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 만안구 동화약품 안양공장의 까스활명수 생산 모습. 까스활명수는 지금도 연 1억 병을 생산하는 제약업계의 ‘스테디셀러’다. 사진 제공 동화약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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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단심 ‘활명수’… 112년 1등 브랜드 철저한 관리
한국 기네스 기록 4개 부문 등재(국내 최고·最古 제조업체 및 제약회사, 가장 오래된 등록상표로 부채표, 최장수 의약품 부문에 활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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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터 바뀐 ‘Biz Weekend(비즈 위크엔드)’ 지면에 매주 ‘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한국 기업들의 장수 비결을 살펴보고 100년 후에도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네스북에 오른 한국 최초의 제조업체. 국내 최장수 상장(上場) 기업. 한국 최초 등록상표인 ‘부채표’를 가진 기업……. 여기에 하나 더.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기업. 눈치 빠른 독자들은 여기까지 설명하면 “아아, 그 회사” 하고 눈치 챘을 것이다. ‘부채표 활명수’의 동화약품이다. 동화약품처럼 최초 기록이 많은 기업도 드물다.
동화약품은 1897년 동화약방으로 설립된 이후 1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국내 기업이다. 시작은 두산그룹의 전신인 ‘박승직상회’보다 1년 뒤졌지만 112년 동안 같은 장소(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같은 상호(동화)로 동일한 제품(활명수)을 생산하고 있다. 동화약품이 치열한 국내 제약업계에서 100년이 넘게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동화약품의 첫 번째 장수 비결로는 ‘블루오션 선점’과 ‘활명수 브랜드’가 꼽힌다. 동화약품은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질병인 소화불량 치료제 시장을 선점해 장수할 수 있었다. 창립자인 민병호 선생이 국내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한 1897년에도 한국인의 식습관은 좋지 않았다. 짜고 매운 음식을 빨리 먹는 습관이 있었던 것. 당시에는 급체로 사망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19세기 말 활동했던 캐나다 출신 선교의사 애비슨이 ‘한국인은 많은 양의 식사를 너무 빨리 먹기 때문에 위장병이 많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
동화약품은 활명수 개발로 전 국민적인 수요가 있는 소화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활명수는 1897년 첫 시판 이후 112년째 소화제 국내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저작권의 개념이 없던 1910년대부터 ‘생명수’, ‘활명액’, ‘활명회생수’ 등 이름도 비슷한 수많은 유사 브랜드가 생겼지만 누구도 활명수를 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