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석유 봉원사 승려 이동인이 일본에서 들여온 최초의 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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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26. 22:30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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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석유
봉원사 승려 이동인이 일본에서 들여온 최초의 석유
요약 고종 17년인 1880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석유가 들어옴.
봉원사 승려였던 개화승 이동인이 일본에서 석유를 들여온 것. 성냥과 램프도 들여옴.
개화파 김옥균과 유대관계를 가지며 일본 지식인들과 교유하며 지냄.
왕족이나 친지들에게 소개, 이후에 일본을 오가는 무역상에게 부탁. 전국에 석유가 퍼짐.
석유는 왜 石油일까? 피마자를 짜서 만든 기름이 피마자유이고, 동백을 짜서 만든 기름이 동백유라면, 석유는 돌을 짜서 만든 기름이 라는 뜻이다. 처음 본 석유가 땅 속이나 바다 속에서 캐올려진 것이라는 말이 신기하다 보니 그런 명칭이 생겨났을 것이다.
실제로 석유 도입 초기에 그런 말이 있었다는 것을 저 유명한 황현의 「매천야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황현은 당시의 석유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언제 들어왔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석유는 영·미 등 제국에서 생산되는데, 혹자는 바다 가운데서 취한다 하고, 또 혹자는 석탄에서 빼낸다 하며, 또 어떤 이는 돌을 짜낸 것이라 하여 그 설명이 같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천연자원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 나라에서 경진년부터 이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붉은색이 나고 냄새가 고약했으며, 한 홉이면 열흘 밤을 켤 수 있었다.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색깔이 점점 희어지고 냄새도 좋아졌으나, 화력이 감해져서 한 홉을 가지면 겨우 3, 4일밖에 켜지 못하게 되었다. 석유가 나오면서부터 산이나 들판에 기름 짜는 열매는 번성하지 않게 되었으며, 온 나라 안에 석유로써 연등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되었다."
경진년이면 고종 17년으로 1880년을 가리킨다. 우리 나라에 석유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 바로 이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봉원사 승려였던 이동인이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또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박영효 등 개화파 인사들과 관련된 일화에도 이동인이 일본에서 석유를 들여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동인은 흔히 개화승으로 알려져 있다. 개화파들과 어울려 노쇠한 조선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려던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그가 개화사상에 빠지게 된 것은 일본 하나부사 공사를 따라온 우리말 통역관 풍현철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풍현철은 공교롭게도 이동인과 같은 승려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이동인은 그로부터 우선 일본어를 배워,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일본의 사정에 눈뜨게 되었다.
이후 뜻이 통하던 동지 유대치를 통해 김옥균을 소개받고 개화가 무엇인지를 역설한다. 김옥균은 이동인을 일본에 보내 서적을 구해오게 해서 개화파 동지들과 돌려보기도 했다.
이동인은 김옥균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면서 일본에 가 그곳 지식인들과도 교유했다. 그때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왔다. 1880년의 일이었다. 이동인은 김홍집과 함께 돌아왔는데, 이때 그 자신도 처음 본 물건들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것들은 실제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개화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그 물건들 중에 바로 석유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가 가지고 들어온 것들은 석유 이외에 성냥도 있었고, 램프도 있었다.
이동인은 이 물건들을 그가 알고 지내는 왕족이나 친지들에게 보여주었다. 처음으로 보는 그 물건들은 진기할 뿐만 아니라, 양만 많다면 여지껏 사용하던 등화기구보다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때의 소개는 강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당연히 일본을 오가는 무역상에게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에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은 대개가 장사꾼이었다. 그것도 싸구려 약장수가 많았고, 과자나 직물을 파는 떠돌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일본에서 석유와 램프 그리고 성냥을 수입해오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들만 취급한 상인들은 단번에 돈을 모았다. 석유가 전국에 퍼지게 되자 일본과의 교역품 중에 그것들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매천야록」에 나오는 석유는 바로 이때의 석유를 말하는 것이다.
한편 이동인은 정부의 비밀요원으로 일본에 가 무기를 들여오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의 종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1881년 다시 시찰차 일본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기록에서 없어지고 말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석유 - 봉원사 승려 이동인이 일본에서 들여온 최초의 석유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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