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쩨데크
쩨데크(צֶדֶק): 유대교의 정의 가치
유대교 사상에서 정의란 단순히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아니라, 사물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유대교 전통에는 정의라는 개념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쩨데크(צֶדֶק, tzedek)’, ‘미쉬파트(מִשְׁפָּט, mishpat)’, ‘딘(דִּין, din)’이라는 단어는 각각 의로움, 심판, 법 준수를 의미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러한 개념들은 공정성을 실현하고 법 체계를 준수하기 위한 어느 사회의 지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정의 개념 이면에는 우리의 가장 오래된 가르침에 뿌리를 둔, 더 깊고 심오한 사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경적 정의 개념의 기초에는 ‘언약(covenant)’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위대한 서사 속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노예들은 시나이 산에 도착하여 그들을 해방시킨 신성한 권능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 언약—히브리어로 ‘브리트(בְּרִית, brit)’—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그리고 서로에게 지녀야 할 의무를 수반합니다.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 대한 의무를 지십니다.
당시로서는, 한 무리의 인간이 우주의 창조주와 언약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급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 관계의 일부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행해야 할 의식적 의무와 관련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성스러운 절기, 동물 제사 제도, 제사장 제도의 수립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점은, 이 언약에 인간관계에 관한 구체적인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공정한 재판소를 세우고, 약자(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자, 과부, 고아, 가난한 자)를 보호하며, 궁핍한 자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임금 노동자를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밖에도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의’란 언약의 규칙을 준수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중 일부만이 법정에서 집행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이 백성들이 불의를 행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분노를 표현할 때, 가난한 자와 약자에 관한 이러한 법들을 지키지 못한 점이 종종 그들의 비판의 핵심이 됩니다.
랍비 스티븐 S. 슈바르츠실드는 『유대교 백과사전(Encyclopedia Judaica)』에 기고한 ‘정의’에 관한 글에서, 유대교의 정의에 대한 접근 방식을 주로 보복적 또는 분배적—즉,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관한 체계—인 주류 서구적 정의 개념과 대조합니다.
이와 달리, 유대교의 정의는 인간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비전입니다. 슈바르츠실드는 “정의에 대한 실질적인 관점은 인간 생활, 무엇보다도 사회 생활의 전면적인 증진에 관심을 둔다”고 썼습니다. “따라서 정의는 모든 인간 관계와 사회적 제도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교에 내재된 메시아적 열망입니다. 즉, 이웃과 이방인을 돌보는 원칙에 근거하여 사회가 질서 있게 운영될 날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이 없는 자들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이해하는 사회에 대한 비전입니다. 이 사회에서 시민들은 단순히 법을 준수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언약적 사회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법을 넘어서는 행동이 필요함을 이해합니다.
성경의 세계관에는 정의에 대한 두 가지 강력한 비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의 이미지입니다. 신의 정의는 종종 흐름으로 표현되며,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은 그 흐름에 맞춰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이 지켜질 때, 제철에 비가 내리고 땅은 축복을 누립니다(신명기 11) . 백성이 정의를 행할 때, 그들은 마치 정원처럼 “물을 공급받는다”(이사야 58).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가 유명하게 만든 아모스서의 한 구절에서, 선지자는 백성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정의가 물처럼 솟아나고, 의가 흐르는 시내처럼 넘쳐흐르게 하라”(아모스 5:24).
물은 생명을 북돋우기도 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물은 협곡을 만들기도 하고 도시를 휩쓸어 버리기도 하며, 밭과 정원에 물을 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비유하는 수단으로, 성경 저자들은 물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정의가 중력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개념을 전달했습니다. 정의는 우리 인간이 불의한 행동으로 막을 수도 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비유는 ‘안식’입니다. 인간 관계를 규율하는 규칙들과 더불어, 십계명에는 매주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7일마다 이스라엘 각 가정의 모든 구성원—심지어 일하는 짐승들까지—은 하루 종일 안식을 누립니다. 미국에서 주말 제도가 20세기가 되어서야 법으로 제정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당시에 꽤 진보적인 것이었습니다.
매주 지켜야 하는 안식일 외에도 훨씬 더 급진적인 제도가 있었습니다. 7년마다 이스라엘의 전체 경제 활동이 중단되어, 파종이나 수확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농업 노동자들은 1년 동안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밭에 들어가 먹을 만큼만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안식년에는 빚이 탕감되고 노예로 팔려간 자들이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50년마다—즉, 7×7번의 안식년이 지난 후—거대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원래 가문이 소유했던 토지를 되찾았습니다. 가난이나 불운으로 인해 땅을 잃었던 가족들은 그 땅을 되돌려받았습니다. 이는 경제의 주기적인 재시작이었으며, 소수에게 부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불가피한 현상을 바로잡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서 와스코우 랍비는 이 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 성경적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회 정의’라고 부르는 것은 휴식, 즉 사회적 안식의 한 측면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일’은 단순한 육체 노동이 아니라 지배와 통제를 위한 제도적 구조의 골조였습니다… 진정한 안식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구조가 수행하는 육체적 노력뿐만 아니라 구조 그 자체가 주기적으로 해체되어야 합니다.”
언약적 헌신, 흐르는 시냇물, 사회 전반에 걸친 안식 — 이러한 유대교의 정의에 대한 이해는 우리에게 현세상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우주 속에 존재하는 신성한 것과 조화를 이루며, 모든 인간이 보살핌을 받고 존중받으며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을 향해 나아가도록 영감을 줍니다.
By Rabbi Toba Spitzer (the senior rabbi at Congregation Dorshei Tzedek in Newton, Massachuset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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