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칭기즈 칸 사망 당시 몽골 제국의 영토
위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칭기즈 칸은 20세기 초까지 등장했던 어떤 정복자보다 넓은 영토를 정복했습니다.
정복한 영토도 당시 일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들이였고 이 말은 즉, 그만큼 전투를 많이 치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국토 확장이 가능 했던걸까요?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1. 몽골군의 대표 전술
몽골군은 처음으로 대규모 정규군의 작전개념을 적용시킨 군대로 진화된 전술과 전략 덕분에 방대한 지역을 마구잡이로 정복해 가지 않고 여러 전선에 걸쳐 단계별로 확장했습니다.
몽골군의 주력부대는 경장궁기병으로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에 말을 타며 활을 쏘는 병과입니다.
그들의 전술은 각 전사들의 뛰어난 활솜씨와 기동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였습니다.
보통은 적의 사거리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차례로 히트앤런 방식(치고 빠지는 전술)으로 화살을 퍼붓습니다.
몽골군은 화살 사거리안에서만 전투를 시작했는데 화살 세례로 적의 대열이 무너져서 치명타를 가할 때에만 근접전을 펼쳤습니다.
적 앞에서 후퇴하기도 했는데 이 때에도 파르티안 샷(적을 유인하면서 등을 돌리거나 말에 매달려 화살을 쏘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쐈습니다.
적을 충분히 유인해서 기동력이 딸린 부대와 기동력이 좋은 부대가 일렬로 나눠지면 나머지 부대들이 그들을 포위해 전멸시켰습니다.
이런 전투방식은 기습, 매복, 포위전술을 곁들일때 더욱 효과적이며 적이 아무리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어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었습니다.
2. 화살세례
화살세례는 몽골군이 가장 즐겨하던 전술입니다. 그들은 적을 포위한 후에 마치 메뚜기 떼가 하늘을 덮는 듯한 엄청난 화살을 퍼붓습니다.
3. 공성무기
몽골군이 화살만 잘쓴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공성무기도 잘 다뤘습니다.
1221년 니샤푸르를 포위했을때 3천개의 석궁과 300대의 투석기로 함락을 시켰다고 합니다.
4. 선회전술
몽골군의 1개 중대는 80명의 경기병과 20명의 중기병으로 구성됩니다.
각 중대는 한 번의 공세에 20명을 내보내고 한 번 나갈때마다 여러 발의 화살을 쏜 후에 가장 마지막 대열 뒤로 돌아옵니다.
말도 여러마리를 준비했다가 새로운 말로 바꿔 타며 선회전술 속도를 유지합니다.
기병 한 명이 60발의 화살을 준비해두기 때문에 거의 한 시간 이상의 화살 세례를 퍼부을 수 있습니다.
5. 파비안 전술
몽골군도 항상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전투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파비안 전술은 아예 적과의 교전을 피하는 것입니다.
몽골군은 보통 작은 단위로 나뉘어져 있어서 포위 당하는 것을 피하다가 서로 신호를 보내어 한 곳으로 결집합니다.
이때 기회다 싶을때에는 큰 무리를 이루어 적에게 기습을 가합니다. 특히 적이 야전이나 공성전에서 일부로 몽골군이 주변을 서성이면서 활로 300m밖에서 저격을 시도 하는데 이 때 적들은 굉장한 피로가 누적 되어집니다.
6. 측면공격과 이중포위 전술
칭기즈 칸은 포위 전술을 좋아했는데 적의 측면이나 후위가 노출된 경우 또는 성을 공격할 때에 그리고 적이 약해졌을때 포위를 합니다.
몽골군은 정면에서 위장공격을 하고 여러 방향에서 공격해서 자신들이 포위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일부로 포위망을 완성시키지 않고 일부로 한쪽을 열어둡니다.
활로라고 생각한 그곳은 함정이 되는데 아무리 적들이 도망간다고 해도 기동력이 빠른 몽골군의 추격을 벗어나긴 힘들며 그 순간 학살이 시작됩니다.
이 모든 전술들 자체로도 물론 대단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했던건 몽골군 개인의 역량이 어마어마 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