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사자성어 ‘過而不改’
교수들 선정 “소인배 정치 비판”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11일 교수신문에 따르면 전국 대학교수 93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50.9%(476명)가 ‘과이불개’를 올해의 사자성어 1위로 꼽았다. 이는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처음 등장하는 표현으로, 공자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시위과의(是謂過矣)”라고 말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잘못이다’라는 의미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장)는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은 없다”며 “그러는 가운데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려는 정치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소인배 정치를 비판했다. 한 교수는 “잘못하고 뉘우침과 개선이 없는 현실에 비통함마저 느낀다”고 밝혔다. 또 다른 교수는 “진영 간 이념 갈등이 고조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 일단 우기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2위는 ‘욕개미창(欲蓋彌彰·14.7%)’이다. ‘덮고자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으로 잘못을 감추려 할수록 오히려 드러나게 됨을 비유한 고사성어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년 사회상이 담긴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조유라 기자
과이불개
공자의 가르침을 모은 ‘논어’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노력을 강조한 구절이 곳곳에 나온다. 군자는 ‘잘못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고치고(過則勿憚改)’, 제자 안회는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不貳過)’라고 칭찬받았으며,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잘못(過而不改 是謂過矣)’이라고 했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과이불개’는 논어의 ‘위령공편’에 등장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과오가 없을 순 없지만 이를 스스로 감당하지도, 고치지도 않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잘못이라는 뜻이다. 선정에 참여한 교수들은 학계의 연구 윤리 문제와 함께 반성 없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었다. “많은 사람이 잘못됐다고 하는데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할 이유도, 고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될 것 같아 우기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장)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잘못을 고쳐 좋은 쪽으로 옮겨간 사례가 여럿 있다”며 세종의 예를 들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간 권희달이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자 “사람을 잘못 알고 보낸 것이 심히 후회된다”고, 역병이 돌았을 땐 미리 예방하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한다”고 했다. 군자감(군량미와 군수품 담당 관청) 붕괴사고 때는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으로 이후 세종 재위 기간 내내 비슷한 참사는 반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의 사자성어 2∼5위에 비친 한국 사회도 암울하다. 2위는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의 욕개미창(欲蓋彌彰). 과이불개하고 덮으려고만 하니 계란을 쌓아 놓은 듯 위태롭고(累卵之危·누란지위·3위),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하며(文過遂非·문과수비·4위)’, 눈먼 자들이 코끼리 만지듯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한다(群盲撫象·군맹무상·5위). 제 역할을 못하는 지식인에 대한 자성도 담아 선정한 사자성어들이다.
▷지난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한 것을 부수고 생각을 바르게 한다)’엔 촛불 시위로 들어선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부정적인 사자성어가 꼽히더니 2020년엔 ‘내로남불’ 세태를 꼬집은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2021년엔 ‘묘서동처(猫鼠同處·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 패가 됐다)’가 선정됐다. ‘과이불개’로 시작한 새 정부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하여 해가 갈수록 희망적인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되길 바란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