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누비 포대기
권영심 ( 2022 , 3 , 17 )
요즘은 아기를 보는 것 조차 힘든 시대
인데,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엄마를 아예
보지를 못 한다. 유모차에 실려가는 모
습이나 베낭을 메는 듯한 모습으로 아기
를 안은 부부들은 가끔 본다. 나는 아들
을 낳아 그다지 많이 업어주진 않았으 나,그래도 추운 겨울의 어부바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기를 낳기 전에
아버지와 여동생은 별별 유아용품을 마
련해 주었는데 단칸방엔 과분한 것들이
었다. 그 중에 두 개의 포대기가 있었 는데 여름용과 겨울용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포대기를 손수 골라 샀는데도 마음에 들지는 않은 듯 했다.
" 뭐이네? 포대기가 미끈거려서리 간난
이가 폭 앤기기나 하갓네? 겨울엔 솜을
넣은 도톰한 누비 포대기가 제일 좋은
데 당최 파는 곳이 없으니..."
누비포대기라니? 나는 그런 것을 본 적도 없고 주변의 엄마들도 솜을 넣은 누비포대기를 아무도 갖고있지 않았다.
출산한 이후 실제로 아기를 업을 일이
그다지 없었다. 몇 달 동안 아기바구니 에 담아 들고 다녔고, 안고 다니는 것이 훨씬 편했다. 돌도 안 된 갓난이를 업 는 것이 무섭기도 했다. 여름이 오고
더워서 실제로 여름 포대기는 쓸 일이
없었는데, 엄마가 많이 사용했다. 그 더운 여름에도 아기를 업고 가게에서
장사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가을이 되었을 때 어느날 아버지가 친정으로 불
렀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여동생과 함께 큰 시장을 다니고 있었다 . 아버지는 고상하게 포장이 되어있는 꾸러미를 내게 주면서 펴보라고 했다. 꾸러미를 펼치니 너무나 예쁜 포대기였 다. 얇게 솜을 두고,안과 밖이 섬세한 누비로 꾸며져 있는 데다 겉에는 장식 자수와 아름다운 술까지 드리워져 있어 서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보통의 물건 이 아니었다.
" 마음에 드네? 그거이레 저기 통영에서
만든 거이야. 아주 옛날부터 통영은 소
반하고 누비가 유명한 고장이지 않네?
귀한 자손을 얻으면 일부러 통영에서
누비포대기를 만들었어. 인자는 많이
안 하는 모양인지 구하기 힘들었어야.
잘 쓰라우 ."
그러니까 아버지는 큰 시장의 지인을 통
해, 그 당시는 충무였던 통영에까지 알 아보아서 누비포대기를 맞춰 온 것이었 다. 손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 었다. 누비포대기는 아기를 업기보다 는, 벽에 펼쳐서 걸어 놓으면 더 좋을 듯 했다. 묶는 띠조차도 그 색상과 촘촘한 누비가 출중해서, 아기를 업어보니 과연 그 태가 남달랐다. 아기가 등에 착 붙 고 단단한 안정감을 주어서 참 좋았다.
아기를 업고 나오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입을 안 대는 사람들이 없었다. 여동생
은 잘 쓰다가 자기에게 달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내가 더 이상 아기를 낳지 못 하
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포대기가 마음에 들고 잘 썼으
나 그 가치를 전혀 몰랐다 . 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이후 아이는 업을 일이 없 었고 포대기는 옷장에 접어 잘 넣어 두었다.
그것은 여동생이 결혼하면 줘야 될 소중
한 유산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포대기
가 사라졌다. 그 당시 나는 장사를 하고
있었고 집안 일에 신경 쓸 여력이 거의
없었다. 어느날 밤에 집에 돌아오니 장
안이 흐트러져 있고 포대기를 비롯한 아
이의 물건들이 없어졌다. 남편과 아이
는 자고 있었고 손을 탄 흔적은 아니었
다. 남편을 깨울 수도 없었고 나는 장
안을 정리하고 다음날 아침에 물어 보았
다. 내 예상대로 남편은 아이를 낳은
지인에게, 포대기와 새것이나 다름 없던
아들의 물건을 몽땅 줘 버린 것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그랬다. 남에게 주는 것
은 아까운 것이 없었고 그 피해는 내 몫
이었다. 포대기는 여동생에게 줘야 할
소중한 것이라고, 그것만 되찾아와 달라
고 했으나 남편은 불같이 노해서 화를 낼 뿐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포대기 를 잃어 버렸다. 그것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은 몇 십 년 후였다.
공부를 하던 중에 통영 누비처네의 가치
를 알게 되었고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귀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당시에도
구하기 어려웠으니 아버지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애쓰며 구했을까?
이미 오래 전의 일이건만 나는 스스로
를 원망하고 자탄하며, 오랜 동안 아버
지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몸살하면서
괴로워했다. 여동생에게 물려주고 간
직했어야할 그 귀한 것을, 아버지의 사
랑을 그렇게 잃어 버린 것이 지금도 가
슴이 아릴 만큼 고통스럽다. 모든 것
은 사라진 후에야 가치와 답을 알게 되
고 인간은 그것을 반복하며 사는 존재인
것을... 이 순간 내게 주어지는 것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시간이 지난 후라는 것을 말이다.
뎃글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 중에 우리 문화의 많은 유산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무의 누비 처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는데 아버지가 주신 그 포대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기막혔는지... 아버지가 그 포대기를 어떤 심정으로
구해 주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107호로 누비장이 지정되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