사관을 도축장에 배치한다고 한다. 보통 검사관은 수의직 공무원으로 수의사 자격증을 가진 7급 공무원이라고한다. 스웨덴도 이와 비슷하게 대량의 돼지를 도축하는 시설에 반드시 수의사를 두게 되어 있나보다.
수의사가 하는 일이 나와 있다. 트럭에 실려 오는 돼지들 속에서 혹시나 감염되어 있거나 질병에 노출된 돼지, 다리를 절거나 피부에 상처가 난 돼지, 육안으로 보았을 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돼지들을 선별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계류장에서 기다리는 돼지들 속에서 발생되는 상처난 돼지도 가려내는 일을 한다. 그 이유는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의 질을 최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절차이며 만에 하나 있을 감염병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그뿐만 아니라 도축하기 전 돼지들을 함부로 패거나 무자비하게 다루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하루 종일 도축되는 돼지의 수가 셀 수 없이 많고 도축되는 과정이 모두 컨베이트벨트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여지기에 생명의 존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사치라고 한다. 다만 법에 의해 최대한 안전하게 도축되도록 검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비명 소리, 바닥에 흐르는 핏물, 각종 내장에서 흐르는 분비물 등으로 인해 근무하는 환경은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전한다. 물론 수의사 외에 도축 작업을 하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오랜 시간 동안 일했던 베테랑급들이다. 이 분들은 중간에 관둘 기회가 있었지만 가족들 생각하다보니 때를 놓쳐 적게 잡아도 20년 넘게 매일 도축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꼬리 상처는 잘 곪는다. 그래서 몸에 감염원이 생길 수 있고, 그럼 그 고기는 전량 폐기해야 한다"
도축장 내의 수의사들이 남긴 기록들의 면면을 읽어내려가보면 돼지도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 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산화탄소 질식장으로 끌려가기 싫어 발로 버티며 서 있는 모습,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다른 돼지의 등을 타고 도망치려는 몸부림, 피부가 닿을 만큼 빼곡한 공간에서 숨이라도 제대로 쉬고 싶어 헉헉 거리는 모습들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물의 압력을 순간적으로 높혀 돼지 머리에 마취를 가하는 모습은 수의사들의 기록을 읽지 않고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펜액펜 출판사에서 최근에 발행한 <대한민국 돼지 이야기>에 보면 돼지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가축이자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사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우리나라 토종 돼지는 재래종으로 크기가 작되 먹성은 엄청 좋았다고 한다. 그만큼 사료값이 많이 들다보니 개체수를 늘이기에 부담이 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덩치가 크고 새끼를 많이 낳는 외래종이 들어오면서부터 재래종은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돼지도 계속해서 개량되고 있지만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돼지가 사는 환경이라고 한다. 사람에게 고기와 털을 공급해 주는 돼지를 최대한 위생적으로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듯 싶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를 그동안 사람들이 놓쳤던 동물들의 서식 환경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