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화요일 강론>(2024. 1. 23. 화)(마르 3,31-35)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예수님께서그들에게, “누가내어머니고내형제들이냐?” 하고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1-35)”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가족’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구원받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말 때문에,
이 말씀은 산상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예수님의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라고 해서, 또 예수님과
잘 아는 사이이고, 예수님과 친한 사이라고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나라는 자격을 갖춘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인데,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그 ‘자격’입니다.
도대체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마태오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이 이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하느님의 뜻’은 ‘모든 사람의 구원’입니다.
<각 개인의 입장에서 표현하면,
“하느님의 뜻은 ‘내가’ 구원받는 것이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다는 것은 곧
‘구원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구원받기를 희망하고,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그 나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라고 해도 어떤 특권이나 특혜 같은
것은 없고, 무임승차도 안 된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이 가르침에서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루카 17,34-35).”
한 침상에 있는 두 사람은 부부입니다.
부부라고 해서 하느님 나라에 함께 들어가거나
함께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있는 사람만 들어가고,
자격이 없는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함께 맷돌질을 하는 두 여자는 어머니와 딸이거나 자매이거나
시어머니와 며느리인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판 날’이 되면 이산가족이 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들의 가정을 해체하고,
식구들을 갈라놓는 것이 심판의 목적은 아닙니다.
가족이 모두 함께 구원받고, 모두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주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원하실 것입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영적 동반자이고, 신앙의 동료입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은 식구들입니다.
가정과 식구들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고, 또 중요한 일입니다.
혹시 신심과 기도의 수준이 아직 초보 단계에 있더라도,
기복신앙이라고 남들이 비웃더라도,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멈추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아주 높은 수준에서
기도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당장 급하고 간절한 소원을 비는 것에서부터
기도생활을 시작하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14).”
<‘무엇이든지’는 “선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입니다.
가족의 건강, 시험 합격, 취업 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선한 일이고, 필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바로 앞에 있는 21절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여기서 ‘미쳤다.’ 라는 말은 ‘마귀 들렸다.’ 라는 뜻입니다.
<뜻에 따라 문장을 조금 재구성하면, “예수님이 마귀 들렸다는
소문을 친척들이 듣고서,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입니다.>
예수님이 마귀 들렸다는 말은, 바로 뒤의 22절에 있는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 라는 율법학자들의 말에 연결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그런 소문을 듣고서 예수님을 고향으로
데리고 가려고 찾아 나섰는데, 그게 잘 안 되자
성모님을 모시고 다시 온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성모님께서는 그런 소문 자체를 안 믿으셨을 것이고,
‘직접 보고’ 판단하라고 친척들을 타이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마귀가 들렸다고 말하는 자들을 향해서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9).”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당신의 친척들(가족들)을 겨냥해서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출처] 연중 제3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