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인
가인이다.
그 여린 눈빛 속에는 섬 처녀가 바라보는 깊고 푸른 바다가 담겨있다. 소리도 몸도 그는 진도라는 그 보배의 섬을 365일 영등살에 열리는 신비의 바닷길에 잠긴 애원과 간절함을 열어 마침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대자연의 화음을 자유자애로 젖게 한다.
어머니는 알다시피 진도의 오랜 민속, 신과 인간의 교감을 이끄는,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72호 진도씻김굿 전수조교 송순단씨이다.
지난 3월 21일 저녁 제41회 ‘신비의 바닷길 축제’ 전야제에 고향을 찾아 진도읍 철마광장 특설무대에서 송가인이 노래인사를 했다. 바람이 불고 꽃샘추위가 이제 막 피는 수선화 같은 그녀에게도 힘겹게 다가왔을 것이다.
얼마 전 한 TV에서 진행 방송한 ‘미스트롯’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소름끼치는’ 스타로 떠올리기 전에 송가인 가수는 여러 노래경연대회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아 지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축하무대에도 올라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자신 만의 히트곡이 없는 아쉬움으로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풍파와 연마로 자신을 다듬어 때가 되면 그 빛이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전라도에서 탑을 찍고 올라왔다”면서 “엄마 말만 따르면 다 해결되었다.”는 그녀는 아직도 천진한 어미 품안의 처녀다.
그녀의 노래를 듣다보면 물이 쓰는 개옹길에 기꺼이 발을 담그면 왜 저 회동 바다 2.8km 바닷길이 절로 열리는지 절로 공감을 하게 된다. 아니 우리 모두가 ‘만남’이라는 민족과 세월의 한(恨)도 ‘가로막은 철조망’ 따위를 시원스레 뚫고 해원하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가 씻김굿 길 닦음 고풀이를 이어받은 그 소리가 뽕할머니의 소망을 넘어 세대와 시대와 경계와 분단까지도 다 허물어줄 것 같은 환영(幻影)으로, 모도와 돌아오는 그 동네 ‘회동’ 의 열리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고 믿고 싶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맹골수로는 너무 깊은 수렁이었다. 그 참혹함을, 절망을, 수 십 년 쌓인 적폐를 다 씻고 메운 천만의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봉사자들은 분명 영적인 만남, 씻김을 통해 한 마음을 기원하였을 것이다. 간절함은 간절하게 소통한다.
송가인은 노래가 관음의 소리였을 것이다. 진도에서 무녀는 오래 동안 편시 되어 왔다. ‘당골네’라는 주홍글씨를 인두로 가슴과 생에 각인시켜야 했다. 그러나 지금 진도는 전국 최초 민속예술문화 특구로 지정되고 20년이 넘도록 지역 군 단위 지자체에서 독자적으로 매주 토요민속예술여행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본향을 자부한다.
소리는 곧 신과 우주의 말씀이요 원리라고도 했다. 그러나 아직 송가인 가수는 그 어머니의 ‘적중하는 예감’이 민(民)의 소리요 그것을 생의 길닦음으로 예(藝)가 되는 소리로 승화하는데 정진하고 있을 것이다. 울림은 그 진정함이 깊을수록 맥놀이가 커진다. 화려한 조명과 캐릭터, 매스컴의 분장만으로 성장하는 예능인들은 자칫 그 휘황함과 주어진 세속적 기득권에서 짧은 시간에 명멸하고 만다.
송가인 가수는 솔직히 능숙하지 못하다. 노래 말고는 유명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순발력은 더더욱 떨어진다. 그것이 그녀의 매력이다. 말들의 성찬에서 그녀는 더 솔직하고 촌스럽다. 진도아리랑이 꼭 그렇다. 그 가사들은 절절하다가도 느닷없이 지(제) 속내가 듬뿍 담은 농염을 더 뛰어넘어 시대를 풍자하는 여인들의 대담한 육감이 후렴구인 ‘응응응’으로 아주 내질러 놓는다, 이는 섬 안에 살며 고된 노동의 신음소리이기도 하지만 또 깊은 밤에는 시어머니를 피해 남편과의 성애에서 절로 나는 소리(진도아리랑 보존회장 박병훈)라고 해석한다. 이에 김승희 시인은 ‘리비도’라고 했다.
진도는 누가 뭐래도 소리의 섬이다. 유배지라는 오랜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곳 사람들은 소리와 굿을 자연스레 끌어안고 살았다. 언제나 삶이 곧 노래였다. 노래로 닻줄을 탱탱하게 감은 그런 생이었다. 바다도 그러하였다. 모든 물길은 앞마당에서 찰랑거리고 남정네들은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동무삼아 날을 새며 다시래기를 했다.
진도에서 당골 영역권은 매우 신성시되었다. 진도의 유명한 향토사학자인 박주언씨는 당골이 ‘단골’이며 이는 단군시대의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독특한 해석을 하였다. 진도씻김굿의 가사에는 삼한시대의 역사가 일부 녹아들어 있다. 진도 또한 마한 54국 중 하나라고 노래한다.
‘무녀의 딸’은 무슨 전설의 드라마 제목이 아니다. 21세기 진도에는 엄연히 살아있는 민속문화 이전의 신탁이 핏줄로 이어지는 삶의 주요한 영역이다. 진도에서 모티브를 잡아 직접 진도에서 대부분 촬영한 영화 ‘불의 딸’이 있다. 소설가 한승원 씨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서남해안지역에서 가장 늦게 가장 아름답게 해가 지는 낙조의 지산면 세방마을과 삼별초의 결기와 한이 서린 임회면 남도석성이 배경을 이룬다. 40여 년이 지난 당시 진도씻김굿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였던 고 김대례씨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씻김은 세례이다. 가수 송가인은 이 은총 세례를 받은 복된 아가씨이다.
진도에서 호남에서 무녀들이 무대로 옮긴지는 오래다. 80년대 마당극의 주연을 도맡아왔던 김성녀씨도 진도 의신면 송정 출신 이옥진씨의 따님이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에도 무계와 관련된 단원들이 많다. 이제는 출신이 아니라 창조적인 능력이 중요시된다.
씻김굿 질베 위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나 손을 얹히는 산자도 다 수평의 세상으로 인도된다. 무(巫)는 옛 글에서 반듯한 땅에서 춤과 노래와 술로 하늘에 제의하는 글자로 인식된다. 진도의 별호는 옥주(沃州)이다. 물과 함께 ‘춤출 요’(夭. 장의균씨의 우리말 한자 해석)는 왜 진도에서 여성들이 그렇게 노래와 춤을 즐겨하는지 원천적 생리를 규명하고자 한다. 진도에는 100년 전 까지만 해도 신청(神廳)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국에서 소리 가무 하는 이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한 민족이 노래와 춤을 즐겨했다고 여러 역사책에 새겨져 있음은 누구나 안다. 꼭 진도에서만 노래가 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과거 등용과 제도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진도 남정네들이 시서화를 즐겨하는 가운데 여정네들의 소리가 들과 바다를 적시고 바람을 이러 저리 불어오고 하는 풍습이 오래 보전되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 역사 민속학자들의 현명하고 세밀한 조사 분석이 요구된다고 본다.
오래 전부터 “진도에 가면 소리 자랑 하지 말고 그림 글씨 함부로 내놓지 마라”는 말이 경구로 전해진다.
그림과 글씨 속에 소리가 있음은 분명하다. 천하의 소전 손재형 소전체는 절정의 춤사위를 갖고 있다. 가수 송가인 에게 나는 진도의 바다 세레모니를 안겨주고 싶다.
송가인은 가인이다. <박남인 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