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쉐
모쉐는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숨겨진 결말
모쉐의 오경은 그 이름을 딴 예언자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데, 토라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결말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의 책들은 종종 주요 인물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데, 이러한 특징은 책을 마무리하면서도 후속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는 문학적 코다(literary coda)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모쉐가 『데바림』에서 행한 마지막 연설에 대한 만족스러운 후주 역할을 하기보다는, 이 지도자의 마지막 여정을 기록한 이 본문은 독자들에게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남깁니다(신명기 34장):
신명기 34:1- “모쉐가 모압 광야에서 네보 산, 여리고 맞은편 피스가 산꼭대기로 올라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온 땅을 보여 주셨으니, 단까지 이르는 길르앗과, 34:2 납달리 온 땅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땅과, 서해까지 이르는 유다 온 땅과, 34:3 네게브와, 야자나무가 우거진 성읍 여리고의 골짜기인 평야를 지나 소아까지. 34:4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땅이 바로 내가 아브라함과 이쯔학과 야아콥에게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이다. 내가 네가 이 땅을 네 눈으로 보게 하였으나, 너는 그곳으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다.”
34:5- “여호와의 종 모쉐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그곳, 곧 모압 땅에서 죽었다. 34:6 여호와는 그를 모압 땅 베트-페오르 근처 골짜기에 장사 지냈으나, 오늘날까지 아무도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34:7 모쉐가 죽을 때 나이는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은 여전히 밝았고 기력은 여전히 쇠하지 않았다. 34:8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압 광야에서 삼십 일 동안 모쉐를 애도하였다. 모쉐를 위한 애도와 애도 기간이 끝났다.”
이야기의 빈틈
신명기 34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많은 의문점이 남습니다
.
잃어버린 무덤
• 모쉐의 무덤 주변에 대해서는 그토록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정작 무덤의 정확한 위치는 왜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요?
• 토라가 굳이 이 점을 지적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위치를 알 수 없게 된 고대 유적지가 많았을 텐데, 왜 하필 이 곳만을 언급한 것일까?
• 라헬과 같은 다른 인물들의 (추정되는) 무덤은 잘 보존되었는데, 모쉐의 마지막 안식처만은 보존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 토라는 왜 이 같은 정보의 부재에 대해 그토록 단호하게 확신에 찬 어조로 주장하는 것일까?
죽음과 장례에 관한 세부 사항
• 1절에서 모쉐가 네보 산에 올랐다면, 6절에서 어떻게 그 아래 계곡에 묻히게 되었는가?
• 그는 정확히 어디에서 생을 마감했는가—산 위에서, 계곡에서, 아니면 그 중간 어딘가에서?
• 그는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 의해 마지막 안식처로 옮겨졌는가?
• 6절에서 모쉐를 매장한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그”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가 불완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1장에 나오는 모쉐의 청년 시절과 성장 과정에 대한 서사와 마찬가지로, 모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빈틈이 많고 중요한 세부 사항이 빠져 있습니다.
텍스트의 공백에 대한 중세와 현대의 접근법
지난 2천 년 동안 랍비적 미드라쉬는 성경 독자들에게 히브리어 성경 본문의 공백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어 왔습니다. 하잘(chazal)이 모쉐, 아브라함 및 기타 성경 인물들의 초기 생애에 대해 들려주는 정교한 이야기들은 기록된 토라(תורה שבכתב)의 빈틈과 균열을 지적하며, 성경 서사의 상당 부분이 우리가 전승받은 본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부분이 왜 누락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추측만 할 수 있지만, 현대 성경 학문은 고전 유대교 주해의 통찰력을 활용하여 호기심 많은 독자들이 이 서사들의 누락된 부분을 복원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 이러한 공백에서 제기되는 의문들에 답할 수 있게 해줍니다.
“조상들의 행적은 자손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중세, 현대, 그리고 비평적 접근
초기 랍비 문헌을 바탕으로, 중세 주석가 나흐마니데스는 성경 초반부에 등장하는 사건, 주제, 이야기들이 종종 다른 등장인물과 다른 배경 속에서 후반부 서사에서 반복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람반은 창세기 12장 6절과 12장 11절에 대한 주석에서 이러한 관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조상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자손들에게 주는 징표이다.”
후대 사람들은 람반의 이 원칙을 “מעשה אבות סימן לבנים -마아쎄 아보트 시만 라바님”으로 재구성했으며, 이는 전통적인 유대교 신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를 들어, 람반 자신은 이 개념을 신정론의 근거로 삼아, 후대 사람들이 조상들의 죄로 인해 어떻게, 그리고 왜 고통을 겪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현대 성경 연구자들, 특히 고전적 정통파 진영의 많은 학자들은 ‘מעשה אבות -마아쎄 아보트’를 세밀한 독해의 문학적 도구로 활용하여, 서사가 이전 텍스트를 어떻게 차용하고 변주하는지 분석합니다. 현대 비평 학계는 이러한 방법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후대의 성경 이야기들은 종종 이전 서사들의 반영이기 때문에, 이러한 후대 서사들은 텍스트에서 누락되거나 상실된 부분을 복원하고 재구성하는 비평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모쉐를 본뜬 지도자들의 이야기
모쉐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기 때문에, 성경에 등장하는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현대의 모쉐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존 F. 케네디나 로널드 레이건의 환생인 양 자신을 내세우는 많은 현대 정치 지망생들 사이에서 비슷한 본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물들의 삶을 기록한 서사들은 그들의 전기를 모범이 되는 선구자의 삶을 닮도록 더욱 다듬어, 후계자가 원조와 동일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잠재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모쉐의 제자 여호수아의 삶은 그의 스승의 삶과 매우 유사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물에 젖지 않고 건널 수 있도록 물을 갈라놓았습니다(수 3장, 출 14장); 여호수아는 신의 현현을 만나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수 5:13-15, 출 3:1-6);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 땅에 들어가기 전에 정찰병을 보내 땅을 정찰하게 합니다(수 2, 민 13).
마찬가지로 선지자 엘리야의 삶도 모쉐의 삶과 밀접하게 닮아 있습니다. 더 높은 대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후, 엘리야는 보복으로 그를 죽이려는 이세벨 여왕을 피해 도망칩니다. 이는 파라오가 모쉐를 쫓은 일과, 모쉐가 이집트인을 죽인 후 도망친 일과 유사합니다(열왕기상 19:1-3, 출애굽기 2:12-14).
두 경우 모두 도망자는 덤불 앞에 이르렀고(열왕기상 19:4, 출애굽기 3:1-2), 호렙(=시나이)에 도착할 때까지 광야를 방황했습니다(열왕기상 19:8, 출애굽기 3:1[8]). 그곳 산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임재가 그 곁을 지나가실 때 계시를 받습니다(열왕기상 19:11 이하, 출애굽기 33:21-22, 34:6 이하). 모쉐(와 여호수아)와 마찬가지로 엘리야도 큰 물길을 갈라놓고 그 사이를 지나갑니다(열왕기하 14:21 이하).
모쉐와 엘리야의 죽음: 유사점이 있을까?
엘리야의 지상 생애의 끝은, 모쉐 이후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열왕기하 2장, 신명기 34장), 그의 제자 엘리사가 후계자로 지명됨으로써 마무리 됩니다. 게다가 열왕기하 2장 8절에 제시된 지리적 정보를 통해, 선지자 엘리야가 지상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낼 때 정확히 느보 산 인근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두 이야기는 갈라집니다. 신명기 34장은 모쉐의 죽음을 서술합니다. 반면 열왕기하 2:1은 엘리야의 죽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가 불타는 병거를 타고 살아있는 채로 하늘로 승천했다고 전합니다.
엘리야의 기적적이고 거의 유례없는 승천 이야기는 이미 성경 시대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탈무드와 그 이후의 유대 전설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유대교의 전승과 관습에서 엘리야는 가난한 이들을 돕거나, 브릿 밀라(할례식)에 참석하거나, 유월절 세데르에 방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재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다른 성경 인물들을 제한하는 죽음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인 점이 적지 않게 작용합니다.
엘리야의 이야기 중 모쉐의 생애와 유사한 에피소드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나는 엘리야가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하늘로 승천한 이야기가 모쉐의 생애에서 그 전형을 찾았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율법 제정자가 아닌, 비교적 미미한 예언자에 대해 그토록 기념비적인 최후가 전해졌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모쉐의 죽음은 불가능하다
사실, 일부 랍비 시대 이전 및 랍비 시대의 문헌들은 모쉐가 죽었다는 개념에 어려움을 느끼며,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 개념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쉐의 죽음을 재구성한 제 2성전 시대(혹은 제 2성전 이후)의 묵시록적 저작인 『모쉐의 승천(Assumptio Mosis)』에서, 모쉐가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알리자 여호수아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11장):
“5 어떤 곳이 당신을 맞이할 것이며, 6 당신의 무덤에는 어떤 기념비가 세워질 것이며, 7 또 어떤 인간이 감히 당신의 시신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8 때가 되어 죽는 모든 사람은 땅속에 무덤을 갖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무덤은 동쪽에서 서쪽까지, 북쪽에서 최남단까지 뻗어 있습니다. 온 세상이 당신의 무덤입니다.
여호수아의 반응은 그가 모쉐의 죽음을 불가능한 일로 여겼음을 암시합니다. (작성 연대가 불분명한) 랍비 문헌인 『미드라쉬 페티라트 모쉐』에서는 천사들의 입을 빌려 비슷한 생각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모쉐)가 죽음을 받아들인 후, 지극히 거룩하신 분께서 미카엘과 가브리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모쉐의 영혼을 내게 데려오라.” 가브리엘이 말했다. “60만 명에 맞먹는 한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데려올 수 있겠습니까? 그가 보기에 제가 경솔한 자로 여겨질 텐데 말입니다.” 그 후 그는 이 말을 미카엘에게 전했고, 미카엘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말을 잔가지엘에게 전했고, 잔가지엘은 말했다. “우주의 주인이시여, 저는 그의 스승이었고 그는 제 제자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의 영혼을 데려올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우리는 모쉐가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당혹감을 목격합니다. 따라서 나는 모쉐의 승천 이야기의 세부 사항이 토라에서 생략되어 결국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모쉐가 죽었다는 개념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여전히 문제시되었으며, 정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을지라도 그가 실제로는 결코 죽지 않았을 가능성은 대중의 의식 속에 남아 있었다고 제안합니다.
모쉐의 승천?
만약 모쉐가 실제로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께로 데려가졌다면, 신명기 34장의 본문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쉐의 무덤이 왜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알 수도 없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쉐를 “장사 지낸” 그 신비로운 “그”는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 후자의 해답은 이미 전통적 및 현대 주석가들에 의해 제시된 바 있지만, 이제 우리는 모쉐가 생을 마감할 때 그를 돌보신 분이 오직 전능자이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모쉐의 천상 승천에 관한 원래 이야기는 그의 생애 마지막을 전하는 현존하는 구절들 속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누린 그 고귀한 최후에 대한 그러한 서사가 왜 토라의 결론 부분에서 생략되었을까요?
이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고전 유대교 문헌의 통찰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중세 주석가 랄바그(Ralbag), 즉 레비 벤 게르숀(Rabbi Levi ben Gershon) 랍비는 토라가 왜 모든 예언자 중 가장 위대한 자에게 이 땅에 무덤이 남지 않도록 했는지에 대해, 오늘날 잘 알려진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하쉠, 그분께서 높임을 받으시기를,은 [모쉐의] 매장지를 아무도 영원히 알 수 없도록 정하셨으며, 하쉠, 그분께서 높임을 받으시기를,은 그 장소가 알려질 경우 후세 사람들이 [그 무덤을 성지로 만들고] 그곳에서 그를 신으로 숭배할까 봐 이렇게 하셨다…”
랄바그는 토라가 모쉐의 신격화와 숭배, 그리고 그의 무덤에 대한 숭배를 우려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파악했습니다. 더 깊은 우려는 그를 천상의 법정 구성원으로서 숭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모쉐와 엘리야를 본보기로 삼은 예슈아
신약성경의 저자들, 특히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슈아의 생애를 모쉐의 생애를 본보기로 삼아 묘사했습니다. 이는 히브리 성경에 익숙한 유대인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초기 시도였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미래 구세주가 최초의 구원자와 닮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복음서의 이야기는 마태복음 17장에 기록된 ‘변모’(transfiguration)로 알려진 사건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1 엿새 후에 예슈아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을 데리고 그들만 따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2 거기서 그들 앞에서 예슈아의 모습이 변하셨다. 예슈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고, 옷은 빛처럼 하얗게 되었다. 3 바로 그때 모쉐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슈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구절이 예슈아의 승천을 예표하는 맥락에서 배치되고 그 목적을 고려할 때, 이 구절은 결코 죽지 않은 세 이스라엘인의 삼위일체라는 주제를 전개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기록 된 토라가 모쉐의 신격화를 피하기 위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쉐가 마지막으로 하늘로 승천했다는 구전 전통은 제 2성전 시대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죽지 않은 그들의 지도자의 신성에 대해 예슈아의 추종자들이 결국 취하게 된 관점을 고려할 때, (랄바그가 설명한 대로) 토라가 제기한 우려는 타당한 근거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By Rabbi Eric Grossman (a fellow at the Hartman Institute and at the 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 at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and is a two-time recipient of the Hebrew University Bible Prize as well as the Claus Nobel Educator of Distinction award)
▶글 전체 목차는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