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마산합포구 덕동의 덕동시립테니스장 입구에는 오래된 고목이 한 그루 있다. 대략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고 수종은 필자가 잘 모른다. 잎을 보니 흔히 보이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나무가 눈길을 끄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름 5~6m 이상 되는 가마솥처럼 생긴 널따란 바위 위에서 그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대지 위에 굳건한 모습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1992년 여름이었을까. 전남 완도에서 신임기를 보내고 환향하여 진동지서를 거쳐 지금은 신도시로 편입되어 사라진 현동파출소에 근무할 당시 큰비가 왔다. 오후 세 시경에는 폭우로 돌변하여 한 시간 이상 내리붓더니 순식간에 유산천이 범람하여 도로가 침수되어 버스가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구산면의 유산리와 마산합포구 덕동을 잇는 다리인 유산교는 하천이 비에 넘쳐 보이지 않았고 바닷물과 빗물이 섞여 미나리 밭은 이미 쓸려 가버려 흔적이 없는 상태였다.
폭우 소식은 학교로 전해졌는지 마산시내 쪽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가포본동을 이용하도록 누군가가 알려 대부분 그쪽으로 귀가하였다. 우리도 보통 비가 오면 평소보다 근무 신경을 더 많이 쓰기 때문에 우의와 장비를 챙겨 비상대기에 들어갔고 경찰서 상황실의 무전기에 더욱 집중하였다.
그러던 중 날씨가 더욱 어둑해지고 천둥과 함께 더욱 거세게 비가 내리는 때에 신고가 들어왔다. 내용은 "유산 쪽에서 보니 학생인 듯한 사람이 혼자 덕동 쪽으로 다리 위를 걸어 들어가다 비에 쓸렸다. 위험하니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 112 순찰차가 다른 곳에 신고를 받고 가는 바람에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현장을 갔다. 미나리밭에서 유산 입구 쪽은 가깝지만, 확인이 안 되어 나는 튜브가 보이기에 잡고 다리 쪽으로 천천히 물살을 가로질러 갔다. 물살은 가슴 쪽까지 차올랐으나 바닷물과 만나는 쪽이라 유속은 그리 빠르지가 않았다.
얼마나 갔을까, 조바심이 날 무렵 반대편에서 두 사람이 손을 흔들며 "괜찮다" 하기에 나는 돌아서서 나오려고 몸을 돌렸다. 순간 유산천에서 넘친 물이 나를 목까지 덮쳤고 디딘 발을 놓쳐 약20~30m 정도를 떠내려갔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머리만 내민 채로 허우적거리다 뭔가를 잡았다. 나뭇가지였다. 가지 옆으로는 주름살을 만들며 닥치는 대로 소리 없이 끌고 가는 물살이 나를 오싹하게 하였다. 상당히 튼튼한 가지를 잡고 주위를 둘러 맞은편으로 겨우 나오니 바닥이 땅에 닿아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귀소하였다. 생쥐 꼴이 된 나에게 직원들은 수고했다면 수건을 건넸다.
다음날 오전 물은 이불을 걷은 듯 도로에 자리를 내주었고 나는 현장에서 나를 구해준 나뭇가지를 확인하러 갔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평범한 나무가 아니라 바위 위에서 자란 나무였고 나는 그 가지를 잡은 것이었다. 일반적인 나무였으면 그 폭우에 뿌리째 뽑혀 쓸려갔을 터인데 크고 단단한 바위를 움켜쥐듯 서 있던 그 나무는 끄떡없이 버티며 서 있었고 나를 구한 것이었다.
한 올의 씨가 바위 위에 떨어져 싹을 틔우기도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뿌리를 내려 입을 열고 수많은 세월의 풍우를 견디며 지금까지 튼튼히 버티고 서있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덕동은 신마산지구대 관할이라 수시로 그곳을 순찰한다. 계절이 여름이라 푸른색 잎이 무성하며 사방 둥근 모양에 높이는 10m 이상이며 줄기는 어른 한 아름이 충분히 넘고 바위 중심을 가마솥 뚜껑처럼 꽉 쥐고 있는 아주 건강한 상태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악조건 속에서 성장한 나무가 과연 몇 그루나 있을까. 마치 온갖 삭풍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여기까지 온 우리 민족의 역사와 너무도 닮은 것 같아 보면 볼수록 경이로운 나무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신묘하다는 소문도 있어 그 나무에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잔을 따르는 이들도 보인다.
전국에는 수많은 보호수가 있고 나름대로 전설도 있고 수령도 깊지만 덕동 입구의 나무처럼 물이 거의 없는 바위 위에서 굵은 뿌리를 내린 이런 특종은 정말 귀하다고 생각한다. 지면을 빌려 미보호수이면 도에서 보호수 지정을 서두르고 안내판도 주민의 세담을 참고로 하여 제대로 세웠으면 하며 뿌리 주변은 콘크리트 재료가 없었으면 한다.
나라가 무척 힘들고 시민은 생기가 엷어졌다. 이런 때에 이 나무를 한 번쯤 보는 것으로도 큰 에너지를 느끼고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마산중부경찰서 신마산지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