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鄭衛道寄權受之亭子韻
雲溪 全以性
幽居形勝集軒楹。
極目汀洲樹頂平。
玉鏡風恬雲影淡。
瑶臺月上露華清。
披衣隱几忘機坐。
捫腹吟詩信脚行。
江海一麾緣爲養。
金魚安得換鷗盟。
‘정문익’이 ‘권수’의 정자에 기고한 시운에 차운하여
운계 전이성
명승지에 은거하면서 (정자) 난간에 이르러
물가의 숲 끝이 평평한 것이 눈에 가득하다.
밝은 달(玉鏡) 아래 풍광이 고요하고 구름 그림자가 담담하고
요대(瑶臺) 위로 달이 뜨니 연못(화청지)에 드러나도다.
옷을 입고 궤안에 기대어 기심(機心)을 잊고 앉았다가
배를 두드리고 시를 읊으며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리라.
강과 바다를 맡아서 부양하는 인연을 맺었으니
금빛 주머니(金魚)가 좋다 해도 어찌 갈매기와 벗함과 바꿀 수 있겠는가.
[국역] 전과웅
[출처] 운계문집
● 정문익 [ 鄭文翼 ]
정의
1571(선조 4)∼1639(인조 17).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위도(衛道), 호는 송죽당(松竹堂). 증별제 정사(鄭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좌승지 정경윤(鄭景倫)이고, 아버지는 첨정 정응택(鄭應澤)이며, 어머니는 사정(司正) 이인수(李獜壽)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사간원정언·이조좌랑을 거쳐 홍문관교리가 되었다. 1612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무고하여 강화로 몰아냈던 대북의 영수 이이첨(李爾瞻)으로부터 박승종(朴承宗)과 유희분(柳希奮)의 심복이라 하여 미움을 받았다.
1616년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한찬남(韓纘男)의 상변사건(上變事件, 海州獄事)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와 죽산부사로 있던 중 이괄(李适)의 난 평정에 공이 컸으며, 1628년(인조 6) 회답사(回答使)로 심양(瀋陽)에 다녀와 충청감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송죽당집』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정문익 [鄭文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幽居 유거
쓸쓸하고 궁벽(窮僻)한 곳에서 사는 일. 또는 그런 곳에 있는 집.
● 형승形勝
지세나 경치가 뛰어남.
● 軒楹 헌영
마루의 기둥.
● 이백(李白)의 〈청평조사(淸平調詞)〉에 “군옥의 산 정상에서 본 것이 아니라면, 요대의 달빛 아래에서 만난 것이 분명하네.〔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라는 표현이 나온다. 군옥(群玉)은 서왕모(西王母)가 산다는 산 이름이고, 요대(瑤臺)는 유융(有娀)의 미녀가 산다는 누대 이름이다.
● 기심機心
기회를 보아 움직이는 마음. 책략을 꾸미는 마음. 기계지심(機械之心). 기교지심(機巧之心).
● 捫 어루만질 문
1. 어루만지다 2. 쓰다듬다 3. 거머쥐다
● 여기서 원문의 일휘(一麾)는 본래 배척을 받는다는 의미인데, 전용되어 지방 관원으로 나간다는 뜻으로 쓰였다. 남조 송나라의 안연지(顔延之)가 〈오군영(五君詠)〉에서 완함(阮咸)에 대해 읊기를 “몇 번 추천받아도 벼슬자리 못 얻다가, 순욱(荀勗)이 손 한 번 내저으매 수령으로 나갔네.〔屢薦不入官 一麾乃出手〕”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文選 卷21 五君詠》
● 금어(金魚) :
금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장식을 단 주머니를 이르는 말. 당(唐)나라 때에 5품 이상의 관원이 이를 찼다. 5품 이하의 관원은 은으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서 달았다. 《신당서(新唐書)》 24권 〈거복지(車服志)〉에 “중종(中宗) 초기에 귀대(龜袋)를 혁파하고 다시 어대를 지급하였는데, 군왕(郡王)과 사왕(嗣王)도 금어대(金魚袋)를 찼다. 경룡(景龍) 연간에 특진관(特進官)으로 하여금 어대를 차도록 하였는데, 산관(散官)이 어대를 찬 것은 이때부터 비롯되었다.”라고 하였음.
● 鷗盟 구맹
「갈매기와 벗함.」이라는 뜻으로, 은거(隱居)하여 자연(自然)을 즐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