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8일(주)
* 시작 기도
(단 3:23, 25)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주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금 신상을 만들어 두라 평지에 세웠습니다.
이는 곧 어떤 우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신임을 자처하는 신상입니다.
낙성식에서 각종 악기 소리가 울려퍼질 때 모든 백성들은 금 신상에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려 경배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고 이를 본 바벨론 사람들이 왕에게 참소하였습니다.
왕이 그들을 좋은 말로 회유하였으나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비록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은 열 받아서 그들을 부르고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불에 처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네 사람이 결박되지 않은 채로 돌아다녔습니다.
왕의 고백으로는 그 네 번째 사람은 마치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신학적으로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오늘 주님의 날에 각처에서 예배하는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대상 27:25-34
제목 : 다윗의 숙부 요나단은 지혜가 있어서 모사가 되며 서기관도 되었고
25 아디엘의 아들 아스마웻은 왕의 곳간을 맡았고 웃시야의 아들 요나단은 밭과 성읍과 마음과 망대의 곳간을 맡았고
26 글룹의 아들 에스라는 밭 가는 농민을 거느렸고
27 라마 사람 시므이는 포도원을 맡았고 스밤 사람 삽디는 포도원의 소산 포도주 곳간을 맡았고
28 게델 사람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란나무와 뽕나무를 맡았고 요아스는 기름 곳간을 맡았고
29 사론 사람 시드래는 사론에서 먹이는 소 떼를 맡았고 아들래의 아들 사밧은 골짜기에 있는 소 떼를 맡았고
30 이스마엘 사람 오빌은 낙타를 맡았고 메로놋 사람 예드야는 나귀를 맡았고 하갈 사람 야시스는 양 떼를 맡았으니
31 다윗 왕의 재산을 맡은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32 다윗의 숙부 요나단은 지혜가 있어서 모사가 되며 서기관도 되었고 학모니의 아들 여히엘은 왕자들의 수종자가 되었고
33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
34 브나야의 아들 여호야다와 아비아달은 아히도벨의 뒤를 이었고 요압은 왕의 군대 지휘관이 되었더라.
* 나의 묵상
역대상 27장은 다윗의 군사조직과 기타 재산관리자에 관해 기술한다.
1-15절은 매달 교체한 반 지휘관들의 명부이며, 16-22절은 지파의 지도자에 대한 명부이다.
23-24절의 삽입구는 불완전한 인구조사에 대해 언급한다.
25-31절은 왕실 재산관리자들의 명부이고 32-34절은 다윗의 개인 고문의 명단이다.
23-24절은 불완전한 인구조사를 해명하고 있다.
이 짧은 이야기는 나라 전체의 인구수가 왜 밝혀지지 않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20세 이하의 사람들은 계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 이하를 계수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로 나온다.
하나는 다윗이 이스라엘 사람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인구조사를 기뻐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진노가 나라에 임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이유는 서로 상충하는데, 다윗을 중심인물로 고양하는 역대기 사가의 해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5-31절은 다윗 왕실의 재산관리자의 명부이다.
다윗 시대에는 솔로몬 시대와 달리 세금에 대한 지시가 별도로 없다.
다윗의 필요한 재정은 주로 정복해서 가져온 전리품으로 충당되었다.
전리품은 여호와께 바쳐졌지만, 일부 토지와 가축, 낙타 같은 재산은 왕실용으로 귀속되었다.
전리품을 두는 창고는 예루살렘과 지방 두 곳에 있었다.
아스마웻은 예루살렘(왕실)에 있는 창고를 맡았고, 요나단은 지방에 있는 것을 맡았다(25절).
왕실 재산도 중요했지만, 농부, 포도주의 가공과 저장에 관련된 포도원, 올리브와 무화과 숲, 가축의 방목장, 그리고 낙타와 암나귀 등 모두 중요했다.
이에 이런 것들을 맡을 사람들이 임명되었다(26-31절).
32-34절은 다윗을 위한 개인 고문의 명부이다.
다윗에게는 공적 관리나 행정 관리 외에 개인 고문이 있었다.
다윗의 숙부 요나단은 지혜가 있어서 다윗 왕의 모사가 되었다.
여히엘은 왕자들을 맡아 그들의 교육과 양육을 담당하였다.
아히도벨도 왕의 모사가 되었는데,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 그의 편에 섰다가 자살하였다.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 그에게 조언하여 다윗을 구했다.
아히도벨이 죽은 후 브나야의 아들 여호야다와 아비아달이 그의 뒤를 이었다.
요압은 왕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다윗 왕국을 세우고 존속하기 위해 여러 임무를 위해 여러 사람이 임명되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하지만, 공동의 목적은 다윗의 나라를 세우는 데 있다.
그런데 지상에서 세워진 다윗의 나라는 유한하였다.
솔로몬 이후 쇠락의 길을 갔고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B,C, 586년).
구약에서 말하는 다윗 왕국은 그의 씨에서 날 자를 통해 세워질 나라를 예시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씨에서 나셨고(롬 1:2), 영원히 견고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다.
이제 그의 죽음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된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벧전 3:18a)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 나라를 성취한 구원의 사건(복음)이다.
그것을 믿는 자 곧 그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자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의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롬 4:25-5:2)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꾼으로 부름 받은 자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다.
다윗의 나라를 위해 여러 사람이 여러 모양으로 섬기듯이, 여러 사람이 여러 모양으로 섬긴다.
직분은 다양하고 직무도 다양하지만 한 몸의 여러 지체가 되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고전 12: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럽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비천하게 보이는 ‘종’으로서 섬긴다(롬 1:1)
한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데 종들 사이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일을 맡든지 차별이 없으며 다만 그 일에 대해 충성만이 요구된다.
그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견고히 세워진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나는 말로는 주의 종(從)이라 하면서도 그 말에 왠지 불편함이 있었다.
주의 從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감상 종이 아니라 주의 사자(使者) 정도는 돼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대표기도 하는 분들은 그런 불편함을 덜기 위해서 목사를 지칭할 때 주의 종이라 하지 않고 주의 사자라고 칭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는 단지 사람 목사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그의 가치를 높여 주는 것을 위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그런 자였던 것이다.
나는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서거나 그런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선호하였으며 또한 자랑하는 자였다.
어쩌면 내가 늦깎이로 목사가 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목사는 일단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공로나 업적이 없을지라도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기도 하고 인정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리가 높아지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만큼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로서 져야 할 책임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진짜 從으로서 행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언행일치가 되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허다했다.
말은 그럴싸하게 해놓고는 그 일이 좀 부담스럽다 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시해버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從으로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섬김을 받으려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당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셨는데 말이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하다.
내가 감히 어디서 섬김을 받으려 한단 말인가?
나는 날마다 성도들의 말씀의 지팡이가 되어 그들의 휜 허리를 곧게 펴주는 역할을 하되 從의 삶을 살기 원한다.
어제는 머리가 너무 길어서 거트를 하러 미용실엘 갔다.
미용실 원장님이 머리를 깎아주는데 어찌나 섬세하게 하는지 진짜 외과의사나 미용실 원장님의 경우 수전증이 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미용실 원장님은 갑자기 살을 뺀 탓인지 너무나 여리게 보였다.
하여 일을 하기 위해서 서 있기조차 힘들 것 같아 보였다.
그럼에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항상 밝게 웃는 상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남을 섬기는 직업을 가진 이로써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말로 진짜 섬기는 자로 서야 하는데 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은 이름도 없는 무명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빠짐없이 물을 길러 야곱의 우물에 왔습니다.
그것도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한낮 정오에 말입니다.
이를 유추해 보건대 이 여인은 아마도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한 여인 같습니다.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말이 곧 예수님께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을 때 그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이미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있는 한 남편 역시 그의 남편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들과 상종하지 않는 유대인으로만 알고 있던 이 여인은 그 분이 바로 선지자요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자기 동네로 뛰어 가서 자기가 만난 이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이런 자가 진짜 종임을 믿습니다.
주의 종은 주님이 하라고 하신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한낱 무명의 여인에 지나지 않지만 그 여인은 자기의 생명을 이어주는 물동이조차 버려둔 채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보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이틀을 유했습니다.
주의 종은 주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뜻을 좇아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내 뜻이 아닌 오직 주님의 뜻을 말입니다.
오직 내 안에 우리 주님의 뜻이 오롯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