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음악
김회경; 월간「교육교회」 기독교교육연구원 제공
1.교회음악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교회 음악(Church Music)이라고 부른다. 교회음악에는 거의 모든 범주의 음악이 사용될 수 있다. 교회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음악으로 드리는 기도, 고백, 간증 및 음악으로 되어지는 설교, 교육, 선교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매우 방대하며 음악적인 면에서나 가사의 내용면에서나 항상 논란이 있어 왔기 때문에 교회음악이란 용어의 정의는 성서와 그 내용에 근거하여 내리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할 수 있다. 즉 교회음악이란 하나님의 자녀인 신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그 열매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다.
2.성경에 비추어 본 교회음악
성경에서는 교회음악에 대해 여러 가지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부분들이 있다. 구약성경은 일반적으로 교회음악에 대해 긍정적이다. 찬양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들을 상세히 가르치면서(시편) 성악과 기악뿐 아니라 무용과 시까지도 관련시켜서 생각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음악과 함께 하나님의 강한능력들이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부분들도 있다(수 6:1-21). 반면에 음악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구절도 보인다. (암5:23-24 네 노래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아모스 6장에서는 노래와 악기 모두를 부정적으로 취급하면서 다윗왕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이사야도 반음악적인 생각을 보인다(사 5: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러나 찬송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내기도 한다(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러므로 아모스와 이사야가 비난한 것은 찬송이 아니라 쾌락적인 음악과 죄스러운 기쁨이었으며, 그 같은 음악을 연주하고 즐기는 사람이었다.
신약에는 신약 전체를 통틀어 교회음악에 관련된 부분이 적고 예수님 자신의 언급이 없기 때문에 신약이 교회음악의 필요성 자세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듯하다. 그리고 신약에는 악기를 사용한 부분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교회 안에서 쓰는 음악은 오직 성악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있다. 신약에 나타난 찬송에 대한 가르침을 요약해 보면 두가지의 큰 원칙을 잡을 수 있다. 첫째, 찬양은 그리스도를 노래하는 것이어야 하며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고전14:15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계5:12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둘째, 사람에게 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고전 14:26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골3:16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 그러므로 찬양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성도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3.교회음악과 신학
교회음악을 바라보는 신학적 관점은 대략 세가지 즉, 적극적으로 권장한 경우와 제한적으로 허용한 경우 전면적으로 거부해 버린 경우로 정리될 수 있다. 콘스탄티노틀의 주교였던 크리소스톰(345-407)은 일반적으로 교회음악에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는 세속음악만을 배척하였다. 가이사랴지방의 주교였고 명설교가였던 바실리우스는 교회음악을 선교의 좋은 도구라고 칭송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교회학교 선생이었던 클레멘스는 예술이나 미에 대해 관용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악기중에서는 수금과 열줄 비파만을 허락하였다. 이유는 다윗이 그것들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심하는데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진실과 덕을 가진 자만이 그리스도의 미를 볼 수 있다고 하였고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닌 경건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진실과 덕을 가진 순수한 영혼과 성자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미를 볼 수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종교개혁자들 중 루터는 교회음악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기악과 다성음악, 새로 작시된 가사 등을 모두 허락했고 자신이 직접 찬송가를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영혼을 즐겁게 하고 마귀를 몰아내고 죄없는 기쁨을 일으키는, 신학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자연의 소리, 언어를 뛰어넘는 환호나 외침 등도 하나님이 선물하신 음악의 한 종류로서 음악은 사람의 생각과 감각,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며 음악의 감정적 능력이 정신적, 영적 침체를 없애고 분노와 욕정, 교만을 사라지게 한다고 보았다.
또한 음악이 교육과 선교에 도움이 되며 하나님이 음악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과 옛 예언자들은 말씀을 음악화 시키기 위해 수많은 노래와 시편을 남긴 것이라고 믿었다. 칼빈은 시편과 칸티쿰만을 허용하였다. 그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말씀이었기에 새로운 음악을 시편 가사에 붙이는 것은 허락하면서도 새로운 작사는 금했고 다성부 합창은 말씀이 불분명해지므로 금하였다. 그리고 말씀이 실려질 수 없는 기악 음악은 전면 금지하였는데 그에게 있어서 악기는 교회를 치장하고 예배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장난감에 불과하였다. 그로 인해 하나님 경배가 세속화된다고 믿어 갈 3:23을 사용하여 구약에 많이 나타난 악기와 율법을 동시에 부정해 버렸다.
그는 단성부의 성악만을 교회에서 허락하였다. 칼빈은 예배 가운데 사용된 음악을 가리켜 '하나님을 우러러 찬양하는 뜨겁고 열렬한 열심과 더불어 인간의 가슴을 강렬하게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교회음악이 선교적 임무(사42:12)와 교육적 의무를 갖고 있다고 보고 청소년 교육과 교인들의 예배교육을 위해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음악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더 많이 우려한 쪽이었다. 쯔빙글리는 음악을 전면 부인하는 입장을 보였다. 쯔빙글리 자신은 음악성이 매우 높았던 사람으로서 상당한 음악교육을 받았고 악기도 잘 다루며 작사, 작곡도 했던 사람이었다. 그 역시 예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 선포였기에 단지 마음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도록 하였고(고전 14:15 아모스 5:23, 6:5) 등을 들어 교회에서 음악을 전혀 사용치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모스가 비난한 것은 인간의 쾌락을 위해 연주된 음악과 음악가들이었다. 따라서 아모스를 인용하여 교회안의 음악을 전면 거부해 버린 그의 입장은 지나치게 편협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한국의 교회음악을 위한 제안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신학자들 사이에 논의되어 왔고 현재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바로 찬양과 음악의 관계성과 그 방법론에 대한 것이다. 찬양에 있어서 일단 가사는 그리스도를 노래하느냐 복음을 왜곡하지 아니하느냐 하는 기준으로 그 찬송을 교회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의 여부에 확실한 대답을 줄 수가 있다. 그러나 거기 사용된 음악에는 어떤 일정한 기준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우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음악이 필수적이냐는 질문에서부터 어떠한 음악이 하나님 찬양에 적합한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옛 카톨릭 전통에서는 지나치게 전통적 음악을 고수하여 창조적 음악가를 용납하지 못하고 신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음악과는 동떨어지게 함으로써 교회음악의 발전적 측면과 신자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었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반대로 전통적 교회음악에는 관심이 적고 새로운 대중적 복음성가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대중적 복음성가는 그 가사의 내용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신학적 내용이 빈약하고 그 음악적 가치가 떨어지는 곡들이 매우 많다. 따라서 이러한 음악은 예배에 악영향을 미치고 예배의 가치를 저하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교회음악 분야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중요만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어렵다는 이유로 전통적 교회음악을 멀리할 것만이 아니라 배우고 보급하여 유구한 기독교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지고 불리워 왔던 훌륭한 교회음악들을 교회에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전통적 교회음악에도 쉽고 단순한 것들이 있어서 신자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것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대중음악적 교회음악을 신자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수용할 것이 아니라 정리하고 엄선해서 사용하도록 하며 지나치게 수준이 낮은 음악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교회음악의 분야에는 성악만이 아니라 기악도 있지만 기악이 사용되는 경우는 극히 미미하고 사용되는 경우에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클래식음악을 위한 악기보다는 경음악을 위한 악기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도 대중음악의 악기가 더 연주하기 쉽고 교인들이 그것을 더 선호한다는데 이유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기악에 대한 연구도 아울러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예배에 기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보다 아름답고 거룩한 예배가 이루어지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는 한국 자체의 토착적 신학을 정립하고 그 신학을 토대로 한 새로운 교회음악가들의 창작적 활동이 더욱 요구되어지며 한국적 교회음악의 토착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