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제22장(第二十二章) 그 성(性)을 다하면 능히 사람의 성(性)을 다할 것이요
惟天下至誠이야 爲能盡其性이니 能盡其性이면 則能盡人之性이요 能盡人之性이면 則能盡物之性이요 能盡物之性이면 則可以贊天地之化育이요 可以贊天地之化育이면 則可以與天地參矣니라
오직 천하(天下)에 지극히 성실한 분이어야 능히 그 성(性)을 다할 수 있으니, 그 성(性)을 다하면 능히 사람의 성(性)을 다할 것이요, 사람의 성(性)을 다하면 능히 물건의 성(性)을 다할 것이요, 물건의 성(性)을 다하면 천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도울 것이요, 천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도우면 천지(天地)와 더불어 참여(參與)하게 될 것이다.
天下至誠은 謂聖人之德之實이 天下莫能加也라 盡其性者는 德無不實이라 故로 無人欲之私하여 而天命之在我者를 察之由之하여 巨細精粗가 無毫髮之不盡也라 人物之性이 亦我之性이로되 但以所賦形氣不同而有異耳라 能盡之者는 謂知之無不明而處之無不當也라 贊은 猶助也라 與天地參은 謂與天地竝立而爲三也라 此는 自誠而明者之事也라
천하(天下)의 지성(至誠)은 성인(聖人)의 덕(德)의 성실함이 천하에 더할 수 없음을 이른다. 그 성(性)을 다한다는 것은 덕(德)이 성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이 없어 자신에게 있는 천명(天命)을 살피고 행하여 크고 작음과 정(精)하고 거침이 털끝만큼도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사람과 물건의 성(性)이 또한 나의 성(性)인데, 다만 부여받은 바의 형기(形氣)가 같지 않기 때문에 다름이 있을 뿐이다. 능히 다한다는 것은 앎이 밝지 않음이 없고 처함이 마땅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찬(贊)은 조(助)와 같다. 천지(天地)와 더불어 참여한다는 것은 천지(天地)와 더불어 함께 서서 셋이 됨을 이른다. 이는 성(誠)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자의 일이다.
右는 第二十二章이라 言天道也라
우(右)는 제22장(第二十二章)이다. 천도(天道)를 말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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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22장)
唯天下至誠,爲能盡其性。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
유천하지성 위능진기성
능진기성 즉능진인지성
능진인지성 즉능진물지성
능진물지성 즉가이찬천지지화육
가이찬천지지화육 즉가이여천지참의
<직역>
오직(唯) 천하(天下)의 지극한(至) 정성(誠)이 그 본성(其性)을 능(能)히 다하게(盡) 한다(爲)
그 본성(其性)을 능(能) 다하(盡)면(則) 능(能)히 사람의 본성(人之性)을 다한다(盡)
능(能)히 사람의 본성(人之性)을 다하(盡)면(則) 능(能)히 사물의 본성(物之性)을 다한다(盡)
능(能)히 사물의 본성(物之性)을 다하(盡)면(則) 천지의(天地之) 화육(化育)을 도울(贊)수 있다(可以)
천지의(天地之) 화육(化育)을 도울(贊)수 있(可以)으면(則) 천지(天地)와 함께(與) 참여(參)할 수(可以)있다(矣)
<번역>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만이 자신의 본성을 다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의 본성을 다 발휘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의 본성도 다 드러내도록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본성을 다 발휘하도록 할 수 있게되면 세상의 모든 사물의 본성도 다 발휘되도록 할 수 있다.
사물의 본성이 다 발휘되도록 할 수 있다면 천지의 운용과 진전을 도울 수 있게 된다.
천지의 운용과 진전을 도울 수 있다면 우주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해설>
중용의 가장 앞머리에 나왔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천명 그것을 성이라 한다)과 바로 앞 시간(중용 20)에 나왔던 성자천지도야(誠者天之道也-정성은 하늘의 도다)라는 두 대명제를 기억하고 윗 구절을 보아야 한다.
性과 誠 두 성은 하늘의 명과 도이다. 본성은 하늘의 명령이요 정성은 그 명령을 수행하는 길이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여호아에게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흡사하다. 여호아에 해당하는 것이 性이고 예수에 해당하는 것이 誠으로 보면 된다.
쉽게 말하면 진실과 정성이라는 다리가 없으면 하늘의 이치에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이 중용의 요지다. 이 소리를 하려고 저토록 어려운 소리를 연속으로 해대는 것일 뿐이다.
하늘의 이치는 별게 아니고 사람이나 사물의 본성이 하늘의 이치다. 개가 짖는 것이 하늘의 이치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이 하늘의 이치인 性이다. 이 性이 없으면 만물은 모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섹스를 하지 않고 종족을 보존할 길이 있겠는가? 이 뻔한 이야기를 어렵게 말하기 위해 性이 바로 理라고 주장하면서 성리학이란 학문이 형성된 것이다.
그럼 성(誠)은 무엇인가? 여자를 꼬셔보려고 전화하고 밥사고 애가 타고 말 잘못했다가 차이고... 난리를 치는 것이 성(誠)이다. 어떻게 하든 종족을 보존하는 하늘의 사명(性)을 완수해보겠다고 온갖 정성(誠)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봄에 꽃 한번 피려면 씨앗은 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버티고, 참새에게 먹히지 않고, 자기 키보다 세배 정도의 흙에 파묻혔다가 운좋게 비를 맞아 수분을 얻고 적당한 온도를 얻고, 지나가는 놈에게 밟히지 않아야 된다. 그러기 위해 식물조차 진화를 거듭해서 비로소 존재를 유지하게 된다. 이것이 진실과 정성인 것이다.
이런 정성이 지극하게 되면 천지가 돌아가게 할 수 있고 우주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윗 구절의 주장이다.
참 별 것 아닌 이야기 어렵게도 하고 있다. 중용이 이렇다.
<한자>
盡(다할 진) : 다하다, 완수하다, 다 없어지다, 모든, 전부의
贊(도울 찬) : 돕다, 칭찬하다, 나아가다, 추천하다, 찬사
參(참여할 참/석 삼) : 참/참여하다, 간여하다, 뒤섞이다, 가지런하지 않다 삼/셋, 인삼, 별이름
<영역>
It is only he who is possessed of the most complete sincerity that can exist under heaven, who can give its fun development to his nature. Able to give its full development to his own nature, he can do the same to the nature of other men. Able to give its full development to the nature of other men, he can give their full development to the natures of animals and things. Able to give their full development to the natures of creatures and things, he can assist the transforming and nourishing powers of Heaven and Earth. Able to assist the transforming and nourishing powers of Heaven and Earth, he may with Heaven and Earth form a tern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