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파시즘, 하재일 식 위대한 거절과 위대한 긍정
김영승(시인)
고등어회 한 접시
눈앞에 놓고 생각에 잠긴다
칼 끝에 베인
치욕의 흔적도 없이
살점은 시리도록 단정하다
―「마크 로스코와 함께․4」 중에서
「타타르의 칼」 연작은 즉자적이고(혹은 과잉 대자적인) 시대착오적인 한 시적 돈키호테의 출사표이다. 그 출사표는 그 「타타르의 칼․ 1」 하단 각주를 통해 그 타타르의 칼을 설명함으로써 마치 「타타르의 칼」의 서문 혹은 서시처럼 그 연작시 「타타르의 칼」의 방향과 목표를 암시해 놓고 있는데, 그 말투는 자못 코믹하여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알레고리와 아이러니의 향연이기 때문이다. 그 타타르의 칼이 그러나 조선조 여인들이 가슴에 품었던 그 은장도처럼 타인을 찌르는 칼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 자신을 찌르는 칼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도 있다. 그 자기 자신을 찌르는 칼은 일종의 자벌기구(自罰機構) 같은 강력한 윤리의식의 소산이며 그 표상이다. 결국은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찔러 아프게 피 흘리게 하는 저 역사책이나 박물관 속에서 누워있던 그 타타르의 칼을 복원, 하재일의 가슴에 그 날을 갈고 그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타타르의 칼 한 자루를 우리에게도 그냥 나눠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칼로 연필을 깎아도 되고 수염을 깎아도 되며 삼겹살을 썰어 소주를 한 잔 해도 된다. 그리고 팽이를 깎아 돌리거나 호드기를 만들어 불어도 된다.
원래 타타르는 몽골계 유목민족으로 북동몽골 등지에 있던 몽골계 북방집단의 명칭이었으나 후에는 몽골 고원으로 들어간 투르크(돌궐)계 민족들까지 포함한 유목기마민족을 총칭하게 되었다. 12세기에 징기스칸에 의해 몽골제국에 흡수된 타타르족은 그 후 오고타이칸 시대에 러시아와 동유럽으로 서방원정을 나선 바투의 몽골군 속에도 많이 포함되었는데 이때 가는 곳마다 유럽인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준 몽골군을 낮추어 경멸조로 부른 별명이 타르타르(지옥이라는 뜻의 타르타로스에서 유래)였으며 그것이 바로 타타르라는 이름의 어원이 된다. 결국 타타르라는 말은 어느 특정 인종, 민족의 명칭이라기보다는 정착문명에서 바라볼 때 매우 이질적인 아시아적 유목사회 부족들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하였으며, 타타르의 칼은 그들이 사용하던 날렵한 곡선의 칼을 의미하며 그때까지 기존의 칼이 가지고 있었던 직선적인 힘보다도 곡선에 의한 속도의 개념이 중요했던 칼이다.
그렇다면 지옥의 문을 활짝 여는 / 소리 없는 번개(「타타르의 칼․1」)인 그 타타르의 칼이 베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득 찬 곳간 화려한 불빛 그 유혹으로서의 문명이고, 가령 책 많이 보고 밤마다 體位를 바꾸는 / 비만 걸린 새끼들,학살을 즐기는 好色漢으로 요약되는잔혹한 야만이며 거룩한 미개로서의 도시민(이상 「타타르의 칼․2」)이다. 그러한 문명과 도시민에 대한 직정적인 증오심은 인터넷의 노예가 된 군상들(「타타르의 칼․3」)을 처단하고자 하며, 그 쾌락의 현장인 모텔 등이 그 파괴의 대상이며(「타타르의 칼․4」), 방마다 곳간마다 그득그득 썩지 않고 쌓여 그들의 나라를 매일 건설하고 있는 그 제 興에 취해 갈기갈기 찢어질 나라를 날마다 건설하고 있는 부화해 알 깐 새끼들 불개미 같은 새끼들우글거리는 정치판(「타타르의 칼․6」)이고,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그날」,『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문학과지성사, 1980) 중에서
호수공원에 물은 없고 푸른 사막만 드넓다
사람이 모래보다 흐리고
―중략―
아침이 될 때까지
밤하늘을 끌어 덮은 화려한 城砦 안에선
은밀한 보리밭의 잔 물결이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 泡沫 위에 르느와르의 여인들이
발정한 개처럼 벌렁벌렁 잘도 드러눕는다
…… 모래바람에 이제 城은 고립되었다
그 통로는 여전히 迷路,
시민은 병들었고, 환부는 통증이 없다
―「타타르의 칼․9 / 진정한 낙원」 중에서
1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우리는 누구냐
우리의 하품하는 입은 세상보다 넓고
우리의 저주는 십자가보다 날카롭게 하늘을 찌른다
우리의 행복은 일류 학교 뱃지를 달고 일류 양장점에서
재단되지만 우리의 절망은 지하도 입구에 앉아 동전
떨어질 때마다 굽실거리는 것이니 밤마다
손은 罪를 더듬고 가랑이는 병약한 아이들을 부르며
소리 없이 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우리는 누구냐
우리의 후회는 난잡한 술집, 손님들처럼 붐비고
밤마다 우리의 꿈은 얼어붙은 벌판에서 높은 송전탑처럼
떨고 있으니 날들이여, 정처 없는 날들이여 쏟아 부어라
농담과 환멸의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廢車의 유리창 같은
우리의 입에 말하게 하라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성복, 「다시, 정든 유곽에서」,『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문학과지성사, 1980) 앞 부분
와 같은 병든 세계이며 그 통증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완벽히 병든 세계인데, 그러한 세계에 대해서 하재일은 일단 아니다! 하는 강력한 부정을 한다. 그것은 마르쿠제가 말하는 바 예술(혹은 이성)의 기능이고 힘인 그 위대한 거절(Große Weigerung)이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니체가 말하는 바 응, 그렇다!하는위대한 긍정(ein großes Ja-sagen)인 것인데 하재일은 그런 식으로 부정하고 결국은 그런 식으로 긍정한다. 가령,
▲ 오늘로써 시인을 사퇴하고 평범한 시민이 되겠다
40년의 파란 많았던 시단생활에 종막을 고한다고 하니 감개무량한 심정 금할 길이 없다(92/12/19)
▲ 어떠한 경우에도 詩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심에 흔들림이 없으며 앞으로 문단이 김영삼 대표를 중심으로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93/6/20)
▲ 세 번 전국공모 문학상에 낙선한 사람이 네 번이나 나온다면 국민에게 폐 끼치는 일이고 체면상으로도 안 되는 일이다(93/11/15)
▲ 시단을 은퇴하던 당시의 생각과 조금도 변함이 없다(95/4/21)
▲ 시인은 하늘의 뜻이자 4천 5백만 국민의 뜻이다 따라서 여기서 詩作을 한다 안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6/9)
▲ 문단이 요청하면 시작 지원 유세에 나서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다(6/12)
▲ 나는 유세하고 시를 쓸 권리가 있으며 전국공모 문학상에 재도전할 권리도 있다(6/15)
▲ 문단 은퇴를 했다가 복귀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프랑스 드골 대시인과 미국의 닉슨이 그랬으며 김영삼 대시인(시집으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가 있음)도 1980년 10월 문단 은퇴 선언을 했다가 돌아와 큰 시인이 됐다(6/19)
▲ 이번 시작 재개는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됐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11/24)
― 「타타르의 칼․5/어느 大詩人의 발언록」 전문
같은 시는 그냥 웃음 아닌가. 예수를 시인이라고 한(오스카 와일드) 예는 봤어도 정치지도자를 시인이라고 하다니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자조와 냉소가 얼마나 우스운가. 한 정치지도자(김대중)를 희화화하여 그 발언을 시인에 1:1 대응으로 적용하고 나니 정말 우습다. 시인이란 언어를 다루고 있는 사람 아닌가. 언어를 다뤄도 아주 잘 다루고 있는, 사회의 성감대를 가장 잘 건드리는 그러한 존재가 시인인데 한 정치 지도자와 시인이 그게 그거라면 그런 세상은 좋은 세상인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부정하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러한 세상에 대해서 하재일은 그 타타르의 칼 그 예봉을 휘둘러 베어버리고자 한다. 그의 칼 그 타타르의 칼은 날카로운 칼인가? 혹시 이빨 빠진 칼은 아닌가? 녹슨 칼은 아니며 부러진 칼은 아닌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칼이며 그림자 같은 칼은 아닌가. 그 자체가 칼의 어떤 실루엣 그 환영(幻影)은 아닐까. 그 환영은 결국은 달이다. 하재일의 칼은 달이며, 베어서 잘라내는 칼이 아니라 구부려 부드럽게 감싸는 그런 칼이다. 그 칼의 실루엣, 하재일 식 공격성의 무의식적 표상(아니무스)로서의 그 칼의 그림자(아니마)는 달인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암시를 다음과 같은 시에서 찾는다.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물을 구부려 물방울 보석을 만들고
머나먼 비단길을 구부려 낙타등을 만들어 타고 가고
입 벌린 나팔꽃을 구부려 비비꼬인 숨통과 식도를 만들고
검게 익어가는 포도의 혀 끝을 구부려 죽음의 단맛을 내게 하고
여자가 몸을 구부려 아이를 만들 동안
굳은 약속을 구부려 반지를 만들고
오랜 회유의 시간으로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놓았다
말을 구부려 상징을 만들고
달을 구부려 상징의 감옥을 만들고
이 세계를 둥글게 완성시켜 놓았다
달이 둥글게 보인다
달이 빛나는 순간 세계는 없어져 버린다
세계는 환한 달빛 속에 감추어져 있다
달이 옆으로 조금씩 움직이듯
정교한 말의 장치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오랫동안 말의 길을 걸어와
처음 만난 것이 인간이다
말은 이 세계를 찾아온 낯선 이방인이다
말을 할 때마다 말은
이 세계를 더욱 낯설게 한다
―송찬호,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89) 전문
자고 나면 새로 생긴 낯선 바르한이 지나온 발자국을 지우고 / 내일로 가는 길이란 길은 다 뭉개버린 공포의 사막2같은 도시, 바르한(Barchan) 그 모래가 바람에 날려 형성되는 초승달 모양의 지형에서 꿈꾸는 또 하나의 초승달…… 이때 문득 하재일의 그 타타르의 칼이 달달 무슨 달 같은 칼 같지 않은가.
그러니까 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저 브레스테드(Breasted) 교수가 말하는 바 기름진 초승달(the Fertile Crescent), 팔레스타인에서 페르시안만에 이르는 그 비옥한 반원(半圓) 지역 같은 것이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그 시의 수면에서 드러나고 배후에서 나타난다. 하재일의 이분법과 그 변증법은 사실은 그런 것이다.
그 타타르의 칼이 베어버린 그 사막 같은 자리에 그가 꿈꾸는 것은 사실은 그러한 초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집 『타타르의 칼』이 그려낸 이 난세로 보면 하재일은 분명 강개(慷慨)한 의분(義憤)의 파시스트인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낭만적이고 동화적이며 목가적인 파시스트이다. 그러나 그의 파시즘은 일단 다음과 같은 시로 인하여 안전한 파시즘이 되며 귀여운 파시즘이 된다. 그리고 그 파시즘은 인간성 회복의 중대한 복선이 되는 구원의 파시즘이 되는 것이다. 좌충우돌 투사처럼 돌진하고 마침내는 고립무원의 광야에서 저립한 그가 그런 식으로 그토록 사랑한 이 불모하고 오욕에 물든 세상에서의 삶을 그는 어쩌면 그렇게 회상하고는 그렇게 표표히 산화할 것 같기도 한데, 그것이 그의 삶이 지향하는 바 본령인 그의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는 우리 모두를 안심하게 하고 또한 감사하게 하는 그러한 어떤 이미지이다.
세차게 휘몰아치는 비바람 앞에
처연히 머리칼 푼 버드나무 가지가
어젯밤 내 마음의 전부가 될 줄이야
어찌 하겠는가
―「春分節」 부분
나는 한 철
겁 없이
하늘에 뛰어오르는 숭어인 양
살다 가리
마음에 한 점 구름 없이
하얗게 꽃잎처럼 흩어지리
―「봄날, 혹은 自畵像」 마지막 부분
그 마른 초승달과 젖은 초승달의 이분법을 넘어서면 하재일의 눈물과 눈빛이 그 칼날에 비치는 그 초승달의 변증법으로서의 하재일 식 월인천강(月印千江)이 화엄(華嚴)하고 도도(滔滔)하다. 달이 천 개의 강에 다 비치듯 하재일이 제시한 그 사천왕(「타타르의 칼․13」) 같은 권선징악적인 일갈(一喝)의 거지(擧止)와 그 독야청청의 세한도(歲寒圖)는 우리들 가슴에 영혼에 무수히 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