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招魂)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시집 『진달래꽃』, 1925)
[어휘풀이]
-서산마루 : 서쪽에 있는 산의 꼭대기
[작품해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魂)이 몸을 떠나는 것이라는 믿음에 의거하여 떠난 혼을 불러들여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내려는 간절한 소망이 의례화(儀禮化)된 것을 고복의식(皐復儀式)
또는 초혼(招魂)이라 한다. 그 의식은 사람이 죽은 직후, 그가 생시에 입던 자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죽은 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초혼은 죽은 이를 소생시키는 의지를 표현한 ‘부름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사랑하던 그 사람’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이름이여’ · ‘그 사람이여’ · ‘부르노라’와 같은 호칭적 진술을 반복하는 부름의 형식을 통해 고복 의식을 투영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월의 시는 임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비탄감을 체념적·수동적 어조로 분출해 내는 나약함을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격정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임의 갑작스런 죽음을 대하는 시적 자아는 ‘사랑한다’는 말도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한’ 한(恨)을 가슴속에 새겨 넣고 ‘붉은 해가 걸린 서산마루’에 올라앉아 ‘수프리 우는 사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허탈한 모습으로 ‘그대의 이름을 부른다.’ 임과 나는 결코 이어질 수 없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의 절망적 거리로 멀어져 있다는 현실에 체념하지만, 곧바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임의 이름을 부르며 임의 죽음을 부정하는 설움의 극한을 보인다. ‘돌’은 백제의 가요 「정읍사」나 박제상의 처가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모티프와 관련이 있으며, 임이 죽은 사실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비원(悲願)을 담은 한의 응결체인 것이다.
시적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초혼이라는 전통 의식에 맞추어 한 인간의 극한적 슬픔을 말하고 있다. ‘산산이 부서진 / 허공중에 헤어진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을 부르는 슬픔을 표현한 1연에 이어, 미처 고백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애달픔을 말한 2연, 허무하고 광막한 시적 공간을 제시하며 슬픔의 본질을 드러낸 3·4연, 그리고 망부석을 비유된 슬픔을 마지막 5연에서 말하며 임이 떠나간 저 세상으로 간절히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간적 배경으로 제시된 ‘해질 무렵’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선으로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산’으로 제시된 공간적 배경 또는 땅과 하늘의 경계, 곧 현실의 세계와 영원의 세계를 구분 짓는 것으로, 산 자가 죽은 자의 세계로 다가갈 수 없다는 절망적 한계를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 시적 자아의 심리적 추이 과정을 살펴보면 대략 ‘충격과 슬픔’ → ‘허무와 좌절’ → ‘미련과 안타까움’으로 말할 수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이러한 비극적 세계관을 통해 시적 자아는 자신도 그 죽음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마침내 임의 죽음을 긍정하게 되고 허무의 초극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작가소개]
김소월(金素月)
본명 : 김정식(金廷湜)
1902년 평안북도 구성 출생
1915년 오산중학교 중학부 입학
1923년 배재고보 졸업
1924년 『영대(靈臺)』 동인 활동
1934년 자살
시집 : 『진달래꽃』(1925), 『소월시초』(1939), 『정본 소월시집』(1956)
첫댓글
사랑하는 사람이여
넋이라도 보고 싶구나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많이 춥습니다.
건강 잘 관리하신 가운데
오늘도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