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호 '시현실' 이 계절의 초대 시인 (한창옥)신작시 3편 &시작노트
심방세동
한창옥
유령처럼 침입한 적으로 부아가 나서 부하가 걸린 걸까
물속에 잠긴 맥박은 쉴 새 없이 바들바들 떨고 있다
같이 아파하는 심장은 나를 향해 시위하는 줄도 모르고
진공 속을 빠져나오려 발버둥치지만
내 몸이 아니라 피가 도는 사랑인 것을
두근두근 허무의 경계를 넘고 있다
이 지경까지 무심했던 지층의 흉터는
퉁퉁 부어오른 무게로 나른하게 나를 본다
면회금지로 쪼여오는 쓸쓸한 병동에서
예정된 관상동맥조영술을 기다리며
순백의 시트가 눈부신 환자이동침대로 옮긴다
스타트라인을 밟고선 미묘한 떨림은 숨죽이고 얌전히 눕는다
아무 감정 없이 무수한 생각들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울컥 휘어버린 마음을 애써 거두는데
사방천지에서 침대언저리로 불꽃처럼 날려주는
벚꽃의 핑크하트, 하트하트 하트
몹시도 뛰는 앙가슴에 두 손을 가지런히 얹는다
무성영화처럼
한창옥
제어되지 않은 말들이 바람을 타고 진화한다
빗장을 걸어 잠근 자존심의 관절마다 아프다 말 못하고
쓰러진 지상의 뼈들은 애써 몸 낮추고 있다
꽃의 덩굴은 꼿꼿한 코로나 담장을 휘어 감고
비틀대며 오르기 시작하는데
폐쇄된 봄날의 입구는
목청껏 터트리지 못하고 입김만 내뿜고 있다
기약도 기척도 없는 충혈 된 무료한 침묵은
여전히 고립되어 일탈하려던 발끝에 힘만 주고
그럼에도 봄꽃은 거침없이 제 할일을 다하고 있다
가려진 미소로 끈끈하게 옷깃을 부딪치며
멀고도 가까운 사람들은 오래된 무성영화 향수에 빠져
막과 막사이로 빨려들듯 무작정 걸어들어 간다
기억, 택시 코로나
한창옥
예고 없는 소나기처럼 여자의 기억은 헤프게 쏟아진다
드러내지 않아도 푸른 열정의 행방을 찾아
치매요양병원에서 수시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 된다
흰 면장갑은 공손하게 핸들을 놓지 않고
60년대 아스팔트길을 다부지게 몰고 다닌다
퇴적된 시간의 흔적은 손님을 태우고
무작정 가출한 소녀들을 달래서 되돌려 내려준다
얼큰한 취기농담을 무소의 뿔처럼 받아주면서
양팔 벌리면 닿을 골목 끝까지 구불거리며 간다
오랫동안 과거와 현재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가던 기억은
유턴되어 도시를 천치같이 돌고 또 돈다
그렇게 손등의 핏줄처럼 선명한 날들인데
여자의 백발 같은 목련이 하염없이 피고 있을 때
꿈속에서 핸들을 꼭 잡고 가장 편안하게 멈췄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작노트] 애써 이빨이 보이도록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심장은 몸의 울림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적당한 말이 없어 예민한 통증을 부정하지만……. 내가 아프면 같이 아파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불편한 이 순간도 나 자신이 쓰는 시에 의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지만 흔히 말하는 따뜻한 시선이라 함은 언어의 속성도 예술의 속성도 아니다. 시는 그냥 삶이다. –한창옥
서울출생. 2000년 시집 「다시 신발 속으로」 및<현대시>로 작품 활동. 시집 「빗금이 풀어지고 있다」(2007). 「내 안의 표범」(2016).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2017년). 중요무형문화재 송파산대놀이 인간문화재49호인 부친 한유성을 기린<한유상문학상>제정. 「포엠포엠」 발행인
첫댓글 통증 속에서도 시를 쓰는 시인의 삶은 결국, 시를 통해 통증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랜만에 샘 시 봅니다. 20년 전 이나 지금 이나 샘 시를 보면 참 좋습니다. 아프지 말고 운동 좀 열심히 하세요. 젊은 날 샘이 술 많이 사 주셔지만 이젠 륜태가 맛있는 것 사 드리겠습니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시의 감동이란 전화를 많이 받았는데
륜태 시인까지 맛있는 것 사준다니 기대할게요^^
그리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물속에 잠긴 맥박이
스타트라인을 밟고선 미묘한 떨림 ᆢ 아름다워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맥박은 쉴 새 없이 바들바들 떨고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요즘 시들은 어려워 여러번 읽어도 이해가 안돼 힘든데 "심박세동" 은 "바들바들 떨고 있다" 이 시 한자락으로 사람을 끌어 들입니다. 근래에 본 시 중에서 최고의 절창 입니다. 다음 시들이 기다려 집니다.
부아가 부하로...
잘 이겨내셔서 감사드려요!