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이었다. 그때 우리집은 구멍가게를 했는데, 극장 포스터를 가게 앞에 뭍이는 조건으로 초대장 몇 장을 어머니에게 주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서 모래내에 있는 은좌 극장에서 <별들의 고향>을 보았다. 처음에는 영화라는 걸 처음 본다는 사실 때문에 무척 기대가 컸지만, 막상 영화를 보자니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못해서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 후 스크린이라는 영화잡지에서 주최 하는 지나간 한국 영화 시사회 때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데 5살 꼬맹이 때 보았던 몇몇 장면들이 기억났다.
<별들의 고향>은 좋은 작품이었다. 다소 진부한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울한 멜로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오는 수작이었다. 나는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보고 쓸쓸한 가을길을 혼자 한참이나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여자>가 빅히트 했을 때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성적인 면이 화제가 되었다. 주연 여배우인 장미희가 알몸으로 나온다는 이야기가 퍼져서 막 성적 호기심이 싹틀 무렵의 나를 자극했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공부를 할 때 남산 도서관에서 시나리오를 빌려 읽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여주인공이 고아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범적인 장면이 있어서, 성적인 면만 떠올렸던 내게는 상당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남산 도서관에서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 시나리오를 읽을 수 있었다. 그중 괜찮았던 건 최인호 씨가 시나리오를 쓴(감독은 기억나지 않음)<불새>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나중에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는데, 서구적인 세련미가 물씬 풍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겨울여자>는 텔리비젼에서 방영할 때 건성으로 잠깐 보았다.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고, 강의실의 책상과 의자를 자연광으로 촬영하면서 음악을 입힌 커트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김호선 감독은 이 영화로 한참 주가를 올렸는데, 90년대 들어서 만든 <서울 무지개>는 개인적으로 크게 실망한 작품이었다.
하길종 감독은 80년대에 영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는 하나의 신화였다. 그에 대한 각종 신화가 만들어졌고, 그래서 나도 그를 숭배하게 되었다. 그 당시 애독했던 스크린이라는 영화 잡지에 실린 하길종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흥분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하길종 감독은 70년대 후반 급작스러운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아쉽게도 그의 영화는 신화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대표작인 <바보들의 행진>은 70년대 젊은이들의 방황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범작에 미치지 못한다. 단지 배경음악으로 사용한<날이갈수록>이 굉장히 우수에 깃든 곡이라는 것과 겨울의 캠퍼스를 배경으로 '들립니까?'들립니까?'라고 반복해서 질문 하는 실험적인 장면은 기억할만 하다.
70년대 영화에는 그 시대 특유의 색깔이 있다. 그것은 포크송과 마찬가지의 경향이다. 포크송이 미국의 60년대 후반 반전 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듯이 영화 역시 프랑스적인 빛깔이 많이 드러난다. 알랭드롱이 바바리 깃을 세우는 모습을 흉내낸 한국 남자 주인공들의 모습을 포스터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 70년대 영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구태여 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느리고 답답한 속도를 참으면서 끝까지 영화를 관람할 인내심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몇 편의 영화들은 한 번쯤 훓어본다면, 그리고 포크송도 몇 곡 들어본다면, 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