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무
강 문 석
이른 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예순의 막내처제가 말했다. “형부, 목재체험관 가면 사진 찍을 거 정말 많아요. 안 가봤지요?” 오늘은 그 코스를 가볼 요량으로 꺼낸 말이지만 혹시 싫다고 할까봐 내가 매달리는 사진촬영까지 들먹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우린 집을 나섰다. 처제가 사는 창원 도심의 상남동을 벗어나 진해로 질러갈 수 있는 안민터널만 지나면 곧바로 나타날 줄 알았는데 목재체험관은 진해 시가지에서도 동쪽으로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연도에 늘어선 벚나무 가로수들은 곧 터질 듯한 꽃망울들을 매달고 개화시기를 재고 있었다. 화사한 벚꽃 잔치로 펼쳐지는 진해군항제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기에 벚나무들은 그때를 기다리는 게 분명했다. 동승한 세 여자에게 다음 달 초하루에 개막되는 군항제 행사를 알렸지만 아내와 서울에서 온 모니카 처제, 차량 운전대를 잡은 마리아 처제는 오랜만에 만나 밀린 얘길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원한 진해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바지에 앉힌 목재체험관은 위치부터가 압권이다.
체험관은 단층 건물 안에 꾸몄는데도 노천에다 설치한 것처럼 '체험장'이란 간판을 붙여놓고 있어서 뜨악했다. 실내에 들어선 체육시설을 '체육관'이라 부르지 않고 그 누가 '체육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던가. 봄의 전령인 개나리와 진달래를 빼고는 아직 꽃들은 피지 않았지만 훌륭하게 꾸민 조경이 탐방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제 온종일 수도원 피정의 여독이 덜 풀렸는지 막내처제는 우리 세 사람에게만 산책로를 둘러보라고 일러주고 본인은 빠지고 말았다.
막내의 안내와 해설을 기대했다가 셋은 갑자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체험관을 찾은 이들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피톤치드의 보고라는 편백나무 숲은 그 잎들이 검게 보일 정도로 튼실했다. 진해 시가지와 떨어져 공해가 없는데다가 전형적인 배산임수 명당자리라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으리라. 숲을 관통하는 탐방로를 한 바퀴 돌아 체험관으로 들어섰다. 체험관은 근년에 만들어진데다가 관리를 잘해서 무척 쾌적했다.
전시관 입구엔 어딜 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홍보자료가 전혀 비치되어 있지 않았고 안내인도 자리를 비우고 있었지만 난 방명록에다 이름과 주소를 남겼다. 유치원에서 단체로 온 햇병아리들이 인솔교사를 따라 재잘대며 들어서고 있었다. 사오 세 때부터 저렇게 숲을 견학하면서 나무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면 저들의 삶엔 색다른 무늬가 입혀질 수 있을 것이다. 꼬맹이들 중에서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걸 본 녀석이 잽싸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모두들 그 말을 합창하듯 따라했다.
그러고 모처럼의 봄 소풍에 기분이 들떴는지 녀석들은 연신 싱글벙글하며 즐거운 표정들이다. 나도 그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손을 흔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무는 인간에게 필요한 원료를 공급하면서 무려 5천여 가지 제품으로 만들어지지만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선사시대부터 불을 피우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나무는 실제로 각종 도구는 물론 운송수단과 주거공간을 만드는 데까지 이용되었고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목재체험관이 탐방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인류의 생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무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생활 곳곳에 스며있는 그 쓰임을 체험해 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북 안동에 있는 산림박물관에 비하면 체험관은 나무 체험설비가 빈약하기 짝이 없어서 그러한 권유가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재래식 벌목은 도끼나 톱을 주로 사용해왔지만 이젠 목재를 실어 나를 차량에 부착된 동력 체인 톱으로 완전 자동화된 벌목작업을 자주 만나게 된다.
시베리아나 인도네시아 캐나다와 같이 목재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에서 새로 나온 장비로 벌목하는 장면을 홍보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으로 동영상을 배포한 덕분이다. 나무를 길이 방향으로 넓게 나누는 것을 켠다고 하고 원통형의 짧은 방향으로 동강내는 것을 자른다고 하는 것은 상식으로 굳어버린 지 오래다. 나무의 역사 8억년은 물에 떠다니던 녹조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세포 녹조류는 지구상에 존재한 최초의 식물로서 엽록소를 가지고 있으며 광합성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험관은 관다발식물과 양치식물 겉씨식물 속씨식물 선태식물도 설명해준다. 주로 양분을 이동하는 체관부와 물과 무기양분을 이동하는 물관부로 구성된 것이 관다발식물이다. 양치식물은 무성적 생식세포인 포자로 번식하는 고사리와 석송이 있다. 씨를 가진 종자식물로 밑씨가 씨방에 있지 않고 밖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겉씨식물이며 꽃을 가지며 밑씨가 씨방 안에 들어있는 것이 속씨식물이다. 첨단과학이 지배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들 생활 속의 희로애락을 통해 접하는 나무들도 있다.
장승과 솟대와 성황당이 바로 그것들이다. 장승은 주로 소나무나 참나무로 깎아서 만들면서 한 쌍의 부부 신으로 마을 입구에 세운다. 잡귀와 재액을 쫓기 위해 무사나 장군 등 무서운 모습으로 만든다. 솟대는 마을 공동신앙의 일부로서 단독이나 다른 것과 함께 마을 입구에 세우며 잡신이나 잡귀를 막아주고 풍농을 기원하는 역할을 한다. 성황당은 '서낭당'으로 불리기도 하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셔놓은 곳이다. 돌무더기와 나무로 만드는데 오래된 나무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