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남자
장성혜
어제신문 같은 남자가 밥을 먹고 있습니다
축구 중계가 한창인 텔레비전을 등지고
배 속으로 보내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듯
순댓국에 밥을 말아 먹고 있습니다
진동이 밥 먹듯이 울려대는
휴대폰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지금 가고 있습니다, 재촉하는 목구멍으로
뜨거운 밥을 한 숟가락 퍼 넣자마자
또 한 숟가락 퍼 올리고 있는 손목에
속도위반 딱지 같은 파스가 붙어 있습니다
대목 만난 선물꾸러미처럼 미어터지게 들어오는 밥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있는 얼굴에는
사막의 바람 무늬 같은 주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누군가 골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등 뒤에 환성이 쏟아지고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는 공을 쫓아
잠깐, 텔레비전 속으로 눈을 돌리는 사이
진동이 다시 울리고 있습니다. 서둘러
한 숟가락 밀어 넣는 순간
다짜고짜 사래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 손으로는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쥐고
또 한 손으로 튀어나오는 밥알들을
안간힘으로 움켜쥐고 있습니다
지금 어디로 보냈느냐, 호통을 쳐대는
제 목구멍을 향해
굽실거리고 있는 뒷모습을
생중계 중인 텔레비전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계간 《문예바다》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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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 / 1957년 경북 봉화 출생. 197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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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남자 / 장성혜
박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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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
20.02.1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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