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는 현혹을 "정신을 빼앗겨 하여야 할 바를 잊어버리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라고 정의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은 신도시이다. 지역이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 원주민들은 약 5천여명이 거주하였고, 감리교 지역이다보니 3개의 감리교회와 1개의 장로교가 있었다. 1개의 장로교도 알고보면 이주민들로 구성된 교회인데, 지역의 갯벌을 간척하면서 섬진강댐 수몰민들을 이주시켰는데 그들이 개척한 교회이다.
5개이하의 대다수 교회는 어떻든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개척 설립된 교회들이다. 그중 원주민 감리교회 1개와 수몰 이주민으로 구성된 1개의 장로교를 제외한 대다수의 1천명을 초과하는 교회는 모두 목회자의 탁월한 능력 때문에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고 평하게 된다.
각지에서 몰려든 기존 신자들을 상대로 규모의 성공을 이룬 목회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설교라는 수단에 능하다는 점이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붕석한다면 신자들을 붙드는 힘- 현혹하는 능력이 타 목회자보다 월등하다는 점이다.
교회는 친교력이 매우 중요한 핵심을 이루게 된다. 친교력의 바탕이 무엇이냐는 교회마다 다르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첫째는 담임목사의 화술을 바탕으로 하는 친화력이다. 일단 언변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친화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설교도 은혜스럽고 구변도 좋은데, 친화력이 없다면 신자들은 그런 교회를 좋아할리 만무하다. 온누리교회를 설립하신 고하용조목사는 누구보다 친화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물론 그의 설교를 통한 감화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탁월했다.
신자들은 일주일에 보통 교회에 1~2번 가게 된다. 목사는 일주일에 통상 13번의 설교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7번의 새벽기도 설교와 주일 2번 수요일 금요일 등등. 하지만 대형교회는 주일설교를 7번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교회건축으로 곤욕을 치룬 O모 목사는 부임초부터 "주일설교는 4번만 하면 좋겠다"고 하며 은근히 대형예배당 건축을 암시한 셈이다. 그렇게 빈번한 설교가 힘들다면 4번만 본인이 하고 나머지 3번은 부목사들과 나눴으면 어떠했을까?
대형교회 목사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능력-현혹하는 힘이 있다. 똑같은 성경을 본문으로 하지만 전개하는 방식은 현저히 다르다. 신자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더욱 신앙적"인 상태로 발전을 한다면 훌륭한 설교자이다. 한 예로 고조용기목사의 화술은 탁월하다.
조용기목사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마저도 그의 설교를 5분정도 듣다보면 빠져들게 된다. 탁월한 화술이다. 그런데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화술이 뛰어난 분들의 단점은 실수가 잦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자신의 화술이 뛰어나다는 점 때문에 자연히 준비가 소흘해지기 때문이다.
목사는 왜 청중을 현혹하려하는 것일까?
교인의 증가는 곧 자신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진리의 길은 험하고 좁은길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험하고 좁은길을 선호하는 목회자는 거의 없다.
신자는 설교를 들을 때 분별해야 한다. "지금 이 설교자는 어떤 목적으로 설교하는 것일까"를 분석하지 않는다면 그는 현혹당하고 만다.
현혹의 의미인, "정신을 빼앗겨 하여야 할 바를 잊어버리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라는 의미를 잊지말아야 한다.
서론과 본론은 기가막히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 설교자가 막바지 결론부에서 청중의 시선을 설교자에게로 집중하게 하는 설교자가 있다. 바로 현혹기술자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러한 설교자가 대다수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그는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하게 된다.
사기꾼은 절대로 만나자마자 작업하지 않는다. 자신이 목표로 선정한 대상에 대하여 최대한 친근감있게 접근하며 상대를 안심시키고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준다. 이런 늑대를 만나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목회자는 신자들을 최대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에 동화되기를 원한다. 그들을 동화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 바로 화술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반드시 설교자를 시험해야 한다.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종인지를 분석해야 한다. 그가 왜 설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가 강조하는 바가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강조인지를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아쉽게도 예상보다 많은 설교자들이 "자기의 영광을 위해" 애쓰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현상을 "정신을 빼앗겨 하여야 할 바를 잊어버리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