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젊은 시인들:
말에 쏘이다 외 1편
조숙진
훅 들어왔어, 노크도 없이
갑작스러워 너를 따라온 발자국이 궁금했어
귓전을 따라 돌고 돌다
지친 세레나데는 창문 넘어 사라졌고
눈 마주치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언약은
속이 훤히 비치는 서랍에서
나날이 수척해졌지
내 것이 아닌 선물에 새초롬해지고
내 것인 줄도 모르고 쏟아 버렸을
삭은 말의 건더기
두꺼운 페이지를 깔고 앉은 말씀
사이에서 부단히 힘을 기르다
툭, 가슴 밀치고 들어온
말 중의 말
세찬 바람 속에서 갈 길을 찾아내는
예리한 풍향계였어
하나, 둘 건넌 징검다리 뒤돌아보니
내가 고른 돌을 따라 굴곡진 길이 났더군
내리감은 숯불의 눈꺼풀이
확 벗겨지는
빨간 불씨
오늘 문득 화인火印으로 따갑다
에덴의 거울
조숙진
한창 물오른 나이 엷은 그림자가 걸린
벽을 오려낸 창문 밖
아련히 푸르른 실핏줄에 걸린 지느러미를 달고
묽은 수증기 속을 헤엄치자
정물의 표피엔 자연의 질감이 허리를 편다
푸름의 조절로 창조된
새 빛의 이름을 기다리는 곳에
거울이 기대어 있다
싱싱한 아침을 겨냥하는 햇살의 속살에서 샛노란 물을
침묵을 포개어 놓은 나뭇잎에서는 순초록 만을 불러
두 빛의 중화가 완성되어 가는 즈음
클릭하고 싶은 그라데이션 색소
그 거울에 있다
잎의 날숨에서 기화한 파문이 흘러든 끝
물꼬 트인 그녀의 눈동자를 따라
온몸이 흠뻑 새 빛으로 물들면
거울 속 그녀는
은은하게 수놓은 날개옷의 어깨를 올리며
고삐 푼 긴 머리에 느린 춤을 시작하는 나비를 꽂는다
에덴으로 날아 들어간다
열린 듯 말 듯 입술의 발화
‘리·세엣’
저쪽 물든 경계 밖으로
뾰족구두들이 之 자를 그리며 휘적휘적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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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의시인들
우리 젊은 시인들: 조숙진의 말에 쏘이다 외 1편
애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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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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