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 주셨지만,
일일이 답을 하기에는 게시판이 너무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고,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볼까 싶어서 기다렸다가
이렇게 새로 글을 올립니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고, 각자의 논리가 있습니다만...
커트 스트로크라는 용어가 안 되는 이유는 콩글리시여서가 아니라고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영어권 국가이지만 미국인도 알아듣기 힘든 수준의, 소위 '싱글리시'라 불리는 영어를 구사하며,
심지어 미국과 영국의 영어도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영어는 더 이상 특정 나라만의 언어가 아닙니다.
미국영어나 영국영어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탁구용어가 영문법에 완벽하게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의 근본적인 구조가 바뀔 수는 없습니다.
지겹지만, 예를 또 적어 봅니다.
forehand topspin : forehand가 topspin 을 수식합니다.
backhand flip : backhand가 flip을 수식합니다.
forehand chop: forehand가 chop을 수식합니다.
drop shot : drop이 shot을 수식합니다.
forehand stroke: forehand가 stroke를 수식합니다.
backhand stroke: backhand가 stroke를 수식합니다.
그러면,
커트스트로크(cut stroke)는? - 당연히 커트가 스트로크를 수식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커트타법(위에서 아래로 자르듯이 치는 타법)으로 치는 스트로크가 커트스트로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커트된 공(즉 하회전 공)을 치니까(스트로크) 커트스트로크이다."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있는데,
세상에 이런 어순은 없습니다.
이 용어가 모순인 것은 어순 뿐이 아닙니다.
그 주장대로라면 '커트'가 목적어가 되는 셈인데,
커트(cut)라는 용어는 '커트라는 기술' 혹은 '커트라는 기술을 쓰는 동작'을 의미하는 것이지
커트가 사물(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물도 아닌 것을 친다(스트록)?
정말 해괴한 언어네요. 비문(非文)도 이런 비문이 없습니다.
영어와 우리말은 어순이 다르기 때문에 '커트스트로크'라는 용어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이에 대해서는 Conan님이 댓글로 잘 설명하신 바 있는데다가, 제 생각과도 정확히 일치하므로 허락도 없이 그냥-_-
퍼왔습니다. 지우라 하시면 지울게요..
결정적인 오류 하나만 짚어드리겠습니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어순을 바꿀 수 있다는 논리는 맞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말로 바꾸거나 한글화시킨 다음 바꾸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예를 들어 하회전공 때리기 라고하면 대부분 주어가 생략된 목술구문으로 이해합니다. 하회전공(을) 때리기로 느끼지요. 그러나 철자까지 영어로 쓰면서 어순만 다른언어로 바꾼다면 그것이야말로 국어파괴 이전에 영어자체의 의미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영어 순서를 앞뒤로 바꿔놓고 우리말조사를 떠올리라는 것은 억지입니다. 그저 커트스트로크라는 용어 자체가 익숙하니 그 이미지가 잘 떠오르는 것이고 거기에 짜맞추는 논리일 뿐입니다. - Conan -
'커트스트로크'가 배우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하려는 의도가 담긴 용어라는 주장을 하는 분도 계시던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을 뿐이겠지요.
예를 들어, 지금 탁구장에서 대부분이 '커트'라고 하고 있는 기술을
탁구 도입단계부터 '푸시'라고 사용해 왔다고 가정해 보세요.
모르긴 몰라도 오히려 '커트'라고 하면 어색할 것입니다.
역시 탁구장에서 자주 쓰이는 잘못된 용어인 '어택(attack)'이라는 예를 통해
이해하기 쉽고 방송에서도 사용되니 용납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신 분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커트스트로크'보다 '어택'이 더 황당하다는 것을 밝히며,
저의 실제 경험담을 잠깐 적겠습니다.
제가 탁구를 배우기 시작한지 약 2주정도 됐을 때였죠.
이론이나 용어같은건 당연히 아무것도 몰랐고, 실력도 초보자 중의 초보자였을 때입니다.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곤 푸시(탁구장 용어로 커트-_-)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푸시는 곧잘 하고 회전량이 꽤 많아서 공격을 전혀 하지 않고도 탁구장 누님들을 이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오로지 상대가 공격하다 범실할 때만 득점)
하루는 한 누님이 시합에서 지고나서,
"내가 어택만 잘 하면 ㅇㅇ씨 공은 그냥 다 때려버리면 되는데, 아직 어택을 안 배워서..." 라고 하시더군요.
그 날 집에 가서 이게 무슨 말일까 정말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아니, '어택'이 당연히 공격이라는 의미인데,
아직 공격을 안 배웠다니??? 수비수도 아니신데??'
심지어 attack은 물리적인 공격이나 전쟁/전투에서의 공격이라는 의미가 강한 단어이고,
스포츠에서는 잘 쓰이는 용어도 아닙니다.(전혀까지는 아닙니다만..)
'어택'이 탁구 기술 이름일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을 못했죠.
그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은 1년 이상 지나서였는데, 정말 돌이켜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옵니다.
탁구장에서 '어택'이라고 하면 짧은 스매시를 지칭하기도 하고 플릭을 지칭하기도 하고,
뭐 경우에 따라 대충 아우르는 정도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 누님이 플릭(flick) 또는 플립(flip)이라고만 하셨더라도,
비록 제가 그 단어의 뜻을 몰랐다 할지라도 사전 찾아보면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플릭 또는 플립. 살짝 때리다, 뒤집어 채다 정도의 뜻을 가진 단어죠.
그러면, 아하! 라켓을 뒤집어 채듯이 해서 가볍게 때리는 타법이구나! 하고,
용어는 몰랐더라도 다른 분들이 그 기술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을테니 쉽게 이해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방송에서 사용되는 용어니까 용납 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말이 안 되는 것이고요.
방송 해설에서 현정화 감독님이나 유남규 감독님이 잘못된 용어를 사용했다고 해도,
그 분들은 탁구기술이나 전략의 전문가이지, 용어나 이론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
설령 그 분들이 탁구용어의 권위자라 치더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맹목적으로 따르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밖에 더 되겠습니까?
얘기가 좀 빗나갔는데,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커트스트로크라는 용어를 옹호하는 의견 중에 제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가 있더군요.
예전부터 코치님 또는 고수에게 그 용어를 배우고 잘 써와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용어인데,
난데없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 용어를 비난하니까 기분이 나쁘다는 겁니다.
처음엔, "아니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분에게는, 그 코치님이 평소 존경하는 분일텐데,
웬 아마추어 따위가 "당신 코치가 쓰는 말은 틀렸어!"라고 주장하니
마치 그 코치님을 욕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더군요.
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그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전혀 그렇게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 코치님은 어디까지나 실기스승입니다.
탁구 기술 배우려고 레슨 받는 것이지 용어나 이론 배우려고 레슨 받는 것은 아니잖아요.
탁구이론이나 용어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분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코치님이든 선수이든, 다들 전 세대의 스승에게 배운 용어 그대로 가르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대부분은요.
이는 그 분들의 잘못이 아니고 애초에 탁구용어를 들여올 때에
무분별하게 의미도 통하지 않는 외국어를 엉성하게 짜맞춰서 사용하기 시작한 분들에게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북한의 탁구용어가 부러울 지경이네요.
드라이브 - 감아치기
스매시 - 때려넣기
리시브 - 받아치기
커트 - 깎아치기(push인지 chop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명쾌한가요. (종북 아니니까 오해는 마세요;)
또, 이전 글을 쓰고 나서 댓글들을 보면서 인상깊었던 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커트스트로크'가 잘못이라고 인정은 하면서도 바꿀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진 분이 예상 외로 많았다는 점이고,
둘째는, '커트스트로크'는 잘못이니 고치자는 의견 역시 상당히 많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조금 실망스러웠던 동시에 한 편으로는 희망도 보이더군요.
무엇으로 고쳐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이미 다양한 의견이 나왔었지만,
오늘 거기까지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한번에 두 가지를 하려고 하면
한 가지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와 생각을 같이 하시는 분이든, '커트스트로크'라는 용어를 옹호하는 분이든,
혹은 이런 용어를 처음 들어보시는 분이든간에,
이런 글들이 다시 한 번 잘못된 용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사실 저는 그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작은 노력으로 잘못된 용어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야 없겠죠.
저도 탁구 동호인인데 이 바닥 현실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고치라고 하면 싫어하시는 분들 굳이 억지로 고쳐드리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라도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고,
새로 탁구 시작하는 분들에게 올바른 용어를 보급하면,(최소한, 어떤 용어는 잘못이다 까지만이라도)
비록 주위에서 잘못된 용어를 쓴다 하여도, 그것이 잘못임을 아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날테니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다음 세대가 되면 언젠간 잘못된 용어가 뿌리뽑히지 않을까요?
첫댓글 제가 글을 따로 쓸 필요가 없겠네요. 마지막 단락에 100% 공감합니다. 어떤 것을 바로잡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된 부분에 대한 '인식' 이겠지요.
그것이 되지 않고 용어부터 고치면 물론 반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뿌리깊은 외래어를 시덥잖게 급조한 우리말로 대체하는 운동이 대부분 실패하는 식의 본보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 그것을 고쳐보자는 움직임.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늘 현실론을 끌어와서 어쩔 수 없다는 분들 꼭 계시는데, 그건 좀 책임없는 간섭입니다.
당장 바꿀 용어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이상한 사람 취급해서야 되겠습니까. ^^
북한이야기만 하면 종북아닙니다..를 붙여야하는 세상인가요?
저는 결코 올바른 용어를 쓰자고 하시는 분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고슴도치님이 말씀하신 2번 상황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1번 상황을 말하고자 제 생각을 조금 덧붙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린 것이구요 디악님께서 앞전에 언급하신 백미러,휴대폰,핸들은 전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백미러=뒤의 거울 인데 어떻게 뒤를 보기 위한 거울 이란 뜻이 나올까요 이미지 때문입니다. conan님 의견과는 완전히 맞지 않습니다. 그 만큼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축구에서 센터링,헤딩,노골 등이 잘못된 용어지만 어쩔수 없이 쓰듯이 탁구에서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라고 말한것이구요
센터링은 없어지지 않았나요? 방송에서 들어본지 몇년 된것같은데요?그나저나 헤딩 노골이 잘못된 용어였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궁굼하네요... 맞는? 용어가요. 인터넷 검색해봐야 겠습니다~
당연히 본문 마지막 내용은 100%이상 공감합니다
우리 탁구장에선 커트 스트로크라는 말을 들어보진 못했지만 레슨을 받을 때 간간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단어가 있었지요.
그러나 무슨뜻이냐고 따져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 그냥 눈치로 짐작할 뿐이였지요.
디악님이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고 이런 고민에 함께 동참하여 의견을 개진하시는 탁구 동호인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분명 아닌것임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싫어 끝까지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우는 고집불통의 목소리가 큰 세상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디악님의 논리에 100점 드리고 공감합니다^^
야구도 잘못된 용어 바꾸는데 엄청 걸렸죠. 언더베이스 데드볼 볼카운트를 스트라이크부터 먼저 콜하는것까지 탁구도 지금부터 바꾸기 시작해야하고 언젠가는 야구처럼 바꿔져 있을겁니다
cut, stroke이란 단어들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드라이브, 탑스핀, 플립, 어택 역시 마친가지구요... 탁구를 전문적으로 치시는분 뿐만 아니라 일반생체인들도 잘모르시는 분들 많이계십니다요....
최소한 제주위에는 그렇습니다...
이렇게 언어논리에 맞지 않고 혼란을 주는 용어들이지만... 문제는 대다수의 탁구인들이 문제삼을만큼 언어적 수준이나 이해도가 높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세대가 교체되면 자연스레 변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커트와 푸쉬가 전혀 다른 어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있는 회원님들한테...이런 말씀을 드리는것이 현실을 개진하는데 도움이된다고는 생각지못하겠습니다
협회나 공인된 단체에서 용어정리를 하는게 훨씬 현실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하여 커트스트록이란 용어를 쓰지 않게되더라도 여전히 많은 수의 탁구인들은 용어가 주는 의미를 깊게 고심하지 않고 사용하는건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애초에 커트와 스트록이란 단어가 가진 의미자체를 알지못하는 분들의 경우에는 말이죠...
"커트에 대한 스트록"
이라는 풀이를 알면 될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이 주장의 근본 취지를 이해해 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지엽적인 부분에 관한 논쟁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겠죠.
사실 더 다양한 반론을 기다렸습니다만, 고슴도치님의 엄포 때문인지 조용해서 좀 아쉽기도 합니다. ㅎㅎ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